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 우리고장 영동을 소개할 때 윤상(尹祥·1373∼1455)이라는 인물의 표현을 인용한 바 있다. '산과 물이 맑고 기이하다. 윤상(尹祥)이 금유(琴柔)에게 보낸 글에, "영동은 산수(山水)가 맑고 기이해서 시(詩) 짓는데 도움을 받을 만한 것이 진실로 많다" 했다.'- 윤상은 경상도 예천군의 향리인 윤선(尹善)의 아들로 태어나서 과거를 통해 양반 신분이 된 인물다. 과거 합격자 명단을 적어 놓은 방목(榜目)을 보면 그는 태조 때 진사와 생원시에 합격한 후 문과에 급제했다. 조선시대에는 형식상 서얼을 제외하고 양인 이상이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준비에는 적지 않은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또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평민(양인)이 합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려 때 향리는 한 지역의 지배계급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향리(아전)는 수령의 보좌역으로 중인에 해당했다. 윤선이 이런 환경에서 오늘날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문과에 합격했다는 것은 남다른 노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료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적지 않이 등장한다. '공은 자질이 아름답고 총명이 뛰어나게 태어났다. 향리로서 고을 일을 맡아 볼 적에 고된 사무를 보면
1413년(태종 13)은 한국 지명 변천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때 지명에 위계성을 부여하는 계수관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그 결과, 충청도 4개 대읍인 청주, 충주, 공주, 홍주 등은 '州'(주) 자를 계속 유지하게 됐다. 반면 소읍이라고 할 수 이는 괴주는 괴산, 옥주는 옥천, 제주는 제천, 진주는 진천으로 각각 지명이 변했다. 이 과정에서 괴산같이 산이 많은 고을에는 '山' 자가, 물이 비교적 풍부한 곳에는 '川' 자가 붙었다. 충북 최남단인 영동(永同)의 지명에는 이같은 사례가 적용되지 않았다. 영동은 신라 경덕왕 때 길동군에서 영동군으로 변한 후 그 지명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본래 신라의 길동군(吉同郡)인데,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성종 을미에 계주자사(稽州刺史)로 승격하였다가, 목종 8년 을사에 자사를 폐하였고, 현종 9년에 상주(尙州) 임내에 붙였으며, 명종 임진 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인용한 문장은 영동이 한 때는 계주(稽州)라는 지명을 지녔었고, 또 경상도 상주에 속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 현종 9년은 대략 1018년이 된다. 따라서 영동은 비교적 오랜 세월 동안 경상도에
괴산군이 얼마전 지명탄생 600주년이 되는 2013년을 앞두고 '괴산군 탄생 600주년 기념사업' 아이디어 공모를 한다고 밝혔다. 군은 "괴산 지명 탕생은 괴산의 역사·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군민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이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지명 괴산(槐山)이 처음 생겨난 시기는 군이 밝힌대로 6백년 전이 1413년(태종 13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 현종 9년에 충주에 붙였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고, 조선 시대인 태종 3년에 지괴주사(知槐州事)로 승격하고, 태종 13년에 지금의 이름인 괴산으로 고쳐 군으로 삼았다'라는 표현이 보인다. 그 이전에는 잉근내군(仍斤內郡·고구려), 괴양군(槐壤郡·신라), 괴주(槐州·고려) 등으로 각각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왜구들이 해안뿐 아니라 수계를 타고 충청도 내륙까지 침입했다. 이때 괴주라는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왜를 괴주(槐州)에서 쳐서 3급을 베었는데 왜적 200여 기(騎)가 괴주 장연현에 침입했으므로 왕안덕이, 도흥과 함께 이를 쳐서 3급을 베었다.'- 괴산 지명과 관련해서는 살펴볼 것이 더 있다. 먼저 왜 괴주(槐州)에서 괴산(槐山)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점이다. 조선 태종은 즉위 1
한남금북정맥 줄기에서 갈라져 피반령을 거쳐 팔봉산과 은적산, 그리고 황우산을 끝으로 금강물줄기로 떨어지는 46.6km의 산줄기가 팔봉지맥(八峰枝脈)이다. 6년 전인가... 숫자적인 정확한 자료도 경험적인 친절한 안내서도 없이 달랑 지도 한 장, 나침반 그리고 좌충우돌 열정 하나로 외진 산줄기를 누비던 시절은 살면서 가끔 옛 시절 삼아 이야기하지만 고생도 즐거움이 되었던 시절이기에 변방의 작은 성취감도 기쁨이 되었던 시절이기에 더 그립고 애틋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호천 수계를 이루는 산줄기인 미호샛강길은 부강의 황우산을 시작으로 은적산과 팔봉산 그리고 피반령을 거슬러 한남금북정맥 마루 금으로 이어진다. 바로 팔봉지맥 마루 금이다. 다시 한 번 그 길을 걷게 될 줄이야... 감회가 남다르다. 아련하게 남아있는 우리들의 지난날과 보태어질 날들이 만나는 날. 서둘러 나서는 아침이 두서가 없는 건 설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으스스' 얕은 한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각내와 부강을 잇는 저산고개에서 망덕산을 향해 오른다. 20여분이면 망덕산을 오를 수 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팻말이 앙증맞다. 특징도 조망도 없는 그렇고 그런 동네뒷산의 평범함이 망덕 산의 모습이다.
