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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3.15 15:55:52
  • 최종수정2015.03.15 14:08:58

김애중

힘차고 당당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내가 조용해진다.

"안녕하세요· 올해 6학년 4반입니다. 잘 부탁해요."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큰 키에 밝은 미소를 지닌 옥례씨가 말을 잇는다.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쓰면 열권은 족히 나올 거라고.

방송통신대학교 입학식 오리엔테이션장이다. 오래전부터 취미삼아 글쓰기를 배우던 그녀였다. 2년 전 지인이 방송통신대학을 들어가자 본인도 욕심을 내봤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입학 자격조차 없었던 것이다. 저 사람도 가는데 나라고 못 가겠냐 하는 생각으로 덤벼든 것이 검정고시다.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곧바로 고등학교까지 검정고시로 통과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살림은 물론 직장생활까지 하면서 이 모든 것을 이뤄낸 것이다.

인사말을 듣고 있던 동료들은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다. 나도 뭉클해졌다. 내 인생도 소설책 한권쯤은 되겠다 싶었는데 나는 명함도 못 내밀겠다. 다들 마음속에 소설책 몇 권씩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다.

옥례씨를 보노라니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

"내 인생은 소설이여."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숱하게 듣던 소리였다. 가난하고 힘든 시대에 굴곡진 삶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맺힌 게 많았을까. 한번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전쟁 났을 때 겨우 옆 동네로 간 피난살이가 무척이나 고단했었다. 출산 후 며칠도 안 돼 논밭으로 일하러 가야만 했었다. 아버지 때문에 속 끓인 대목에서는 원망과 눈물이 뒤범벅되어 훌쩍이셨다. 그러다 내가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다고 하면서 돌연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얼음장보다 차가운 눈길이 내 얼굴에 닿았다.

난 정말 싫었다. 어머니의 고생담을 듣는 것은 안쓰럽긴 했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재미도 없었다.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나 보다. 그러나 철들지 않은 자식에게 이야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두 번 듣다 보면 금방 싫증이 났다. 이해는커녕 똑같은 얘기 몇 번째냐며 자리를 피하기도 했었다.

이제 난 어머니의 이야기를 뭐든지 들을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철도 들었다. 예전에 제대로 듣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점점 궁금해진다. 하나씩 물어보고 싶다. 몇날 며칠이라도 하고픈 말 다 들어주고 한 많은 사연을 글로 써주고 싶다. 어머니 이름으로 책 한 권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금은 더 이상 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어머니의 싸늘한 눈길이 아직도 등 뒤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요즘 어르신들 사이에서 자서전 쓰기가 널리 퍼지고 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전국 각지에서는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 쓰기는 교육과 치료 차원에서도 권장되고 있다. 얼마 전 이웃마을 주민 한 분도 칠십여 년에 걸친 인생사를 일기처럼 담담하게 엮어 자서전을 펴냈다.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진솔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인생을 열권의 책에 비유한 옥례씨의 소설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녀는 이제야 새내기 대학생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 한 권도 채 안 되는 내 이야기도 진행 중이다.

나만의 소설책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뒤돌아보며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정리할 것이다. 그리하여 먼 훗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자식들을 붙잡고 말하게 되리라.

"내 인생은 소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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