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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기술자 이은설씨, 혼으로 그리는 탱화

전국 사찰 80여점 작업
대표작 '104위 신중도'

  • 웹출고시간2013.05.15 20:12: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정성과 마음을 다해 불화(탱화)를 그리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불화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문화재 단청기술자 제881호인 이은설(43) 가람문화재(주) 이사는 20여년째 탱화를 그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이씨가 디자인을 접고 단청과 불화(탱화)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주위의 권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심신단련'이었다.

탱화의 매력에 푹 빠진 이씨는 디자인을 하기위해 펜을 들면 불화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미래를 불화 그리기로 정하고 가장 먼저 마음을 가다듬었다.

불화 그리기를 마치고 절에서 점안식을 할 때 수많은 불자들이 불화를 보며 경건한 마음을 가지는 모습을 본 이씨는 자신은 불화를 그린 것 이지만 불자들은 부처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혼'을 다해 불화를 그릴 것을 다짐했다.

이씨는 "불화(佛畵)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그리고 경전에 나오는 여러 보살들과 수호 신장들을 그린 그림"이라며 "불화는 불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그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을 그린다고 해서 형상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 그려내야 한다"며 "불화를 그리는 장인(匠人)도 불교 수행에 깊은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단청 기술자인 이씨는 절에서 단청을 그려내는 일도 하고 있다.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1개월은 보통 절에서 숙식을 하며 단청작업을 한다. 단청을 마치면 불화를 그려내는 시간도 갖는다.

그가 탱화를 한폭 그려내는 기간은 크기마다 다르지만 약 1개월~2개월 정도다.

속세의 모든 것을 잊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불화가 완성되면 '기쁘기 한이없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불화를 그려내는 일을 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

이씨는 "내가 불화를 그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 너무나 편하고 좋다"며 "불화를 그리는 시간은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살아요. 하나의 작품이 완공될때마다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가 그린 불화로 대표적인 것은 논산훈련소내의 백호정사의 '104위 신중도'로 현재까지 약 80여점의 탱화를 그려냈다.

그는 "우리나라의 사찰은 어디든지 불상을 봉안하고 그 뒤에 탱화가 걸려 있다"며 "우리나라의 불화(佛畵)는 불자들의 신앙대상이 돼 정성과 혼을 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남편 유병관(47)씨는 사찰을 새로 짓거나 문화재 수리 등을 하고 있어 이들 부부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 닿는 부부다. 남편이 사찰을 지으면 부인이 그 곳에 불화를 그려내는 일심동체다.

글/김병학.사진/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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