감귤이 언제부터 제주도에서 재배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일본 고문헌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본서기(日本書記)에는 신라 초기에 상세국(桑世國)으로부터 귤을 수입한 기록이 보인다. 상세국은 지금의 제주도를 일컫는다. 따라서 제주도에서는 늦어도 삼국시대 초기부터 재래 감귤이 재배했음을 알 수 있다. 귤은 조선시대에도 매우 귀한 과일이었다. 때문에 남해 해안가에 감귤나무를 이식하려는 시도가 자주 있었다. '상림원 별감 김용(金用)을 제주로 보내어, 감귤 수백 주를 순천 등의 바닷가에 위치한 고을에 옮겨 심게 하였다.'- 조선 조정은 과거시험 직전에 '황감제'(黃柑製)라는 의식을 자주 거행했다. 이는 해마다 제주도에서 진상하던 황감을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에게 내리고 과거시험을 보던 의식을 말한다. 실록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반궁(泮宮)에 황감을 하사하고 잇따라 시사하여 이유신 등 여섯 사람을 뽑았는데, 수석을 차지한 자에게는 급제(及第)를 내리고 나머지에게는 각각 분수(分數)를 주라고 명하였다.'- 짧은 문장이지만 난해한 단어가 많이 보인다. 반궁은 성균관, 급제는 벼슬, 분수는 시험 결과의 등수를 의미한다. 그리고 당시 과거의 수석 합격
대과(문과)와 구별되는 소과에는 생원과 진사시 등 두 종류의 시험이 존재했다. 생원시는 유교경전에 관한 지식을 묻는 것을, 진사시는 부(賦)와 시(詩) 형태로 문예창작 능력을 테스트했다. 전자가 오늘날 독해시험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논술시험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두 시험에서 급제한 사람을 우리 귀에 익은 '생원'과 '진사'라고 각각 불렀다. 문과가 3단계에 걸쳐 진행됐다면 소과는 초시(初試)와 복시(覆試)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초시는 한양과 각도에서, 그리고 2차 시험이자 최종 시험인 복시는 한성에서 실시하였다. 소과 초시에는 이른바 지역 쿼터제가 적용됐다. 한양에는 생원·진사가 각각 200명 배정됐다. 그리고 각도에는 생원·진사가 각각 경기도 60명, 충청도 90명, 전라도 90명, 경상도 100명, 강원도 45명, 평안도 45명, 황해도 35명, 함경도 35명씩 모두 1천4백명이 배정됐다. 이중 복시를 통해 2백명을 최종적으로 선발했다. 따라서 소과의 최종 경쟁률도 대과와 비슷한 7대 1 정도가 되도록 조절됐다. 그러나 복시의 최종 선발에는 그러한 지역 간의 균형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역 간의 격차가 컸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대과에
응제시(應製詩)는 왕명에 의해 짓는 시를 말한다.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개성이 함락당했다. 공민왕은 하는 수 없이 대신을 이끌고 몽진(왕의 피난)에 나서 지금의 안동에 3개월 가량 머무르게 된다. 당시 안동은 복주로 불렸다. 이후 공민왕은 상주, 보은 원남, 회인 등을 거쳐 우리고장 청주에 당도, 약 5개월간 머물게 된다. 청주가 고려의 임시수도 역할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체류 기간이 길어지자 과거시험까지 보게 된다. 이때 그 유명한 망선루(당시 취경루)가 등장한다. 고려 현종도 거란 침입 때 전라도 나주로 피난갔다가 환궁하는 길에 청주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으나 이때는 그 기간이 나흘(1011년 2월 13~16일)에 불과하다. 공민왕은 청주에 체류하던 기간 중 무심천변에 세워진 공북루(拱北樓)라는 정자에 올라 이른바 배표(拜表) 의식을 거행하게 됐다. 공북루는 '북쪽(개경)을 섬긴다'는 뜻이고, 배표는 사신으로 보내는 신하를 전송하는 의식을 일컫는다. 공민왕은 즉위 초기에는 배원정책을 철저히 추구했다. 그러나 홍건적 침입으로 국토가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는 일시적이나마 배원정책을 철회하게 된다. 바로 이날 청주 공북루에서의
'비록 엄한 형벌로 바로잡고 위세와 노기로 사람을 제압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요행히 법률에 조촉되지 않으려는 생각만을 가지게 될 뿐 인의 마음은 갖지 않게 됩니다.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지만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습니다. 원한은 큰데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며 무서월 할 것은 백성뿐입니다. 물이 배를 나아갈 수 있도록 하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습니다.' 민심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으로 지금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문장을 쓴 인물은 당나라 초기의 공신이자 학자인 위징(魏徵)이다. 그는 10가지 내용을 당태종에게 상소했다. 따라서 상소문의 제목도 '간태종십사소'(諫太宗十思疎)이다. 조선시대 같은 제목의 상소문을 올린 인물이 있다. 세종-성종 연간을 산 김흔(흔은 訴에서 삐침 제외·1448~1492)이라는 인물이다. 명종실록에 '신은 삼가 듣건대 성종조(成宗朝)에 직제학 김흔이 십사소(十思疏)를 올리니, 성종은 어찰(御札)로 답하고 다시 옷과 신을 하사하여 포장하였다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당시 김흔은 위징이 상소했던 내용을 성종에게 똑같이 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종실록에 "당(唐)나라 태종(太宗)도 훌륭하고 뛰어난 임금이었으나, 나중에 가서 십점소(十漸疏)
