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임금들은 지방을 통치를 하는데 있어 이른바 '충청도 양반' 때문에 골치를 많이 앓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역사학에서는 국왕보다 재지사족(향촌 사대부)의 영향력이 더 크게 먹혔던 지역을 이른바 '난치읍'(難治邑)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 후기의 난치읍 현상은 경상도 안동과 한양과 가까운 경기도 여주·광주 등에서 많이 나타났다. 경상도 안동의 사대부들은 인조반정 이후 집권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게 되자 서원(書院), 계 등을 만들어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 식으로 단결·단합했다. 이들이 워낙 강한 배타성을 나타내다 보니 감사(오늘날 도지사)와 수령의 영(令)이 먹히지 않으면서 난치읍의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경기도 광주와 여주 지역은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역인 까닭에 사대부들의 묘가 대거 조성됐다. 그러다보니 묘지소송(일명 산송)이 많이 발생하면서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난치읍)이 되기 시작됐다. 그러나 안동과 근기 두 지역보다 난치읍의 이미지가 강했던 곳은 지금도 그 소리가 남아있는 양반의 고장 충청도였다. 당시 사대부 중에는 호서(충청도) 출신이 적지 않았고, 또 일부는 경화벌열이 돼 충청도에 농장을 갖기 시작했다. 경화벌열은 향촌
전회에 경부선 역이 한적한 마을인 조치원에 들어서면서 조치원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조치원은 청주와 사이에 신작로 개설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신작로(新作路)는 말 그대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새롭게 낸 길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가 박태순은 '무너지는 산'에서 신작로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시냇물은 이제 그 양편에 축대를 쌓아 하수천이 되었고 소달구지가 지나다녔을 오솔길은 자갈로 다져진 신작로가 되어 버스가 경적 소리를 내며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신작로가 바탕이 된 지금의 청주-조치원 국도는 비교적 반듯한 편이다. 그러나 당시 일제는 조치원과 청주를 잇는 신작로 노선으로 2개 안을 검토했다. 하나는 지금의 노선이고, 또 하나는 미호천 둑을 따라 보다 북쪽으로 청주를 연결하는 안이었다. 일제는 검토 끝에 지금의 노선을 택하고 1910년 10월 신작로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6월에 완공했다. 신작로가 들어서기 전의 구한말 우리나라 도로 사정은 불문가지였다. 이방인의 눈에도 조선의 길은 '스스로 그렇게'(自然) 생긴 길이었다.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여사가 1890년대 한국을 찾아 이런 기행문을 남겼다. '한국의 도로는 인공적
속보= 소백산 국립공원의 북쪽사면(충북 생활권)에 방사된 수컷 토종여우는 암컷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방사지 주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종복원기술원(원장 권철환)은 내년 3~4쌍을 다시 방사할 계획이다. 종복원기술원 정철운 센터장과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 수컷의 동태가 궁금하다. 암컷과 헤어져 혼자가 됐는데 정상적인 먹이활동을 하고 있나. "처음 방사된 곳(경북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 161)의 1~1.5㎞ 반경을 떠나지 않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낮에는 계곡 깊숙한 곳에 들어가 숨고, 밤에는 활발히 돌아다니며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 무선추적을 통해 계속 포착되고 있다. - 수컷 토종여우가 첫 방사지 부근을 떠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나. "여우의 주먹이원은 쥐같은 설치류이다. 사전 조사를 했을 때 첫 방사지 주변은 설치류의 서식밀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던 곳이다. 수컷 토종여우도 이를 알기 시작한 것 같다. " - '부부'가 될 줄 알았던 암·수컷 두 토종여우가 왜 헤어졌는지 궁금하다. 일반인이 잘 모르는 여우만의 습성이 있는가. "여우는 암수가 항상 붙어다니지 않는다. 겨울에 교미하고 봄에 가족을 만드는
겨울철새이자 천연기념물(제 243호)인 독수리의 이동 경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규명됐다. 15일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경기 파주에서 조난됐다가 구조된 5마리의 독수리중 1마리가 몽골고원으로 갔다가 월동을 위해 처음 조난지로 다시 되돌아왔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당시 조난된 5마리의 독수리에게 국내외 이동과 서식지 이용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GCT-B2로 불리는 위치추적 장치를 각각 부착했다.그 결과, 올봄 방사된 5마리 중 '3281번 독수리'가 북한 청천강(4월 15일)→중국 랴오닝성(5월 5일)을 거쳐 최대 번식지인 몽골고원에서 여름을 나고 최근 파주로 다시 귀환했다. 이를 수치로 환산한 결과, '3281번 독수리'는 직선거리로는 1천700km, 또 하룻동안에 많게는 340km를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수리의 이동 경로와 그에 따른 시간 소요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앞으로 독수리의 월동 시기별 행동 특성과 번식·서식지 정보 획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독수리뿐만 아니라 큰 대형 조류인 큰고니, 저어새 등도 이동 경로 모니터링을 수행하여 천연기념물 보호관리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
