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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8.09 15:56:54
  • 최종수정2016.08.09 15:56:54

조혁연 객원 대기자

[충북일보] 고려와 조선시대의 장례문화는 크게 달랐다. 불교가 발달했던 고려시대에는 묘지명(墓地銘)이, 유교가 국시였던 조선시대에는 묘비명(墓碑銘) 문화가 성행했다.

묘지명은 한 인물이 숨진 뒤 망자의 이름과 나이, 가계와 행적, 가족 및 장지(葬地) 등을 돌에 새겨 무덤 속에 시신과 함께 매장한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묘비명은 그 내용과 형식은 묘지명과 같으나, 이를 새긴 비석을 무덤 입구에 세우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망자의 일대기를 사언(四言) 형식의 산문으로 압축한 명문 구성은 거의 같다.

고려시대 묘지명 문화가 유행한 것은 불교 화장풍습과 관련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망자의 화장한 뼈를 작은 석관에 담아 지하에 매장하는 장례가 유행했고, 이때 묘비명보다는 묘지명이 더 적합하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여성 이름이 유일하게 기록된 염경애(廉瓊愛) 묘지명이 있다. 1148년(의종 2)에 제작된 이 묘지명은 세로 30.3cm, 가로 69.7cm, 글자크기 1.2cm 등의 제원을 지니고 있다. 제작자는 염경애의 남편 최루백(崔婁伯·?~1205)이다.

그는 수주(水州·지금의 수원) 지역의 향리 최상저의 아들로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시어사 등의 대간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부인 염경애가 47세에 병으로 먼저 세상을 하직하자 애뜻한 마음을 담아 직접 묘지명을 만들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묘지명에는 △해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를 정성껏 지내고 △자신에게 올바른 내조를 해 준 고마움 △그러면서 고생만 하다 죽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 등 23년간 자신의 옆을 지켜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함이 잘 드러나 있다.

염경애 묘지명 모습.

"일찍이 길쌈하여 이것을 모아서 저고리 한 벌이나 바지 한 벌을 지어 제삿날이 될 때마다 영위(靈位)를 모시는 자리를 마련하고 절한 다음 이것을 바쳤으며, 곧 재에 나아가 무리가 많든 적든 버선을 지어 승려들에게 시주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잊지 못할 일이다."-<염경애 묘지명 일부>

묘지명 중에는 "내가 패주(貝州)와 중원(中原)의 수령으로 나갔을 때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어려움을 꺼리지 않고 함께 천 리 길을 갔으며…"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또 관직은 여러번 옮겨다녔지만 집안의 경제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이는 그가 청렴·강직한 관료생활 자세를 계속 유지했음을 반증한다.

"무진년 봄에 예부낭중으로 옮겼다가 다시 청주부사(淸州副使)에 임명되었다. 여러 번 벼슬이 오르면서 계속하여 후한 녹을 먹게 되었는데, 집안을 돌아보면 의식(衣食)은 오히려 아내가 어렵게 애써서 구할 때와 같지 못하니 누가 아내를 말하여 재주가 없었다고 하겠는가."-<〃>

두 개의 인용문에는 '중원'과 '청주' 등 눈에 익은 지명이 등장한다. 바로 최루백은 우리고장 충주와 청주에서도 관료생활을 했고, 이 시기에도 '의식은 오히려 아내가 어렵게 애써서 구할 때와 같지 못하니'라고 할 정도로 청렴하였다.

그는 묘지명 마지막은 역시 아내 염경애에 대한 사부곡(思婦曲)과 남겨진 자식을 창성시키겠다는 다짐이었다.

'믿음으로써 맹세하노니, 그대를 감히 잊지 못하리라. / 아직 함께 무덤에 묻히지 못하는 일이 매우 애통하도다. / 아들·딸들이 기러기처럼 뒤따르니, 부귀가 대대로 창성할 것이로다.'

/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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