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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충북인재양성재단 사무국장

비록 병상에서였지만 엊그제까지 오롯이 계셨던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불효 고애자(孤哀子)가 되었습니다. 돌아가시기 3주 전 쯤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부터 급격히 나빠진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들으면서 쏟아졌던 눈물이 다시금 앞을 가립니다. 돌아보면 2006년 가을, 홀로 사시던 집을 떠나 요양원을 거처 병원으로 가셨으니 그 시간만 하더라도 10년이 다 된 길고 긴 세월이었네요. 병상에 계시는 동안 어눌한 가운데서도 웬만한 소통이 가능했던 나의 어머니. 마지막 무렵에는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으나 미소 띤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던 눈빛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전업주부로 평생을 사신 어머니 밑에서 아들만 4형제인 우리는 비교적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 다들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밥술은 먹는다고 하지만 부족했던 게 너무나 많은 시절이었지요. 하여 이 집 저 집 대부분의 가정에서 생업 이외 '부업'을 하였습니다. 우리 집 역시 이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집집마다 사정이 좀 다르긴 했지만 이 부업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의존하여 여러 식구가 매달리거나 날품으로 하루를 사는 등 다들 어려워 돈이 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으니까요.

어머니의 억척은 누구 못지않았습니다. 나무를 해 나르고, 토끼 돼지를 키우고, 앞마당 텃밭을 일구면서 남는 시간엔 부지런히 '부업'을 하셨습니다. 알록달록한 장식용 우산. 어느 집을 가더라도 방 한 쪽에 수북이 쌓여있던 익숙한 광경, 바로 가내수공업의 생생한 현장이었지요. 우산살을 붙이고, 콩대를 끼우고. 방바닥에 널어놓았다가 마른 다음 차근차근 접으면 하나가 완성되는 미니우산. 용도가 궁금했는데 전부 다 수출을 한다더군요. 한 2, 3원 정도 받았을까요? 하나 만드는 수공 값을. 그래도 100개, 200개씩 쌓아가며 푼돈 받는 재미에 온 동네가 다 열을 올렸지요.

당시엔 또 계(契)가 성행했습니다. 서민들에게 있어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계'. 은행이 있었을 테지만 웬만한 일은 동네공동체에서 해결해 오던 전통적 방식이 아무래도 더 친숙했겠지요. 어머니도 여러 군데 단골계원으로 활동하시는지 틈틈이 계 문서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그 바람에 돈 심부름도 심심치 않게 했지요. 어느 날은 어머니를 대신해 계모임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1등을 뽑아 선순위로 곗돈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어렸기에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그때 어머니께서 꽤 기뻐하셨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제가 형제 중 유일하게 청주에 남아 지금까지 어머니 곁을 맴돌았습니다. 결혼 초기 당연하게도 부모님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고 분가하기까지 제 아들 녀석을 키워주셨지요. 늦은 나이에 힘든 일을 떠안게 되셨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손자를 돌보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불똥이 되어 매일매일 학교생활로 지친 아내에게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제 노릇을 못했으니까요.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아내 역시 상처를 많이 받았나 봅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말도 못하고 그저 다 응어리가 되었을 테니.

얼마 전에 아내가 올갱이국을 끓였습니다. 시장에 들렀다더니 올갱이 한 사발에 아욱과 부추를 사들고 온 것입니다. 어머니 떠나신지 2주, 생전에 당신이 좋아하셨던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잠깐 울컥했지만 어머니와 같이 했던 30년 세월을 '해피엔딩'으로 간직하려는 아내의 마음 씀이 고마워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이제 봄바람이 여름 문턱을 넘는 계절, 쌓고 쌓인 삽화들이 애잔한 그리움 되어 가슴을 적십니다. 힘겹게 마지막 숨을 거두시던 임종의 순간마저 진동하는 아카시아 향기에 묻혀 버립니다. 5월이 가며 유난히 청아한 하늘 뭉게구름 저 드높은 곳에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드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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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