민물 매운탕으로 유명한 부강의 용댕이 매운탕집을 지나면 공사중인 철교량이 나온다. 공사중인 철교량을 지나 서쪽 방향으로 가다보면 아기자기한 서해 바다에 온 착각을 하게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밀전병을 부치듯 모래섬들은 이곳 저곳에 떠있고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백로들과 쇠오리, 흰뺨 검둥오리, 원앙, 비오리등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내륙 최대의 철새 도래지이며 생태의 보고라고 하는 합강이다.장수 뜸봉샘에서 발원한 금강과 음성 마이산에서 발원한 미호천이 합류하는 곳이라 하여 합강리다. 과거 물길을 이용해 바다의 물류를 운송하는 종착지의 역할과 소금과 젓갈류의 교역을 이루는 내륙 최대의 교역장의 역할을 한 장소이기도 하다. 과거 합강 인근에는 부강포구가 있었다고 한다. 부강은 금강하구로부터 마지막 포구다. 그래서 충청 내륙지방의 관문 역할을 했었다. 황해에서 생산되는 어염과 일용잡회들이 이곳으로 모여지고 그 일대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집산되었던 경제의 중심지였다. 용당이(혹은 용댕이, 현재의 제방에서 강 안쪽에 위치)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부강포구는 한때 200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는 '전국 8대 포구' 중의 하나였다. 용당이는 예
조선시대 문과(대과)는 1번이 아닌,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 등 3단계로 나눠 진행됐다. 이는 국가고급 관리를 뽑는 만큼 엄정·신중을 기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1단계인 초시에는 이른바 지역 쿼터제가 적용됐다. 초시에서는 성균관 유생 50명(관시), 한양출신 60명(한양시), 지방출신 140명(향시) 등 총 250명을 선발했다. 향시 140명은 경기도 10, 강원도 15, 황해도 10, 충청도 25, 경상도 30, 전라도 25, 평안도 15, 함경도 10명 등으로, 충청도는 한양을 제외하고 경상도 다음으로 많았다.2단계인 복시는 관시 ·한성시 ·향시의 입격자 250명을 식년 봄에 서울에 모아 다시 시험을 보게 해 최종적으로 33명을 뽑았다. 250명 중 33명을 뽑았으니까 실질 경쟁률이 대략 7.6대 1 정도가 됨을 알 수 있다.3단계인 전시는 2차 합격자 33명을 대상으로 당락이 아닌, 갑·을·병 순위를 결정하는 시험이었다. 임금님 앞에서 시험을 봤던 전시는 부정행위가 없는 한 탈락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참고로 전시 답안은 어둡기 전에 작성·제출해야 했고, 임금에게 집적 보이는 것인 만큼 정자체인 해서로 반드시 써야 했다.문과 응시생
사부(師傅)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기를 가르쳐준 스승을 사부라고 부른다. 또 임금의 어릴적 스승도 사부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왕자 교육은 시강원(侍講院)이라는 곳에서 했다. 이 시강원의 정1품 벼슬이 사부다. 이에 비해 왕세손에 대한 교육은 강서원(講書院)이라는 곳에서 했고, 그 벼슬은 한 단계 낮은 종1품이었다. 실록에 임금과 왕자시절 사부에 대한 이야기가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임금이 매우 즐거워하여 서로 대하기를 잠저 때같이 하였다. 민제가 임금을 선달이라 칭하니, 임금도 민제를 사부라 불렀다. 술자리가 파하자, 민제가 임금을 전송하며 대문 밖에 서 있으니, 임금이 민제에게 들어가라고 청했다.'- 태종은 이것이 인연이 돼 나중에 사부 민제의 딸(원경왕후)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인용문에도 등장하 듯이 둘은 잠저(임금이 되기 전에 거처하던 집) 시절에 서로를 '선달'과 '사부'라고 부를 정도로 인간적으로도 가까웠다. 따라서 민제의 두 아들인 민무구, 무질 형제는 그가 생존할 때는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지 한달만에 태종은 외척 발호의 싹을 제거하는 칼을 휘둘렀다. 그 결과, 매형뻘인 태종에 의해 민무구, 무질 두
