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목에서 체포돼 생을 마감한 이금(伊金)에 대한 내용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비교적 간단히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전후해 고려에서는 매향(埋香)이라는 매우 독특한 풍습이 등장한다. 매향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 향나무를 묻는 것을 말한다. 당시 이땅은 민중들은 미륵이 메시아로 강림할 것에 대비해 그에게 향을 바치기 위해 미리 향나무를 준비하였다. 그같은 행위는 집단적으로 이뤄졌고, 그들은 비나리 행사 후 그 사실을 바위에 기록하였다. 현재 전국적으로 △전남 영광군 법성면 입암리 △전남 신안군 암태면 송곡리 △강원도 고성 삼일포 △충남 예산군 봉산면 효교리 △ 충남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평안북도 정주시 침향리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사진) 등에 매향비가 존재하고 있거나, 탁본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 매향비는 지리적으로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내륙이 아닌 바닷가나 그 인근에 비가 세워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이금과 관련된 기록에서 그 단서를 만날 수 있다. '또 이르기를, "내가 산천(山川)의 신(神)을 신칙하여 보내면 왜적(倭賊)을 사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니 무격(巫覡 무당 )이 더
[충북일보] 불교의 믿음은 상생(上生) 신앙과 하생(下生) 신앙으로 구분된다. 죽었을 때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상생신앙이다. 반면 메시아가 강림해 내가 살고 있는 땅을 극락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생신앙이다. 지난날 석가모니는 제자 미륵에게 장차 성불을 해, 사바세계(현재의 땅)의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할 것을 수기(授記)하였다. 수기는 부처가 수행자에게 미래의 깨달음에 대하여 미리 지시하는 예언이나 약속을 일컫는다. 불교 경전의 하나인 《미륵삼부경》에 따르면 현재 미륵은 성불을 한 후 도솔천에서 하생 시기를 기다리며 선정에 들어 있다. 이것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그 유명한 미륵반가사유상이다. 이 땅의 '가짜 지도자들'은 현재의 삶에 지친 백성을 현혹하기 위해 미륵의 강림사상을 자주 교묘히 이용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그러했고, 《정감록》에 등장하는 진인(眞人)도 미륵의 메시아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811년 평안도에서 난을 일으킨 홍경래가 내세운 메시아도 정진인(鄭眞人)이었다. 미륵사상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시간적으로 공통점
선조들은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이치로 산세는 물[강]에 이르러 그 흐름을 멈추고,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물은 산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 같은 현상은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연이어 흐르기 때문에 비롯된다. 모든 강은 수계가 같으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려진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같은 수계(水系)라 해도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이 같은 '부분칭'은 교통 미발달로 사람들의 행동반경이 좁았고, 따라서 산 넘어 저 먼 곳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비롯됐다. 임진왜란 때 경상도 군량미를 운반하는 것과 관련하여 《선조실록》에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충청도 금강(錦江) 일대의 물이 위로는 형강(荊江)과 연결이 되고 아래로는 바다에 닿아 있어 조운할 수가 있는데, 물이 많을 때면 형강 이상까지 올라갈 수 있고 물이 얕더라도 연기(燕岐)까지는 댈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경상도 초입인 금산 지방까지는 수삼일 일정에 불과하고 길도 그리 험준하지는 않아, 조령에 비하면 자못 편리하고 가깝습니다.'- 인용문의 형강은 많이 듣던 강이름이 아니다. 연기 상류에 위치하는 것으로 여겨지나 구체적인 위치는
조선 영조 9년(1753) 단양 읍내에 우화교(羽化橋)라는 다리를 세운 인물은 당시 군수 이기중(李箕重·1697~1761)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영조 10년 다리 건립을 기념해 우화교 신사비(新事碑)라는 비석이 세워졌다. 이는 당시 우화교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그만큼 컸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당시 우화교는 죽령과 한양을 잇는 도로, 즉 봉화대로에 위치하면서 경상도 북부 사람들에게 상경과 귀향에 따른 교통 편의를 제공했다. 현재 우화교 비문의 일부에는 '圻湖之客循竹嶺而左者 必由是達焉 然登橋而望 林峀幽O O沙脩潔 如入天台武陵之路 故好事者名之曰羽化'(기호지객순죽령이좌자 필유시달언 연등교이망 임굴유O O사수계 여입천태모릉지로 고호사자명지왈우화) 명문이 보인다. 대략 '기호의 나그네가 죽령을 넘으려면 이곳(우화교 지칭)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다리에 올라 바라보면 산림은 그윽하고 개울 모래는 깨끗하니 마치 천태 무릉도원에 이르는 길과 같다. 