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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산경탐사Ⅱ - 피반령(皮盤領)~먹치(흑령)~염티재(鹽峙)

바람을 타고… 햇살을 담아… 초록은 메아리 친다

  • 웹출고시간2009.08.20 16:20:2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피반령(皮盤領)~먹치(흑령)~염티재(鹽峙)

피반령(360m)~보은군계/단군지맥 분기점~498.0m(∆)~먹치~왕재~염티재(290m) (도상거리 9.8km 산행소요시간6시간30분)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뒷산 삼면봉인 530봉에서 피반령, 먹치, 염치재, 샘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청원군과 보은군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으로 북쪽 대청호의 동쪽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는 산군이다. 400~500급 산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변변한 이름 하나 갖지 못한 오지 특유의 잡목과 키큰 나무들로 시원스런 조망을 기대할 순 없지만 명산에서 느낄 수 없는 때묻지않은 자연스러움과 호젓함을 만끽하기엔 그보다 더 좋을순 없다.

탐사대는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청룡리와 보은군 회북면 오동리와의 경계를 이어주는 고개인 피반령에서 시작하여 회남의 염치까지 회북의 오동, 용천, 용곡과 가덕면 청용, 문의면 마구. 마동. 묘암을 가르는 9.8km의 산줄기를 짚어 가기로 한다.


청주에서 보은으로 갈 때 넘어야 하는 해발고도 360m의 험한 고개가 피반령이다. 지금은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뚫려 통행 차량의 수가 감소했지만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까지만 해도 미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이 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지금처럼 아스팔트 포장된 굽이길이 만들어지기도 전인 아주 오래전 산높고 골깊은 험준함을 넘어다녀야 했던 옛사람들은 힘든 것도 잊고 무서운 것도 잊고 지루함도 잊기 위해 나름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 때문인지 유난히도 피반령엔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중에도 피반령을 넘어 회인으로 오는 길목에 오동이라는 마을이 있고 이 마을을 지나 한 이리쯤 오면 고석리와의 갈림길이 있다. 그곳에는 “사근다리”라는 다리가 있는데 그곳에 얽힌 “피반령과 사근다리”의 유래는 유명하다. 임진왜란때 원군으로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대장 이여송(李如松)이 조선의 산천을 보니 정기가 빼어나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될 것이요. 조선에 많은 인재가 나면 대국인 명나라에 큰 화가 미칠 것이 두려운 나머지 귀국하는 길에 피반령 고개 이르러 군사들에게 산허리를 끊도록 명령하였다. 군사들이 칼과 곡갱이 등으로 산허리를 자르자 쏟아져 나온 시뻘건 피는 내를 이루어 10여리나 흘러갔고 그후로 피가 쏟아진 고개라 하여 “피반령”이라 부르게 되었고 피가 삭아 없어진 지점을 “사근다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회인에서 만난 마을 주민이 일러주는 또다른 일설에 의하면 문의면 두산리 말미장에서 장을 보고 회인으로 넘어오려면 너무 험난해서 무릅의 살가죽이 터져 피가 날 정도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옛사람들은 치열한 삶을 위해 피반령을 넘었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더 빠르게 더 짜릿하게 스스로를 채근하듯 속도감을 즐기고 스릴을 만끽하려 피반령을 넘는다. MTB동호인, 오토바이 동호인, 마라톤 동호인들의 놀이터가 요즈음의 피반령이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 서낭당이 있고 거대한 피반령 표지석과 함께 쉼터도 있고 설치한지 얼마 안된 삼각점도 있는 피반령 고갯마루에서 산행은 팔각정 정자옆으로 난 길을 따라 시작된다. 모퉁이를 돌자 나타나는 KTF통신탑을 지나 산책길 같은 가지런함이 다져진 산길은 생각보다 잘나있다.