보은 회인은 지금은 면(面) 단위에 불과하지만 고려시대 때는 현(縣)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도 그 행정적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대전시 회덕에 짧은 기간 예속된 적이 있다. 회덕, 회인할 때의 '회'는 한자 '품을 懷'(회) 자다. 두 지역의 지명을 직역하면 회덕은 '덕을 품는다', 회인은 '인을 품는다'라는 뜻을 지닌다. 이른바 유교식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두 지역이 한때 친족 관계였던 것을 의미한다. 실록 지리지에 그 내용이 들어있다. "고려가 회인으로 고치어, 현종 9년에 청주 임내에 붙였다가, 뒤에 회덕 감무로써 회인을 겸임하였다."- 인용문 중 '회덕 감무로써 겸임했다'는 뜻은 회인이 회덕 현감의 행정적 지휘를 받은 것을 뜻한다. 회인은 이같은 부침을 무릅쓰고 부군 통폐합 조치가 있던 지난 1914년까지 현의 지위를 유지했다. 회인에는 호점산성(虎岾山城)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성이 있다. 호점을 글자 그대로 풀면 '호랑이 고개'라는 뜻이 된다. 구한말까지 호환(虎患)이 존재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여름철에는 방입구에 그물을 치고 잘 정도였다. 계곡이 깊고 산이 높은 회인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강원도 산골에는 아직
7. 조슈대포(長州大砲), 시모노세키에서 서양군함을 포격하다 일본은 끊임없이 내전을 치룬 실전의 나라였다. 축성할 때에도 실전 경험을 반영해서 커다란 돌로 살벌하게 성벽을 쌓았다. 중요 성내 건물의 방어 구조를 보면 끔찍하기조차 하다. 야마구치시 하기에는 외부 침입자를 몰아넣는 T자형 길과 막다른 골목이 있다. 실전 경험에서 나온 함정이었다. 일본에선 실전에 필요하면 무엇이든 즉각 확보해서 응용했다. 1543년 규슈 남부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표류한 중국배에 철포(鐵砲, 화승총)를 가진 포르투갈 상인이 타고 있었다. 섬의 영주인 토키타카(時堯)는 놀라운 무기로 판단하여 거금을 주고 철포 2정을 구입해서 복제에 성공했다. 경이로운 속도로 보급된 이 철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과 1592년 조선 침략의 원인이 되었다. 유럽에서 이양선이 오자 조선의 조정은 걱정만 하고 대처 방도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각 번이 경쟁하던 일본에서는 금방 서양의 무기를 배웠다. 서양식 대포를 제조한 것은 실전에서 나온 노력의 성과였다. ■ 한일 간 군대와 무기 관심도 한국에서 군대의 역사와 무기의 발달사는 교양의 영역에서 비켜나 있다. 국가와 사회사에서 군대가 갖는 비중이 매우
조치원을 가리켜 흔히 '충북같은 충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만큼 청주를 생활권으로 하는 사람이 많고 역사적으로도 청주와 인연이 깊다. 지금의 전의지역은 940년(고려 태조 23) 청주목 소속이었고, 연기현은 1018년(고려 현종 9) 청주에 영속된 사례가 있다. 봉수도 청주의 것을 받았다. '봉화가 1곳이니, 현의 남쪽 용수산(龍帥山)이다. 동쪽으로 청주 저성(猪城)에, 서쪽으로 공주 독성(禿城)에 응한다.'- 최근 조치원에서 '조치원역'을 '세종역'을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조치원도 당연히 세종시에 속하고 있다. 그러나 세종시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개명을 통해 조치원역을 세종시의 관문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금은 연기군청이 조치원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연기현 치소는 지금의 조치원읍이 아닌 다른 곳에 위치했다. 조치원읍에서 남쪽 삼십리 되는 곳에 연기군 남면 연기리가 있다. 바로 이곳에 연기현의 치소가 위치했다. 역사도 비교적 오래 돼 백제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이곳의 현의 중심지였다. 그러다가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고, 그리고 조치원에 역이 생기면서 군청이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이
조선시대 충주 이홍윤 옥사 사건으로 인해 한 달 사이에 능지처사를 당한 사람은 28명, 고문사한 백성은 8명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능지처사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그 가족도 연좌제에 따라 교수형을 당한 사람도 적지 않아, 당시 극형을 당했던 충주 사람은 보다 많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홍윤 옥사는 명종대의 훈구파가 이홍남·홍윤 형제의 개인적인 다툼을 이용해 충주사림을 해체하려 했던 사건을 말한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얼마전 '충주지역 유학전통과 사림의 역할' 주제의 특강을 충주문화원에서 가졌다. 강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 박홍갑 박사로, 그는 '충주사림'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명종실록에는 앞서 언급한 이홍윤 사건과 관련해 '충주고을 전체가 온통 텅비었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신은 논한다. 이 옥사에 연루되어 주륙(誅戮)당하거나 귀양간 자가 무려 40∼50인에 달하여 충주(忠州) 전체가 온통 비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이홍남이 꾸며낸 일이었다. 그런데 이홍남이 자손을 둔 것이 어찌 천도(天道)이겠는가.'- 이와 관련해 박 박사가 실록 행간을 보다 자세히 분석한 결과, 당시 혐의를 받고 추국장으로