호사가들은 이 다리의 이름을 우화라고 부른다' 정도가 된다. 우화교 신사비는 화강암 재질에 높이는 115㎝ 정도이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옛 군청 자리로 옮겼다가 1990년 하방리에 수몰이주기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과 돌계단. 그 계단을 오르면 손오공 이미지를 지닌 돌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고 전회에 밝힌 바 있다. 시선을 좌우로 돌리면 계단 면석에 돋을새김(양각)을 한 화문(花紋), 즉 꽃문양을 만날 수 있다. 전통건축에서 시선과 수평되게 볼 수 있는 석부재는 면석(面石), 반면 시선을 아래로 향해야 볼 수 있는 면은 갑석(甲石)이라고 한다. 사람은 직립하는 까닭에 거북의 등을 보려면 시선을 아래로 향해야 한다. 그래서 갑석이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법주사 대웅보전 계단면석의 문양을 연꽃으로 여기고 있다. 법주사 종무소 관계자도 전화통화에서 "지금까지 연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꽃문양을 연꽃으로 보기에는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다. 연꽃은 꽃잎이 겹을 이루면서 수직으로 핀다. 국보 제 64호인 법주사 석연지의 연화문도 그런 문양으로 돋을새김을 하였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 꽃문양을 법주사 창건설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길상초(吉祥草)로 보고 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길상초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연한 자주색의 꽃을 10cm 정도의 꽃대 위에 피운다. 고대 불교경전
현재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수몰기념관 경내에는 도유형문화재 제 80호인 '우화교 신사비(羽化橋 新事碑)'가 위치한다. 독특한 이름의 이 비는 '우화교를 새롭게 놓고 세운 비'라는 뜻을 지닌다. 비는 화강암 재질에 높이 115m의 크기의 제원을 지니고 있다. 우화교는 조선시대 경상도 사람이 죽령을 넘어 한양으로 향할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매우 중요한 교량이었다. 그런 우화교의 '우화'는 설화에 의하면 다리를 건널 때 날개가 돋아난다, 즉 선인(仙人)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충주댐이 수몰되기 전의 일대는 주변 숲과 단양천이 어울어지면서 마치 선경(仙景)의 모습을 연출했다. 이때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마치 날개가 달린 선인같다고 해서 우화교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우화교는 조선시대 언제인가 대홍수로 인해 파괴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 우화교가 그려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구한말까지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우화교 곁에 있었던 우화교 신사비는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지난 1985 옛 군청 자리인 단성면 상방리 97번지로 옮겨졌다. 이후 다시 수몰기념관 경내로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때 우화교를 세운 인물은 당시 단양군
'꽃은 5∼8월에 검은 홍자색으로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자란 긴 꽃자루 끝에 위를 보고 1개씩 달린다. 열매는 달걀 모양이며 꽃받침과 암술대가 남아 있다. 종자는 물 속에서 익는다. 우무 같은 점질로 싸인 어린 순을 식용한다. 어린 잎은 지혈·건위·이뇨에 약용한다.' 제천 의림지의 명물인 순채(蓴菜)에 대한 식물학적인 설명이다. 제천 순채는 문헌상 조선 전기부터 등장한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제천의 토산(土産)으로 신감초(辛甘草)·순채·홍화(紅花) 등을 기술하였다. 그러나 《세종실록》 지리지는 순채와 제천 의림지와의 관련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의림지와의 관련성은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순채[蓴] 의림지(義林池)에서 난다"라고 표현, 그 출처를 분명히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제천 의림지 순채는 조선 문인들의 단골 시주제가 됐다. 조선후기의 문신학자로 《농암집》을 지은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있다. 그는 '자익과 함께 의림지에서 시를 짓다'라는 시에서 제천과 의림지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넓디넓은 푸른 못 그리 아니 맑은데 / 교룡이며 어류들 생명 부쳐 살아가네 /
고려 성종 때의 제천 별호(別號·특별 명칭)인 '의천(義川)'과 전통시대 축조된 의림지(義林池)는 '의' 자를 어두에 공유하고 있다. 이는 두 지명이 상관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은 이와 관련하여 "의림지의 본래 지명은 '임지(林池)'였는데 여기에 '의(義)' 자가 붙어 의림지가 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대전은 이때의 '의' 자를 성종 때의 별호인 '의천'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연 설명하고 있다. 만약 이 설을 따른다면 제천 의림지의 본래 이름은 '임지'였으나, 별호 '의천'이 생겨난 후 지금의 이름인 '의림지'를 갖게 된 것이 된다. 의림지의 작명 시기가 곧 축조 연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나 의림지의 역사성은 그만큼 짧아지게 된다. 조선 세종~성종 연간의 인물로 홍윤성(洪允成·1425~1475)이 있다. 그는 수양대군(후에 세조)이 일으킨 계유정란 때 한명회의 살생부대로 철퇴를 휘두른 인물로 우리고장 보은 회인 출신이다. 그가 경연(經筵)에 나가 성종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조선시대 경연은 임금과 대신이 국정의 현안과 유교 경전에 대해 이야기는 나누는 정학(政學) 토론의 공간이었다. 성종: "연안(延安)의 남대
