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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 견디며…'서민 열차' 새벽을 열어라

새벽4시 무궁화호 첫 기차를 추억하며

  • 웹출고시간2017.01.25 21:33:17
  • 최종수정2017.01.26 15:31:17

1분 남짓의 정차시간, 승객들의 타고내리는 모습을 매의 눈으로 확인하는 차장(좌) 영동역에서 등짐과 봇짐을 들고 대전역앞 새벽시장을 가는 어르신이 기차에 오른다(우)

ⓒ 사진제공=김도균 사진작가
[충북일보] 동대구역 새벽 3시 45분.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 1320 열차를 이용할 고객께서는 타는 곳 3번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열차 15분전 승무원의 안내소리가 승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새벽 4시 동대구역에서 출발, 아침 8시 6분 서울역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대한민국의 '첫 기차'였다. 장장 4시간 6분이 걸리는 긴 여정. 단숨에 달려갈 고속열차를 제치고 가장 먼저 열차는 출발의 기적을 울렸다.

곤히 잠든 세상 빛 하나 뿜어내며 꽃 이름 단 기차, 무궁화호가 새벽을 달린다. 누군가에겐 추억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되기 위해.

이 꼭두새벽에 잠을 쫓아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누굴까?

새 차를 싣고 달리는 자동차 탁송전문기사는 길이 인생. 이 기차를 타야 제 시간에 맞출 수 있단다. 집을 나서기 전 그는 꼭 자녀들 방을 들여다본다.

"자는 애들 보면 흐뭇하죠.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늘 달리다보면 멈추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말이다. 덜컹거리는 기차, 어른대는 불빛도 쏟아지는 잠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면접을 보러 올라가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을 만났는데 새벽기차는 처음이란다.

"면접시간이 9시인데 기차 시간 맞는 걸 찾다 보니까 이 기차 밖에 없더라고요. 서울에서 자거나 아니면 전날 올라갈 뻔 했는데 다행이죠."

다음번에는 합격소식을 안고 이 기차에 오르길….

무궁화호 첫 기차는 대구, 왜관, 구미, 김천, 영동, 옥천, 대전, 신탄진, 부강, 조치원, 전의, 천안, 평택, 수원, 안양, 영등포까지 16개의 역을 1분 남짓 머무르고 스쳐간다.

월요일이면 꼭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이 구미에서 안양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주말부부하고 있어요."

주말에 집에 왔다가 월요일이 되면 다시 타지의 일터로 돌아가는 기러기 가족들. 그들은 자신을 '주말부부'라고 했다.

구미역 (4시37분)에서 출발 안양역 (7시44분)에 내리는 남선생. 굳이 그가 이 새벽 첫 기차를 타는 이유가 있다.

"일요일 저녁에 떠나는 제 뒷모습을 가족들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월요일 새벽에 나오면 다들 자고 있어서 제가 떠나는 모습을 안 보여주니까 더 마음 편해요."

한 지붕 한솥밥 먹는 것이 식구, 가족이라지만 가족을 위해 그들은 이 먼 길도 마다않는다.

저마다의 정거장을 품고 떠나는 길 위의 인생들. '떠남'도 있지만 '만남'도 기다려지는 게 열차다. 새벽 5시 22분 영동역, 급행은 서지 않는 작은 간이역이다.
ⓒ 사진제공=김도균 사진작가
새벽부터 산만한 짐수레를 끌고 와 기차를 기다리는 어머니들. 정성들여 기른 것을 대전역 장터에 팔러가는 길이다. 들 만큼의 무게를 훌쩍 넘긴 봇짐을 밀고 당기며 1분 남짓한 정차시간을 빠듯하게 채운다. 대전까지는 30분.

자식 키우고 농사짓고 순박하게 살아온 삶은 늘 새벽부터다. 이 기차가 있으니 장터를 다니고 그들의 삶도 꾸렸다.

"영동은 장이 작은데 대전가면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장사가 재미나지. 공기도 쐬고 사람구경도 하고 좋지."

옥천역(5시43분).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주름 자글한 할머니도 장터길에 동승한다. "이 기차타고 우리 애들 다섯 명을 다 가르쳤어. 이 기차가 참 좋아."

새벽 5시 55분 대전역. 어느새 기차 문 앞은 손수레를 앞세운 마음 바쁜 어르신들로 북적댄다.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한 발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대전역 광장에 모여든 촌로들. 이들은 옥천 또는 영동에서 새벽 5시경에 출발, 대전역에서 좌판을 벌리고 정성스럽게 가꾼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 사진제공=최현정작가
영호남, 충청, 경기, 강원 사방으로 이어진 기찻길. 그 새벽 내려선 대전역 광장에는 새벽장터가 열려 생기롭다.

영동, 옥천에서 탄 어르신들도 서둘러 전을 펼친다. 무겁던 봇짐도 조금씩 헐거워진다.

대전을 지나면서부터 새벽기차는 어느새 통근열차가 되어 좌석도 입석도 모두 찬다.

무궁화호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 그동안 기차는 참 많은 인연과 마주했을 터. 한줄기 빛 새벽 가르며 달리는 기차에 더 환한 희망을 채우는 사람들.

굽이진 정거장도 지나고 밤보다 더 검은 터널도 뚫고 가야 우리는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묵직한 삶의 무게를 견디며 새벽 4시 꽃 이름 단 기차, 무궁화호는 또 묵묵히 달려갈 것이다.

최현정 / 다큐멘터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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