지난 2007년부터 충북도민들과 함께 해온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아카데미'가 올해로 6년차를 맞았다.도내 명산과 둘레길을 돌며 '올바른 산행문화 보급'에 앞장서온 클린마운틴 아카데미. 올해는 전국의 옛길과 둘레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전국에 녹아 있는 조상의 얼과 자연의 숨결을 보다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다.첫 탐방지는 광주 무등산 옛길. 50여명이 46차 클린마운틴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25일 오전 7시 청주체육관을 출발한 버스는 2시간30여분을 달려 무등산 옛길 1구간 입구에 도착했다.2009년 5월 개방된 1구간은 광주 산수동~원효사로 이어지는 7.75㎞ 코스. 아쉽게도 본 옛길은 사라졌다고 한다. 도로 포장 때문이다. 대신 바로 옆에 산길을 냈다. 그곳을 따라 형형색색의 등산복 행렬이 시작됐다."호로록~, 호로록~." 산새 울음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동행한 윤석준 숲 해설가는 "새 소리와 비슷하지만, 사실은 산개구리 소리"라고 했다. 겨우내 참았던 목청의 폭발인가, 우리를 반기는 인사인가, 그 소리 한 번 기똥차다.1시간30여분을 걸어 청풍쉼터에 도착했다. 잠시 목을 축이는 사이, 클린마운틴 아카데미 대장 격인 김웅식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일반산행
[충북일보] 최근 청주시 미호강변에서 아주 기묘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새벽에 수백여 명의 인파가 강변 공원 앞에 줄을 서있는 낯선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젊게는 30대에서 많게는 70대 노인까지 행렬에 참여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돗자리를 펴고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충북일보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이들은 미호강 파크골프장에서 '2025 생활스포츠지도자' 실기·구술 시험을 보러온 응시자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야심한 시간에 줄을 서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파크골프 종목 생활스포츠지도자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식 시험장이 전국에서 청주 딱 한 곳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3천여 명의 응시자들이 서로 연습기회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 응시자에게 왜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이냐고 묻자 "밤 11시부터 줄을 서도 새벽 5시 30분 파크골프장 개장시간에 대기번호 후순위를 받을 정도"라며 "줄을 서지 않으면 입장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춘천에서 왔다는 또 다른 응시자는 "사람이 너무 몰려서 하루 1번 겨우 연습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전날부터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청주시설관리공단을 도시공사로 전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16일 시에 따르면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청주시의회 정례회에 '청주도시공사 설립 및 운영 조례'를 상정할 예정이다. 시가 시의회에 상정한 조례안에는 기존 청주시설관리공단의 기능을 확장해 도시개발사업과 위수탁·대행사업을 수행하는 통합형 공사를 만드는 방안이 담겼다. 시가 공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앞으로 지역에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타 기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추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청주시는 개발사업을 주도할 주체가 없어 대부분의 개발사업을 LH나 충북개발공사, 민간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또 시설관리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청주시설관리공단으로는 각종 개발사업을 처리할 여건이 안된다는 것도 시가 새로운 컨트롤타워 조직 구성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청주시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의 중심지역이고 공항과 철도, 도로 모두 발달해 앞으로의 개발 수요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도시공사 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시의 주장이다. 시는 시설공단이 도시공사로 전환되면 도시개발에 따른 이익이 지역에 환원할 수 있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