[충북일보] 돌계단은 전통 건축에서 디딤돌, 계단면석, 소맷돌, 지대석 등으로 구성된다. 디딤돌은 발바닥이 닿는 면으로 한 칸 한 칸 디디고 올라가는 돌, 계단면석은 양측면을 막은 판석을 말한다. 그리고 지대석은 계단 맨아래 위치하는 돌로 땅과 접촉하고 있고, 소맷돌은 계단면석 위에 올려져 있는 양쪽의 돌난간을 말한다. 소맷돌은 40도 내외의 경사를 이루는 것이 보통이나 이를 설치하지 않는 계단도 있다. 그러나 경사가 심하고 디딜돌의 수가 많을 경우 보행자 안전을 위하여 소맷돌을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소맷돌 아래쪽 끝에는 법수(法首)로 불리는 기둥석이 세워지기도 하고 그 위에 귀면, 동물, 연꽃 등의 조각이 장식되는 사례가 많다. 충북 불교의 종가인 속리산 법주사를 찾으면 대웅보전을 만날 수 있고, 여기에도 여느 대형 사찰 건물처럼 돌계단이 설치돼 있다. 그리고 대웅보전 돌계단을 무심코 오르다 보면 소맷돌 끝에서 원숭이 조각상과 마주친다. 원숭이는 동남아시아와 일본에 분포하고 있는 포유동물로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따라서 법주사 경내에 불쑥 들어와 있는 원숭이 조각상은 묘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인도신화에 '하누만'(Ha
병자호란(1636)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국제정세를 보는 눈이 달랐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유입된 서양문물을 보고 개방과 개혁만이 조선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동생 봉림대군에게 청나라는 오랑캐 국가로 단지 복수의 대상일 뿐이었다. 소현세자의 급서와 부왕 인조의 승하로 보위에 오른 봉림대군(후에 효종)은 포병 10만명 양성을 계획하는 등 북벌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색(色)도 멀리할 정도였다. 나아가 같은 북벌론자인 우암 송시열을 이조와 병조판서에 동시 임명, 북벌을 진두지휘토록 하였다. 그러나 송시열의 북벌은 이른바 관념론적인 북벌로 효종의 군사적인 북벌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이는 효종 서거 후 예송논쟁이 두 차례나 일어난 것에서 그대로 입증된다. 우암은 속으로 전전긍긍하였다. 당시 정치 지형은 효종과 송시열이 이끄는 산당(山黨)이 군사적인 북벌을 매개로 암묵적인 연합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벌의 반대는 곧 두 권력 관계의 파탄을 의미했다. 당시 송시열·송준길 등은 산당, 한양을 거주지로 했던 김육(金堉) 등은 한당(漢黨)으로 불렸다. 전자는 대동법 시행을 반
[충북일보] 속리산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을 둘러싸고 최근들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다. 법주사 미륵대불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시멘트 미륵대불, 청동미륵대불, 금동미륵대불 순으로 불리워져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조각가인 김복진은 1939년 시멘트 미륵대불을 제작했다. 그리고 월탄스님이 주지로 있던 1987~1990년 사이에는 청동미륵대불, 석지명 스님이 주지로 있던 2000년에는 청동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가 진행됐다. 이후 청동색 녹이 배어나오면서 금년 4월까지 3번째 개금불사가 진행됐다. 금동미륵대불은 말 그대로 금동+미륵+대불의 조합어이다. 일련의 진행을 보면 법주사는 불가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이것들에 집착(?)을 보이고 있다. 금동은 곧 황금색을 의미하고, 따라서 석불, 철불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불상은 황금색을 나타내고 있다. 황금색에는 부처의 이른바 32길상(吉相)이 관여한다. 32길상은 《중아함경》과 《방광대장엄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른바 부처님 외모에 관한 규정이다. 정유육계(頂有肉髮), 나발우선 기색감청(螺髮右旋 其色紺靑), 액광평정(額廣平正) 등의 표현이 있다. 순서대로 '정수리에 육계가 있다', '소라같은 머리칼
대한불교조계종 산하에는 25개 교구가 존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속리산 법주사(法住寺)는 제 5교구 본사로, 도내에만 60여개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종갓집격인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고, 776년(혜공왕 12)에 진표(眞表)가 중창했다. 법주사의 법주는 '법이 머무른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이는 창건 설화와 관련이 깊다. 창건주 신라의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고, 따라서 '법주사'라는 사찰명을 지니게 된 것으로 구전된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설화로, 사찰명 '법주사'가 역사 기록에 집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 이다. 법주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철기(鐵器)에는 '統和二十四年歲次 / 丙午正月▨▨成幢 / 棟法▨▨▨▨▨▨'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해석하면 '통화(統和) 24년째 되던 해인 병오년 정월 일에 당(幢)을 주조하여 만들었다. 동량(棟樑)은 법▨(法▨)이다. ▨▨▨▨.' 정도가 된다. 명문 '法▨' 가운데 뒷글자가 마모돼 있어 '住' 자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나 전문가들은 '住'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통화 24년째의 병오년은 고려 목종