보은군과 청원군의 군계/단군지맥(팔봉지맥)분기점인 Y갈림길이다.(피반령에서 0.9km 18분 소요) 우측은 단군지맥(팔봉지맥)으로 이어진 산줄기이고 염티재는 좌측 군계를 따른다. 벌목된 산자락을 좌측으로 끼고 야트막한 오르나림뒤 산불감시초소 서있는 492봉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피반령 고갯길이 휘돌아가는 굽이만큼이나 힘겨워 보인다. 비스듬 우측으로 내려선뒤 산길은 푸르른 신록이 잠식한 은둔자들의 땅처럼 아늑하다. +안부다. 좌측은 오동리로 내려서는 길이고 우측은 마구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치고 오르는 가파름은 없지만 쉼없이 이어지는 오르나림이 더운 날씨와 맞물려 힘이든다.

비교적 너른 공터가 형성된 +안부다. 좌측은 용곡리 우측은 마구리 두만이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다. 한차례 치고 오르니 498.0봉(△)이다.(군계/단군지맥분기점에서 3.4km 2시간 소요) 묘1기 자리한 봉엔 키를 웃도는 풀섶만 무성하다. 까치발 뜨고 내어다 보는 조망 속에 북동쪽으로 구룡산 남쪽으로 샘봉산으로 이어진 능선과 멀리 서대산, 환산, 식장산까지 내어다 보인다. 이후 산길은 순한듯 하면서도 이리저리 난 길로 독도에 신경써야 될 부분이 더러 있다. 특히 450봉에서 먹재 이르는 길은 선이 살아있지 않은 마루금과 많은 갈래길 그리고 우거진 숲으로 인해 잠시 우왕좌왕 갈팡질팡한 뒤

+안부인 먹치다.(498.0봉()에서 1.7km 1시간 27분 소요) 좌측으로는 회북면 중앙리로 이어진 길이고 우측으로는 문의면 마동리로 연결되는 임도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한적함에 수풀만 무성하다. 먹치라고도 하고 흑령이라고도 하는 지명에 대한 유래는 먹치에서 회인쪽으로 난 방향의 땅을 파보면 검은흙이 나온다 해서 먹치라 불리워졌단다. 피반령에서 염치까지의 종주산행이 부담스럽다면 먹치에서 우측 임도따라 탈출하면 마동창작마을이 있는 마동리다. 그곳은 도자기 만들기나 붓만들기 등의 체험마을로 색다른 예술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도 좋을듯 싶다.

먹치이후 산길은 쉼없이 늘어놓은 자잘한 오르나림이 성가스럽지만 우회길 또한 많다. 자칫 생각없이 우회길 따르다보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도 있어 세심한 주의와 독도에 신경써야 될 부분이다. 바람, 햇살, 새소리, 매미소리 그들의 이끌림만으로도 잠시의 방황은 애교다. 회북면 용곡리와 문의면 묘암리를 잇는 왕재를 지난뒤 고만고만한 오르나림도 끝이 궁금할때쯤 염티재다.(먹치에서 2.9km 2시간 45분 소요) 청원군 문의면 염치리에서 보은군 회남면 만마루와 남대문리에 이르는 염티재는 서해안쪽에서 금강을 소급하여 온 소금을 짊어지고 회인과 보은으로 향하던 길에 넘어야 했던 ‘소금고개’혹은 ‘소금재’다. 낑낑 무거운 짐 짊어지고 올라와선 잠시 무건짐 내려놓으며 한숨처럼 토해냈을 옛사람들의 한마디는 “아! 시원하다..”였겠지... 우리도 그들처럼 하루종일 짊어지고 다녔던 무건 배낭을 내려놓으며 한숨처럼 토해낸다. “아! 시원하다..” .


시간이 허락된다면 고갯길 아래 회인면 중앙리에 있는 오장환 문학관과 조선시대의 건축물인 인산객사(충북유형문화재 제116호)둘러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1918년 이곳에서 태어난 오장환시인은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한 천재시인이었지만 월북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었던 분이다. 오장환 문학관을 나오면 길 건너편 안쪽에 위치한 인산객사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고을에 있던 관사로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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