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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

현대백화점 충청점 판매기획팀장

내 자켓 안쪽 주머니에는 작은 수첩이 하나 있다. 회의시간, 좋은 문구가 생각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그 내용을 요약하여 적어놓고, 때때로 꺼내 읽으며 메모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는다. 수첩의 겉모습은 사용한 기간만큼 헐어서 꼬깃꼬깃하고 안의 내용은 밑줄과 동그라미의 개수만큼 손때가 묻어있다. 수첩은 내 기록의 역사이다. 손으로 써 내려가면서 내용을 한 번 더 숙지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일이 있으면 여러 권의 수첩을 찾아가며 흔적을 잡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수첩을 여러 권 바꿨다. 그런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수첩의 앞쪽에는 지난해 3월 회의내용이 적혀있다. 그리고 아직 반도 쓰지 않았다. 이대로면 40장 밖에 안되는요 녀석은 추석까지 갈 것 같다.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갈까? 답은 내 손에 있다. 예전에는 왼손 또는 자켓 안주머니에 늘 지니고 있던 수첩의 자리를 지금은 스마트폰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내 기억과 메모의 짝꿍은 수첩에서 스마트폰의 메모창이나 사진이 대신하고 있다. 여러 번 사용해도 꼬깃하거나손때도없어 깔끔하지만, 볼펜 똥이 묻어날 정도로 꼬옥 눌러 쓴 정성이나, 중요해서 그려놓은 동그라미와 별표기 같은 기억의 정(情) 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메모는 좀처럼 외워지지가 않는다. 메모의 본분이 기억의 보존인 동시에 기록하면서 숙지의 기능도 있는데, 사람은 같고 도구만 바뀌었는데도 메모, 그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에는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필름이 아까워 신중과 정성을 다하고 포즈를 취했는데, 지금은 여러 번 찍고 별로인 것은 바로 버린다. 스마트하고 편리해진 기술만큼 우리의 생활습관도 거기게 맞춰지는 것이겠지만, 행동과 습관을 지배하는 정신까지 편리를 넘어 간단과 간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편리해지고자 기술을 개발시키고, 그 개발된 기술의 수혜를 바탕으로 더 진일보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 '정신적 진화'를 꾸준히 이뤄야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린 주어진 기술의 혜택 속에 파묻히기를 원하는 수동적 동물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은 아무 잘못이 없다. 나에게 강요도 하지 않았다. 수첩도 잘못 없다. 수첩이 나를 버린 것도 아니다. 모두 결정한 것도 나고, 기억을 잘 못하는 것도 나다. 기술도 잘못은 없다. 스스로 정신적으로 진화되지 못하고 보다 일찍 현명해지지 않는 사람이 현명하지 못한 것일 뿐. 수첩이 없었던 시절에는 모두다 기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외우기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정신적 훈련을 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한 노력없이 그저 '스마트폰에 저장했지'라는 기능적 행위만으로 내 역할을 다했다고 안주하고 있다. 그리고 내 것으로 체화(體化)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호모 파베르(homo Faber), 사람이 문제다.

지금 가만히 스마트폰의 메모창을 열어본다. 지난 가을 유럽여행시 스페인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 찾아가는 길,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에펠탑 가는 버스 번호, 밀라노의 맛있는 피자집 주소 등 정보가 적혀있다. 나는 이걸 저장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여행갈 때 늘 메고 다녔던 크로스 백의 수첩에는 가우디의 시선과 고뇌의 흔적, 지금 둘러보는 사람들의 표정과 입모양, 푸른 하늘 아래 작은 구름의 그늘을 뒤집어 쓴 검붉은 첨탑의 웅장함과 섬세한 조각상의 손끝 처리까지 적혀있고, 그림을 그린 듯한 여행의 흔적과 자취가 묻어있다. 그 수첩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과 생각은 바르셀로나에 있다. 스마트폰과 수첩….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가는 내 자유다. 그리고 그 기억의 몫과 활용의 결과 또한 내 자유의지에 의한 몫이다. 스마트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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