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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봉동굴 '흥수아이' 첫 발견자 김흥수 씨

"유골 보는 순간 중요한 가치 느꼈다"

  • 웹출고시간2015.04.13 20:09:54
  • 최종수정2015.04.13 19:58:18

[충북일보] 이름의 의미 때문인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마치 먼 구석기시대를 관통하여 온 시원(始原)의 느낌으로 들려왔다. 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흥수아이', 그것을 발견한 당사자 김흥수(77)씨가 우리 이웃에 살고 있었다.

"김흥수 선생님 맞지요? 구석기시대의 두루봉동굴 '흥수아이'의 발견자, 김흥수 선생님…"

"네, 맞습니다."

'흥수아이'로 명명된 사람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일이다.

김흥수씨

'1983년 충북 청원군 두루봉 동굴, 석회석 광산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던 김흥수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굴 속을 살펴보다가 사람 뼈를 보고 흠칫 놀랐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등불을 비춰 자세히 보니 키가 110~120센티미터 가량 되는 어린아이의 뼈였다. 발견 당시 이 뼈는 석회암 바위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었는데, 뒤통수가 튀어나와 제법 귀여운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이 뼈를 <흥수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위 내용은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만든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휴머니스트 출판)'에 수록된 '흥수아이, 다섯 살짜리 청소년'에 나오는 내용이다.

청주시 가경동에 자리 잡은 메리츠화재는 김흥수 씨의 직장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반갑게 맞이하며 창가 소파로 안내했다. 다리가 불편한 듯 절고 있었다.

"내가 김흥수요. 몸이 좀 불편합니다. 당뇨에 고혈압…종합병원이죠."

그러면서 껄껄 웃었다. '흥수아이'를 처음 발견 당시의 상황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한국사교과서에 수록된 '흥수아이, 다섯살짜리 청소년'에 묘사된 내용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76년도에 석회석 광산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동굴에서 동물 뼈가 나왔다. 곰뼈, 상아(象牙) 등도 나왔다. 구석기시대의 귀한 유물이라고 했다. 충북대 이융조 교수가 발굴을 시작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사람뼈'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다 1982년도에 석회석 동굴 근교에서 땅을 고르다 어린아이 두개골 같은 것을 발견했다. 사흘 고민하다 이융조 교수에게 전화를 넣었다."


사흘 밤낮 고민한 이유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모든 광산 업무를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별다른 보상도 없이 무조건 하던 사업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뭐랄까. 주변에서 반대를 했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막연하게 느꼈다. 덕분에 금전적 손해는 컸지만, '흥수아이'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니 자부심을 갖고 산다."

그에게 남겨진 보상은 충북대에서 준 '감사장'이 전부였다.

당시 발굴자였던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융조(75)이사장은 "청원 두루봉동굴에서 발견한 어린아이의 뼈를 '흥수아이'로 명명한 것은 당시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의견을 모은 것"이라며 "정확하게는 82년 12월5일 저녁 무렵, 김흥수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두루봉동굴에서 '사람 이빨 같은 것이 나왔다'라는 연락이었다. 김흥수 씨의 제보로 약 4만 년 전 구석기시대 사람 '흥수아이'를 발굴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라고 밝혔다.

그의 역사적 발견으로 '흥수아이'란 이름을 남겨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발굴 이후, 운영하던 석회석 광산은 85년 폐광됐다. 88년도부터 지금까지 그는 30년간 보험 업무를 하며 홀로 살고 있다.

/ 윤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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