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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양반'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조선후기 임금들의 '지방 통치'
안동·경기 일대보다 훨씬 난치읍으로 불려
사대부들, 토호화되면서 정부에 순응 안해
신흥 사대부 성장하면서 향전도 유발시켜

  • 웹출고시간2012.11.19 18:13:2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선후기 충주목은 한양을 제외하고 전국 3위의 대읍이었다. 가흥, 목계 등 내륙항구로 인해 물산이 풍부하기도 했지만 사대부들도 많이 거주했다.

조선후기 임금들은 지방을 통치를 하는데 있어 이른바 '충청도 양반' 때문에 골치를 많이 앓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역사학에서는 국왕보다 재지사족(향촌 사대부)의 영향력이 더 크게 먹혔던 지역을 이른바 '난치읍'(難治邑)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 후기의 난치읍 현상은 경상도 안동과 한양과 가까운 경기도 여주·광주 등에서 많이 나타났다.

경상도 안동의 사대부들은 인조반정 이후 집권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게 되자 서원(書院), 계 등을 만들어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 식으로 단결·단합했다.

이들이 워낙 강한 배타성을 나타내다 보니 감사(오늘날 도지사)와 수령의 영(令)이 먹히지 않으면서 난치읍의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경기도 광주와 여주 지역은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역인 까닭에 사대부들의 묘가 대거 조성됐다. 그러다보니 묘지소송(일명 산송)이 많이 발생하면서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난치읍)이 되기 시작됐다.

그러나 안동과 근기 두 지역보다 난치읍의 이미지가 강했던 곳은 지금도 그 소리가 남아있는 양반의 고장 충청도였다.

당시 사대부 중에는 호서(충청도) 출신이 적지 않았고, 또 일부는 경화벌열이 돼 충청도에 농장을 갖기 시작했다. 경화벌열은 향촌 출신으로 서울에 올라가 대를 이어 큰 벼슬을 한 가문을 일컫는다.

이들 문벌들은 농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각고을의 토호 역할을 하면서 국가 재정기반을 잠식했다.

그 사례는 △수령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세금행정을 무력화하는 경우 △국역 부담층인 양인 빼돌리기 △환곡을 받아먹고 갚지 않는 경우 등으로 나타났다.

'사민을 종처럼 부렸기에 백성이 宋재상이 있는 줄만 알고 관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농은선생유고 4>

윗글은 윤추(尹推·1632∼1707)라는 인물이 소론의 입장에서 서인의 영수 송시열(인영문의 宋재상)을 평한 내용으로, 다소 과장됐을 수 있다. 그러나 충청도가 난치읍이 됐던 환경을 어느정도 느끼게 하고 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어사 박문수도 충주, 청주, 공주, 홍주(지금의 홍천) 등 충청도 고을을 거론하면서 '그들조차도 사대부와 토호의 원망을 싫어하여 수령들이 재지세력과 맞장구치면서 부세행정을 어지럽힌다'(영조 3년 10월 16일)라고 지적했다.

토호의 난립은 향전(鄕戰)을 유발했다. 향전은 시골에서 양반가끼리 또는 기존 양반과신흥 양반이 권력싸움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청주 이인좌난의 기억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던 영조 임금은 향전에 대해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강하게 견제할 것을 주문했다.

이인좌난도 향전에서 비롯됐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부임을 앞둔 전라도 순천수령 신대수와의 대화 내용이다.

'왕: 순천에 향전이 있는데 장차 어찌 처리할 것인가.

신대수: 망땅히 시비를 보아서 만일 스스로 판단할 수 없으면 영문에 보고하여 처리하겠습니다.

왕: 네가 잘 못이다. 향전을 양쪽 다 다스리는 것이 옳다. 어찌 시비가 있겠는가.'-<승정원일기 영조 36년 12월 20일>

그러나 영조의 이같은 당부에도 불구하고 당시 수령들은 토호와 충돌하는 것을 가급적 피했다. 제천 세명대 구완희 교수는 이같은 내용의 논문을 '조선후기 난치읍의 여러 유형과 처방' 제목으로 역사와 경계 제 70집에 발표한 바 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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