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신립, 과연 임란 충주전투 때 자결했나

선조실록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 하고 빠져 죽었다"
상촌집 "적이 군대를 풀어 추격하자 몸을 던져 죽었다"
두 사료 원문, '遂溺死'와 '投水死'로 각각 미묘하게 기술

  • 웹출고시간2012.12.10 17:18:4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신립(申砬·1546∼1592)은 과연 임진왜란 충주전투에서 자살을 했을까.
 
지금까지 신립은 금년 기준으로 7갑(1592년) 전인 임진왜란 충주전투 때 패배에 따른 책임을 지고 달천에 뛰어들어 자결했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이는 선조실록 1592년의 기사 중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라는 표현에 근거하고 있다.
 
'적이 복병을 설치하여 아군의 후방을 포위하였으므로 아군이 드디어 대패하였다. 입은 포위를 뚫고 달천 월탄(月灘)가에 이르러 부하를 불러서는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고 하고 빠져 죽었다. 그의 종사관 김여물(金汝山+勿)과 박안민(朴安民)도 함께 빠져 죽었다.'-<4월 17일자 4번째>
 
선조실록 원문은 '賊設伏繞, 出我師之後, 衆遂大潰。 砬突圍至달(수달달)川月灘邊, 召其下曰: "無面目見殿下。" 遂溺死。 其從事金汝山+勿、朴安民, 亦溺死'로 적혀 있다.
 
그러나 신흠(申欽·1566~1628)의 상촌집(象村集)은 같은 전투였지만 약간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조선중기 문신인 신흠은 '상촌집'이라는 시문집을 63권 22책의 방대한 분량으로 남겼다. 이중 '여러 장사들이 왜란 초에 무너져 패한 기록'(諸將士難初陷敗志) 편에 임진왜란 충주전투와 신립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신립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차례로 진격시켰으나 마을 길이 비좁은데다 논밭이 많아 말을 치달리기에 불편하여 머뭇거릴 즈음에 적이 우리 군사의 좌측으로 돌아 나와 동쪽과 서쪽에서 끼고 공격해 오는 바람에 우리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지면서 적에게 난도질을 당한 결과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군자와 군기가 일시에 모두 결딴나고 말았다. 신립이 단신으로 말을 타고 강 언덕에 이르렀는데 적이 군대를 풀어 추격하자 신립이 물에 몸을 던져 죽었으며 김여물도 물 속으로 투신하였다. 신립의 군대가 패하자 대가가 서쪽으로 파천하였다.'-<상촌집 제 56권 志>

신립은 분명히 임진왜란 때 충주 달천의 월탄(타원)에서 숨졌다. 그러나 자살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다.

비교의 정확성을 위해 상촌집 원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砬麾諸軍以次而進。村街狹隘。且多稻田。不便於馳馬。逡巡之際。賊요(에워쌀 요)出我軍之左。東西挾擊。我師大亂。被賊亂감(벨감)。積尸如山。軍資軍器。一時俱盡。砬單騎至江岸。賊縱兵追之。砬投水死。金汝山+勿亦沒於水。砬軍旣敗。大駕西幸.'

선조실록은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고 하고 빠져 죽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와 관련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라는 표현은 자살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빠져 죽었다'라는 서술에는 자살의 의지가 담겨진 것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수도 있다. 한문으로는 '溺死'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비해 신흠은 상촌집에서 '신립이 단신으로 말을 타고 강 언덕에 이르렀는데 적이 군대를 풀어 추격하자 신립이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라고 기술했다.

'적이 군대를 풀어 추격했다'는 표현에서는 자살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신흠은 바로 이어지는 문장을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라고 표현했다.

'몸을 던졌다'는 점은 자살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한문으로는 '投水死'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신립은 분명히 7갑전이 1592년 임진왜란 충주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이 본인 의지에 의한 자결인지, 그렇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은 면이 있다.

그리고 두 사료는 표현의 차이를 보이면서도 보완 관계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 조혁연 대기자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