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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을 유령처럼, 무적자 할머니 사회 품으로

충주경찰서 발 벗고 나서

  • 웹출고시간2021.09.09 11:32:53
  • 최종수정2021.09.09 15:19:18
[충북일보] "새로 태어난 거 같아요. 그동안 주민등록번호와 정확한 이름조차 알지 못해 병원지료를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요."

충주경찰서는 지난 75년간 호적 없이 살아온 할머니에게 호적을 만들어 준 사연을 9일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충주지역에서 30여 건(총 380만 원 상당)의 농산물 절도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경찰서 강력팀은 범행 장소 주변 탐문 및 CCTV 100여 대를 일일이 확인하는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한 끝에 범인을 붙잡았다.

범인은 75세의 할머니였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할머니의 10개 손가락 지문을 찍어 전산을 통해 확인해도 할머니의 신원을 밝힐 수 없었다. 다시말해 호적이 없는 무적자 신분이었던 것이다.

올해 75살인 김모 할머니는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함께 지내던 3살 터울 언니가 돈을 벌기 위해 타 지역으로 가면서 이별했됐다.

15살 때부터 다른 집에서 고된 '식모살이', '식당 종업원' 등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험하고 힘들게 살아오던 김씨는 60세에 충주 주덕에서 산나물 등을 채취해 길거리에 내다 팔거나 인력업체에서 하루 일당을 받아 월세 15만 원의 여인숙에서 거주하며 생계를 꾸렸다.

이런 중에 김씨는 다른 사람의 농작물에 손을 댔다고 진술했다.

담당형사는 해당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주거부정의 사유로 구속하겠다고 경찰서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경찰서장은 범인처벌도 중요하지만, 무적자인 할머니가 구속 후 석방되면 또다시 절도 등을 통해 생계를 이어갈 텐데 처벌과 병행해서 무적자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사건은 불구속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고, 경찰서 경무계장인 김영만 경감의 주도로 호적 생성과 다양한 복지혜택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경찰은 호적생성을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법적절차에 대한 조언을 듣고, 충주시청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수시로 방문해 법적절차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상자와의 원활한 연락체계 구축을 위해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제공해 주고, 수시로 김씨가 거주하는 여인숙을 방문해 불편사항이 없는 지 점검했다.

또 성내충인동주민센터에 긴급복지서비스를 요청해 김씨 할머니가 생계유지를 위해 정기적으로 쌀과 마스크 등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협조했다.

현재 호적생성의 마지막 절차인 가족관계등록부 결정 절차만 남은 상황이다.

경찰은 호적생성이 완료되면 기초연금수급자로 선정돼 복지혜택이 돌아가도록 도울 예정이다.

김 할머니는 "그동안 주민등록도 없이 너무 힘들게 살았다. 이제 정식으로 내 이름이 생겼고, 아프면 병원도 떳떳하게 다닐 수 있다"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 너무 좋다"고 말했다.

박창호 경찰서장은 "생계를 위해 부득이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호적도 없이 떠난다는 사실이 무척 슬프게 느껴졌다"며 "늦게나마 할머니에게 인생의 황혼기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릴 수 있어 매우 보람되다"고 전했다.

충주 / 윤호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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