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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10.19 17:49:4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올 가을로 고 동범(東凡) 최병준(崔炳俊)선생 9주기를 맞았다. 낙엽 따라 가 버린 지 벌써 아홉 해가 된다. 동범 선생은 충북 지역사회에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린 선구자이자 청주 지역사회에서 시민운동의 횃불을 높이 치켜든 선각자다. 지난 1960년 대 초반부터 충북예총회장, 청주문화원장을 번갈아 맡으며 문화 도시를 가늠한 동범 선생은 일찍이 문화가 청주발전의 요체이자 초석임을 간파하였다. 동범 선생은 결코 불의와 타협치 않는 백절불굴의 투사 정신을 가졌으나 중앙공원에 쏟아지는 가을 별빛을 밟으며 시도 읊을 줄 아는 감성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분이시다.

그 넉넉한 가슴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데 갑남을녀(甲男乙女)나 장삼이사(張三李四)를 가리지 않았다. 선생은 참으로 청빈한 일생을 보내셨다. 문화단체나 시민단체의 장(長) 말고는 변변한 직업이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명망이 높았지만 가정적으로는 0점 아버지요 낙제점 남편이었다. 로터리 운동에 관여한 선생은 중앙공원 앞 이층 로터리 클럽 사무실에서 주로 근무하며 지인(知人)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내가 C일보 올챙이 기자시절, 선생의 사무실을 방문하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임 기자, 막걸리 한잔 하고 가" 선생은 내 팔을 강제로 잡아끌다시피 하며 1층 공원주점으로 향했다. 거기서 꽁치 두 마리와 상처투성이인 노란색 막걸리 주전자 서너 개는 비워야 비로소 손을 놓아주셨다.

선생은 한 때 C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나는 급한 원고를 받으러 우암동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마감시간은 오전 11시 인데, 선생은 원고지가 없다 하며 그때야 문방구로 가 누런 원고지를 500원어치 사 오셨다. 나는 옆에서 탈고를 기다리며 선생 방안을 둘러봤다. 도대체 비싼 가구라고는 한 점도 없다. 다만 선생이 문방사우를 놓고 쓰는 녹슨 앉은뱅이 캐비넷이 가구의 전부였다.

제3공화국 당시 동범 선생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3선 개헌에 이어 10월 유신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던 제3공화국에 선생은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혹한의 정국에서 3선 개헌 반대에 이어 공명선거 캠페인에 앞장섰으니 미운 털이 박힌 것이다. 한 번은 미국행 비행기 트랩에서 기관원에 의해 끌어 내려지는 수모도 겪었다. 세간에서는 그때 선생의 고질병인 심장병이 생긴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선생은 마치 면암 최익현과 로맨티스트 박인환을 모자이크해 놓은 듯한 품격을 지니셨다. 불의에는 목숨을 걸고 항거하지만 연약함 앞에서는 한없이 연민의 정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1992년으로 기억된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의 전신인 청주시민회를 창립한 선생은 나에게 신문사와 공동으로 국보 제41호인 용두사지철당간 보존운동을 펴나가자고 제안했다. 청주 유일의 국보인 철당간이 주변 빌딩숲에서 신음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선생은 사방팔방으로 철당간 보호운동을 폈고 나는 철당간 보호에 관한 기획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철당간 문화재 보호구역에는 세탁소를 비롯하여 극장, 백화점 등이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 포장마차나 식당에서는 오징어, 쥐포, 고기 등을 굽는 연기가 올라와 철당간의 부식을 재촉했다. 그중에서 1차적으로 철당간과 불과 7m 거리에 있는 세탁소를 철거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이 일은 사유재산보호와 맞물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천신만고 끝에 주인의 허락을 얻어내 대토 형식으로 세탁소를 철거하고 인근의 포장마차를 옮겼다. 동범 선생은 철당간 보호기금을 모금하여 시장에게 전달하였다. 시에서 먼저 벌어야 하는 문화재보호사업을 시민단체에서 벌이고 성금까지 내놓으니 시장이 약간은 머쓱한 처지가 됐다. 아무튼 동범선생의 첫 작품은 결실을 보았다. 지금 철당간 광장은 시민의 광장으로 변해 음악, 무용 등 찾아가는 문화 활동이 간간이 펼쳐지고 집회의 장소로도 애용되고 있는데 이용자들께서 동범 선생의 이런 높은 뜻과 문화재애호정신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한다. 무심천의 억새가 선생을 추모하듯 마른 꽃 대궁으로 조곡(弔曲)을 연주한다.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선생을 추모하는 시민의 소리를 듣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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