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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아버지는 어린 우리에게조차 무엇이든 쉽게 주시는 법이 없으셨다. 노력의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셨다. 사치품목에 대해서는 더욱 깐깐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두 얼굴이 있었다. 집 안과 밖의 모습이 확연히 달랐다. 집 밖에서는 덕이 많은 인물로 통하셨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엄격하셨다. 밥상머리에서는 더욱 엄하셨다. 어른 먼저 수저를 들었다간 불호령이 떨어지셨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는 기본이었다. 저녁 9시 뉴스 전에는 반드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가끔 귀가시간이 늦으실 때가 있으셨는데, 우리에겐 꿀 맛 같은 시간이었다. 방 불은 끄고 누나들과 함께 이불 속에 들어가 얼굴만 내밀고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시청했다. 그러나 온통 신경은 언제 들어오실지 모르는 아버지의 집 밖 인기척 소리에 쏠려있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납양특집 '구미호' 시리즈물보다 더 무서웠다. 아버지의 구두소리와 헛기침소리가 집 밖 골목 초입부터 들려오면 서둘러 TV를 끄고 후다닥 이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콩당콩당' 심장뛰는 소리가 이불 속을 가득 메웠다.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그땐 정말이지 그랬다. 가족 사진첩에는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국민(초등)학교 운동회는 물론이고 소풍,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아버지는 없으셨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했다. 반면 낚시터, 유명산, 해외 등지에서 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찍은 아버지의 사진은 많다. 지금까지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크게 변함이 없으시다.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엄격하시다.

'엄격하다'라는 말은 '철저하다'와 의미를 같이 한다. '철저하다'는 '구석구석 빈틈이 없다'라는 말과 상통한다. 아버지는 엄격하시고, 철저하시며, 구석구석 빈틈이 없으셨다. 그러나 사진을 통해서 본 집 밖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엄격하지도, 철저하지도, 빈틈이 없어보이지도 않으셨다. 환하게 웃음을 지으셨고, 취기가 올라서인지 발그레한 얼굴빛을 한 모습도 보였다. 생소했지만 친근해 보였다.

2015년을 2주 밖에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버지의 두 얼굴과 요즘 세태가 '오버랩(overlap: 무엇이 둘 이상의 대상을, 또는 무엇이 어떤 대상을 다른 대상과 겹치게 하여 이모저모를 보이게 하다)' 됐다. 자신이나 가족에게는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요즘의 세태가 그려졌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누리려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현실이 그려졌다. 남의 허물은 비판하면서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한 우리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가장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가족들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윗물이 탁하면 아랫물이 맑을 수 없다. 지휘관이 꽁무니를 빼면 대원들은 위기와 맞서지 않는다. 간부들이 술에 취해있으면 아랫사람들은 흥청망청 거린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만고불변의 진리를 잊은 채 살고 있다.

당선과 함께 선거캠프원들을 잔뜩 데리고 들어와 전문부서의 수장자리에 배치한 이승훈 청주시장. 상식선에서 봐도 시작부터가 시민들을 위한 시정을 펼칠 수 없는 구조였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새삼스럽다며 그를 두둔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초대 통합 청주시장으로 만들어준 다수의 청주시민들의 마음과 그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2조원에 달하는 청주시 1년 예산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깝다. 바람이 있다면 남은 임기 이 시장 자신은 물론 청주시 구성원들에게 좀 더 엄격한 자세로 시정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공무집행방해 사범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도 공권력의 남용이나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일부 경찰관들의 그릇된 모습, 즉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은 모습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검사나 법관 역시 마찬가지다. 여전히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우리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신과 가족에게 엄격하고 상대방에겐 관대한 삶.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가족이 행복해지고 국가가 건강해 진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아버지의 두 얼굴의 모습에서 만고불변의 진리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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