[충북일보]청주시 문화제조창에 60년 전 조성된 옛 연초제조창 시멘트 굴뚝에서 균열이 발생해 콘크리트 덩어리 탈락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시에 따르면 이달 초 청주지역에 강풍주의보가 발효됐을 당시 이 굴뚝에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탈락하는 박락현상이 발생했다. 떨어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의 크기는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에 달했다. 이 굴뚝은 옛 연초제조창 기관실에 부속돼 있던 굴뚝으로, 현재 기록상으로는 196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어진 지 60년이 넘다보니 콘크리트가 노후화되면서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했고, 강풍에 일부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떨어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굴뚝의 높이는 50m에 달해 자칫하다 행인의 머리 위로 이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떨어질 경우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다행히 당시 행인이 없어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시는 우선 탈락의 우려가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모두 아래로 떨어뜨린 상태다. 이후 굴뚝 인근에 펜스를 쳐 행인들의 통행도 차단했다. 시는 곧바로 긴급정밀안전점검을 의뢰해 이달부터 오는 6월까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조사를 통해 시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안전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충북 지역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각 정당은 '대선 모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가 후보로 확정되면서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 본격 착수했다.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본선 조직을 구성하는 등 전열 정비에 힘을 쏟고 있다. 29일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충북도당은 다음 달 초 선대위 구성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충북선대위는 도당을 중심으로 전·현직 단체장과 국회의원까지 폭넓게 아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광희(청주 서원) 충북도당위원장과 도내 현역 국회의원 등이 공동으로 선대위원장을 맡아 조직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현역 중 이연희(청주 흥덕) 국회의원은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 총괄본부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도당은 5월 황금연휴가 지난 뒤 선대위 첫 회의를 발대식을 겸해 열기로 했다. 공직선거법에 선거일 전 30일부터 선거일까지 당원 집회 등을 열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 선대위 구성도 본격화하고 있다. 다음 달 1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만큼 인선
[충북일보] "충북 이노비즈 기업들이 연결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은 지역 내 탄탄한 경제 기반으로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30일 취임한 안준식(55) 신임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장은 회원사와 '함께 성장하는 기술혁신 플랫폼'으로서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 역할을 강화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안 신임 회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할 부분은 이노비즈기업 협회와 회원사 위상 강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외협력위원회(위원장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경영혁신위원회(위원장 이미연 ㈜유진테크놀로지 대표) △회원사 협력위원회(위원장 한연수 ㈜마루온 대표) △봉사위원회(위원장 함경태 ㈜미래이앤지 대표) △창립 20주년 추진위원회(위원장 신의수 ㈜제이비컴 대표)로 5개 위원회를 구성했다. 안준식 회장은 도내 회원사들이 가진 특징으로 빠른 적응력과 협력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는 "충북 이노비즈 기업은 제조 기반 기술력과 신사업으로의 적응력이 뛰어나다. 첨단산업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다수 분포해 있고, 산업단지 중심 클러스터화도 잘 이뤄져 있어 협력 네트워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