멸종위기종 2급 이상의 희소성을 지닌 '작은관코박쥐'(학명 Murina ussuriensis)가 충북 제천에서 80여년만에 발견됐다. 이에 따라 충북 백두대간은 종 다양성이 가져다 주는 생태성 이미지를 더욱 높일 수 있게 됐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2011년 실시한 '국가장기생태연구사업'에 대한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환경과학원은 전국 생태 전문가 3백여명이 참여, 지난 2004년부터 담수, 연안, 육상, 동물 등 4개 분야의 기후 변동에 따른 동·식물의 생태 변화를 연구해 오고 있다. 이 연구는 2013년까지 계속 된다. 그 결과, 80년 만에 충북 제천에서 멸종위기종 2급인 '작은관코박쥐'(일명 쇠뿔박쥐)의 서식을 확인했다고 과학원측은 밝혔다. 개체수는 수컷 2, 암컷 1 등이다. 작은관코박쥐는 지난 1931년 한반도에 서식한다는 기록이 있었을 뿐 남한지역에서는 관찰되지 않아왔다. '작은관코'라는 독특한 표현이 들어간 이 박쥐는 코가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데서 이름이 지어졌다. 작은관코박쥐는 콧구멍이 관모양으로 주둥이 끝까지 돌출돼 있으면서 양옆으로 열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이밖에 이 박쥐는 △머리~몸 4~5㎝ △꼬리 2~3㎝ △팔길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당시 경상우수영는 원균(元均·1540∼1597)이 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왜수군과의 전력차가 너무 심하자 배를 불태운 후 육지로 도망하려 했다. '왜병들이 바다를 건너오자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은 대적할 수 없는 형세임을 알고 전함과 전구를 모두 물에 침몰시키고 수군 1만여 명을 해산시키고 나서 혼자 (…) 육지를 찾아 적을 피하려고 하였다.'- 이때 원균을 붙잡아둔 인물이 부하 이운룡이다. 그는 원균의 앞을 가로 막으며 "장수는 경내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사또가 나라의 중책을 맡았으니 의리상 관할 경내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이곳은 바로 양호(兩湖)의 요해처로서 이곳을 잃게 되면 양호가 위태롭다. 지금 우리 군사가 흩어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모을 수 있으며 호남의 수군도 와서 구원하도록 청할 수 있다.'- 원균을 결국 경상우수영을 버리지 못했다. 대신 이운룡의 건의대로 이순신의 전라좌수영과 '연합함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대 진영의 전체 동의가 있어여만 가능한 연합함대 구성은 쉽지만은 않았다. 이때 양진영을 오가며 청병사절 역할을 한 인물이 이영남(李英男·1563∼1598)이다.
[충북일보]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손님이 연이어 들어선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오늘 저녁을 위해 포장하는 손님,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달라는 손님, 내일 점심 포장을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포장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진열장에 보이는 빵 메뉴부터 6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라자냐, 샐러드, 잠봉뵈르 등 신중한 선택이 이어진다. 스피카 카페에서는 청주 흥덕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보인다. 통창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환하게 들어오는 채광이 따스한 공간을 연출한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곳에서는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온다. 스피카의 이선영 대표는 10년 넘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성인이 된 후 일본으로 떠날 용기를 줬다. 일본의 베이커리나 카페 등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며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게 됐다. 40살이 되면 뭔가 달라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여름철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17일 시에 따르면 올 여름 청주지역 무심천 범람에 대비해 시민들의 통행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한다. 이 자동차단시설은 갑작스러운 폭우나 장마기간 무심천의 수위가 위험수준에 달했을 때 시민들의 세월교 보행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시는 지난해 운천동 세월교 1곳에 양방향으로 이 시설을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시는 이달 내로 무심천 19곳 세월교 전체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단시설 1기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1천만원 수준으로, 모두 38개 시설에 3억8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직원들이 세월교를 일일이 방문해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부턴 원격으로 작동하는 이 시설을 무심천 전 구역에 설치해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이 시설은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투입 대비 사업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시는 재난 예보·경보시설도 개선한다. 시는 노후화된 예보·경보시설을 점검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총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