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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다가왔다.

정육점 안에 들어서니 홍등에 반사된 진열장 고기들이 선명한 핑크빛이다.

"명절엔 돼지갈비가 꽃이 지유…·" 주인이 말하며 집채만 한 냉장고문을 연다.

뽀얀 안개가 일시에 뿜어 나온다. 갈고리에 꼬여 철봉 하는 갈비를 빨래 걷듯 벗겨 도마에 내려놓는 동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육중한 문이 닫힌다.

노련하게 움직이며 고기를 다듬는 주인의 칼솜씨를 보자니 작년 설날 때의 일이 스친다.

설 전날, 팔남매 장남인 남편의 멍에처럼 묵직한 양의 갈비를 사다 커다란 스텐 그릇에 쏟았다. 핏물을 빼려고 물을 부운 뒤 양념장을 만들었다.

다양한 양념들처럼 동기간들 성품도 다양하다.

간장처럼 짭짜롬한 둘째, 맏딸이라 강판에서 부서지는 배처럼 동생들 업어 키우느라 희생한 셋째, 참기름처럼 맛깔스런 분위기메이커 넷째, 대추처럼 다소곳한 다섯째, 마늘처럼 눈이 아린 여섯 째, 그리고 설탕처럼 달콤한 막내시동생과 막내 시누이라고 생각하며 소스를 섞어 통에 담아 꼭꼭 눌렀다.

시골집에 들어갔는데 하늘이 컴컴했다.

잔뜩 흐리다 싶더니, 오후 들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맏며느리 삼십년에 그날처럼 폭설이 쏟아진 설날 전야는 없었다.

아뿔싸! 갈비재운 것을 두고 왔다. 양이 많아 김치냉장고에 격리 보관하여 장본 것들 챙길 때 빠졌다.

괜찮다고들 했지만, 씨름선수 같은 덩치의 조카들 실망하는 표정이라니…. 시계는 밤 열시, 왕복 다섯 시간이면 충분하다.

살짝 빠져나와 청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흔날리는 눈발의 기세가 대단도 했다. 윈도우 브러쉬가 쉬지 않고 닦지만 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인적 드문 시골길 밤풍경은 머리를 쭈뼛거리게 한다. 나무들이 흐느적거리며 비바람에 흔들려 귀신처럼 보였다. 새벽 두 시를 넘겨 동네에 들어섰다.

동구 밖에서 눈을 그대로 맞고 장승처럼 서있는 남편이 그깟 갈비를 가지러 갔냐고 버럭 화낸다.

갈비뼈가 부서지게 안아주어야 할 장면에서 그깟 갈비라니….

며느리들에게 갈비는 어떤 의미인가. 화내는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명절 때마다 갈비를 맛있게 뜯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흐뭇함과, 너 댓 시간 야밤에 빗속을 달리는 것과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비교하지 않는다.

아담의 독처가 외로워 보여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지으셨다는 창조신화를 잊었는가.

마취에서 깨어난 아담이 하와를 보고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며 사랑했다.

창조신화대로라면 아내들은 남편들의 갈비뼈 같은 존재인거다.

뼈가 살을 사모하듯 아내들은 남편을 운명처럼 바라본다.

남편의 성공과 아이들 뒷바라지, 시부모께 효도하며 동기간들 화합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

명절증후군으로 몇 날을 누워도 그 일들을 기쁘게 감당한다.

선홍색 살코기 사이사이로 갈비뼈가 보일락 거리듯 남편을 내세우며 자신은 살에 묻혀 산다.

살로 보듬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삶이 죽을 만큼 힘들어도 부드러운 살로 품어주는 사랑에 일생을 건다.

값비싼 선물이나, 화려한 말보다 갈비가 으스러지도록 안아주면 감동한다.

뼈 없는 살코기가 별 볼일 없듯이 남편 또한 아내의 뒷받침으로 인하여 빛나므로 부부는 천생연분이라 하는가보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이 노근 거린다.

잠속으로 빠져 드는데 슬며시 손을 잡는다.

그날의 모든 피로가 일시에 씻기면서 나는 숙면을 했다.

올 설날에도 우리 가족들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갈비를 먹게 될 것이다.

/ 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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