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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6.19 17:21:56
  • 최종수정2023.06.19 17:21:56

문신

우석대 교수

사람마다 특별하게 생각하는 말이 있다. 내게는 앵두가 그렇다. 이상하게도 앵두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고 내가 앵두를 아주 좋아한다거나 앵두에 남다른 추억이 있는 건 아니다. 우선은 앵두라고 발음할 때의 소리가 기분을 좋게 한다. 그리고 앵두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작고 붉은 열매의 촉감이 좋다. 손바닥 가득 앵두를 받아들었을 때의 그 미묘한 느낌 말이다.

그런데 앵두의 느낌을 주는 열매가 또 있다. 표준어로는 보리수 열매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포리똥 열매가 익숙하다. 공교롭게도 앵두와 보리수 열매 모두 유월에 붉어진다. 유월은 개인적으로 뜨거운 달이다. 한일월드컵 당시 열띤 거리 응원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열 살 무렵을 떠올려본다. 내가 나고 자란 마을에서는 오월 말에서 유월 초까지 보리타작과 모내기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열기가 훅훅 올라오는 밭에서 보리를 베고 타작을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더워도 긴소매 옷을 입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보리 까시락을 견딜 수 없었다. 타는 듯한 열기 속에서 어른들은 보리를 타작했고, 나는 보릿단을 날랐다.

나는 지금 보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건 보리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앵두 이야기를 하는 중이고, 그에 앞서 포리똥 열매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더운 날, 보리타작을 마치면 메마른 목이 쩍쩍 들러붙었다. 그러면 나는 보리밭 너머 산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빨갛게 주렁거리는 포리똥 열매가 있었다. 포리똥 열매는 생각하기만 해도 신 침이 고였다. 손가락 굵기의 가지를 우지끈 꺾어 들고 작은 손으로 포리똥 열매를 훑다 보면 어느새 어스름이 내리곤 했다.

이런 이야기는 다른 계절에는 떠올릴 수 없다. 지금, 이 유월의 복판이야말로 포리똥 열매를 꺼내기에 적당하다. 앵두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 무렵 재래시장에 가면 드물지 않게 앵두를 만나기도 한다. 앵두는 벌써 저만치서 붉게 자기를 드러낸다. 앵두는 둘레를 환하게 밝혀준다. 그래서 앵두는 멀리서 보기만 해도 설렌다. 나는 이런 느낌을 잘 담아낸 동시를 알고 있다. 조금만 소개하면 이렇다.

"앵두가 온다/ 나는 앵두다 소리치며 온다/ 다다다다 다 같이 뛰어온다// 온몸에 땡볕을 널어놓고/ 온몸에 빨강을 칠해 놓고// 홍홍 웃으며 매달려 있는 앵두/ 춥춥 침이 고이는 앵두"

최휘 시인이 쓴 '여름, 앵두'라는 동시다. 다다다다, 흥흥, 춥춥 같은 음성상징어가 앵두를 잘 표현했다. 아니나 다를까, 앵두는 여름 전령사처럼 뜨겁게 온다. 그런 설렘을 안고 뛰어오는 앵두를 상상해보라. 빨갛게 매달려 흥흥 웃는 앵두를 떠올려보라. 벌써 춥춥 입안 가득 침이 고이지 않는가? 그러나 나에게 앵두는 그냥 과일이 아니다. 앵두는 누나의 과일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앵두가 빨갛게 매달린 가지를 뚝 꺾어주던 동네 누나를 잊지 못한다. 소나기가 내렸고, 붉은 앵두 끝으로 빗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붉은, 그러나 여린 앵두가 쏟아질까 봐 빗물을 털지도 못했다. 톡 터진 앵두에서 흘러내린 과즙이 손바닥을 붉게 적셨다. 앵두는 이렇게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일까? 앵두가 익을 무렵이면 사람이 그리워진다. 시끌벅적했던 캠퍼스가 한산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기말고사가 끝난 대학은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있다. 학생들을 데리고 포리똥 열매 따러 가려던 계획이 이번 학기에도 어그러졌다. 야산에는 이미 포리똥 열매가 환하게 붉었을 것이다. 앵두도 곳곳에서 여름처럼 매달려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유월이 깊어간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는 중이고 앵두, 하고 불러보고 싶은 날이다. 여름이 나는 여름이다 소리치며 다다다다 뛰어오는 날이다. 물에 씻은 앵두를 두 손에 함뿍 담아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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