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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우석대 교수

지난해 마지막 날, 이런 결심을 했다. 2023년에는 침실의 일을 바꿔보자. 대단한 일은 아니고, 침실에서의 습관 하나를 바꿔보자는 다짐이었다. 자려고 불 끄고 누워서 스마트폰 들여다보지 않기. 아침에 눈 떠 머리맡에 놓은 스마트폰을 더듬거리며 찾지 말기. 이런 결심도 사실은 많이 망설였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십수 년간을 내 몸에 밀착해 있는 스마트폰과 침실에서만이라도 결별할 것을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제2의 뇌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칠 만큼 그 말에 공감했다. 스마트폰 덕분에 메모지를 챙겨 다닐 일이 줄었다. 떠오른 단상들은 걸어가면서 즉석에서 녹음해둘 수도 있었다. 그뿐인가? 필요한 정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알다시피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 모든 정보에 즉각 접속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전지전능한 기능을 두고 내 손안의 하나님이라고 추종하는 친구도 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스마트폰.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만나는 동안 내 감정, 내 생각, 내 판단 같은 것들이 사라졌다. 뒤늦게 나는 그런 현상을 '자기 실종 사태'라고 혼자 이름 붙였다. 그러고는 분실물 찾기 전단처럼 '실종된 나를 찾아요'를 A4 용지에 써서 나에 관한 특징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나를 찾으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였다. 나는 노는 사람 호모 루덴스였고, 이곳저곳으로 여행하기 좋아하는 호모 비아토르였다.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예전에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고, 궁금함을 오래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생활하면서 나는 호모 모빌리쿠스가 되었다.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돈을 부치는 일도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 고속버스 표나 영화관 좌석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필요에 따라 '그곳'으로 찾아가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있는 '이곳'에서 모든 일을 해결한다. 나 스스로 놀라울 정도로 편리해진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인생이 스마트폰 손바닥 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지금 스마트폰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다. 집 근처에 볼일이 있을 때도 스마트폰 먼저 챙긴다. 손안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심박수가 증가하고 불안해진다.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사뭇 의미 있는 대답을 해왔다. "사람이 죽으면 스마트폰을 장례 치르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엉뚱한 상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빈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식당에서, 버스에서, 공원에서 수시로 그런 징후를 목격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아침을 열고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마감하면서 나는 '인생'을 잃었다. 대신 '스마트폰생'을 사는 중이다. 스마트폰 중독, 스마트폰 노예 같은 수사적 표현을 넘어 이제는 스마트폰생이라니! 그 삶이 진정한 의미에서 스마트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시대적인 흐름과 생활 방식의 변화를 거스를 생각은 없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과거를 토대로 새롭게 진화해왔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인생, 그것을 포기해도 좋을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인생을 되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거실에 내놓은 지 보름 남짓 지났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 잠들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고, 잠 깨서는 하루를 어떻게 살지 계획한다. 스마트폰에 밀려 위축되었던 뇌가 다시 펄떡펄떡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 생겼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나를 너무 늦지 않게 되찾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각오를 다진다. 침실만큼은 스마트폰에 점령당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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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정우택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충북일보] 정치란 모름지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갈등이 심화될수록 정치의 기능과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생각은 고여 있을 수 없고 행동 또한 멈춰있을 수 없다. 새해를 맞아 국민의힘 정우택(69·청주 상당)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만났다. 그는 부친인 정운갑 전 농림부 장관(1913~1985년)의 뒤를 이어 정치에 입문한 뒤 장관, 충북지사, 국회의원 등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 3월 9일 치러진 재선거로 부친과 함께 '5선' 타이틀까지 거머쥔 뒤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정 부의장을 만나 새해 각오와 정치·충북 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새해 각오를 밝혀 달라.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토끼는 예부터 만물의 성장과 번창을 의미한다. 새해에는 도민 여러분 모두가 크게 번창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최근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삼중고로 인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