•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그대를 감히 잊지 못하리라", 청주부사 최루백

  • 웹출고시간2016.08.09 15:56:54
  • 최종수정2016.08.09 15:56:54

조혁연 객원 대기자

[충북일보] 고려와 조선시대의 장례문화는 크게 달랐다. 불교가 발달했던 고려시대에는 묘지명(墓地銘)이, 유교가 국시였던 조선시대에는 묘비명(墓碑銘) 문화가 성행했다.

묘지명은 한 인물이 숨진 뒤 망자의 이름과 나이, 가계와 행적, 가족 및 장지(葬地) 등을 돌에 새겨 무덤 속에 시신과 함께 매장한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묘비명은 그 내용과 형식은 묘지명과 같으나, 이를 새긴 비석을 무덤 입구에 세우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망자의 일대기를 사언(四言) 형식의 산문으로 압축한 명문 구성은 거의 같다.

고려시대 묘지명 문화가 유행한 것은 불교 화장풍습과 관련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망자의 화장한 뼈를 작은 석관에 담아 지하에 매장하는 장례가 유행했고, 이때 묘비명보다는 묘지명이 더 적합하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여성 이름이 유일하게 기록된 염경애(廉瓊愛) 묘지명이 있다. 1148년(의종 2)에 제작된 이 묘지명은 세로 30.3cm, 가로 69.7cm, 글자크기 1.2cm 등의 제원을 지니고 있다. 제작자는 염경애의 남편 최루백(崔婁伯·?~1205)이다.

그는 수주(水州·지금의 수원) 지역의 향리 최상저의 아들로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시어사 등의 대간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부인 염경애가 47세에 병으로 먼저 세상을 하직하자 애뜻한 마음을 담아 직접 묘지명을 만들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묘지명에는 △해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를 정성껏 지내고 △자신에게 올바른 내조를 해 준 고마움 △그러면서 고생만 하다 죽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 등 23년간 자신의 옆을 지켜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함이 잘 드러나 있다.

염경애 묘지명 모습.

"일찍이 길쌈하여 이것을 모아서 저고리 한 벌이나 바지 한 벌을 지어 제삿날이 될 때마다 영위(靈位)를 모시는 자리를 마련하고 절한 다음 이것을 바쳤으며, 곧 재에 나아가 무리가 많든 적든 버선을 지어 승려들에게 시주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잊지 못할 일이다."-<염경애 묘지명 일부>

묘지명 중에는 "내가 패주(貝州)와 중원(中原)의 수령으로 나갔을 때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어려움을 꺼리지 않고 함께 천 리 길을 갔으며…"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또 관직은 여러번 옮겨다녔지만 집안의 경제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이는 그가 청렴·강직한 관료생활 자세를 계속 유지했음을 반증한다.

"무진년 봄에 예부낭중으로 옮겼다가 다시 청주부사(淸州副使)에 임명되었다. 여러 번 벼슬이 오르면서 계속하여 후한 녹을 먹게 되었는데, 집안을 돌아보면 의식(衣食)은 오히려 아내가 어렵게 애써서 구할 때와 같지 못하니 누가 아내를 말하여 재주가 없었다고 하겠는가."-<〃>

두 개의 인용문에는 '중원'과 '청주' 등 눈에 익은 지명이 등장한다. 바로 최루백은 우리고장 충주와 청주에서도 관료생활을 했고, 이 시기에도 '의식은 오히려 아내가 어렵게 애써서 구할 때와 같지 못하니'라고 할 정도로 청렴하였다.

그는 묘지명 마지막은 역시 아내 염경애에 대한 사부곡(思婦曲)과 남겨진 자식을 창성시키겠다는 다짐이었다.

'믿음으로써 맹세하노니, 그대를 감히 잊지 못하리라. / 아직 함께 무덤에 묻히지 못하는 일이 매우 애통하도다. / 아들·딸들이 기러기처럼 뒤따르니, 부귀가 대대로 창성할 것이로다.'

/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