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는 사람

임미옥

수필가

똑같은 땅이라도 투기꾼은 언제 땅값이 올라갈까 궁리하고 농부는 무슨 씨앗을 뿌릴까를 궁리한다. 우리교회 권사님 한분은 아주 좁은 공간이라도 보기만 하면 무언가 씨앗을 심고야 만다. 교회마당에 화단이 있는데 그분의 씨뿌리는 열정으로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마다 가지가지 꽃과 채소로 가득하다. 고추, 가지, 호박 등 은 목사님 댁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여러 사람들과 나눈다. 희귀한 품종이나 멸종위기 품종들을 심어서 열매나 꽃을 교우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분의 낙(樂)이다.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주렁주렁 매달린 수세미를 가리키며 예전에는 그릇 닦을 때 썼고, 하얀 박은 말려 바가지를 대용했는데 흥부전에 나온다고 말해 준다.

권사님은 연립 옥상까지 고무다라에 흙을 퍼 날라 배추를 심는가 하면 화분에 고추나 상추를 심어 계단마다 놓았다. 뿐만 아니라 버리는 화분들을 모아서 상추 두어 폭씩 심어 옆집에 슬쩍 갖다 놓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땅만 봐도 씨를 뿌리고 싶어 안달하는 분 같다. 그분의 씨뿌리는 마음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상에! 동사무소에서 교회 앞 영운 천에 꽃길 가꾸려고 손질해 놓은 터에 고추와 가지모를 심었다가 뽑혀버리자 머리털이 뽑힌 심정이더라는 말을 하시기도 했다. 꽃을 심는 마음과 열정이 지나쳐 부정적인 일도 있었다. 교회 어른들을 모시고 국립공원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오던 날이었다. 정한 시간이 지나도 그분이 오시지 않아 염려들 하는데 원 참, 교회화단에 심겠다고 진달래를 뽑아서 안고 오는 것이 아닌가.

기겁을 하며 절대 안 되는 일이라고 해도 산에 지천이니 하나쯤 가져가겠다는 거다. 관리인에게 걸리면 망신당하고 벌금 낸다 말렸지만 막무가내다. 목사님만이 그분을 교화시킬 수 있다고 수군대더니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교회가 보호해야 합니다. 산에서 절대 꽃나무 뽑아오지 마세요. 교회서 묘목 사드립니다." 하고 목사님이 설교도중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누군가 말씀 드린 것 같다. 눈총을 받으며 그분이 캐다 심은 진달래는 그럼에도 몇 해를 두고 교회마당에서 꽃을 피워냈다.

산에서 나무를 캐오는 건 옳지 않다. 그러나 공터를 보고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활짝 핀 꽃 한 송이를 상상했다면 창의적인 사람임이 분명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거나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창의는 아닐지라도 열심히 심는 열정만은 귀감이 된다. 가진 것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지만 나눠주고 싶어 새벽마다 화단을 가꾼다. 그분 내면에 있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로 심은 씨앗들은 터를 굳히어 뿌리를 내리고 열심과 정성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라 향기가 되어 이웃에게 강처럼 흘러넘친다.

꽃처럼 화려한 삶은 아니어도 쉬지 않고 씨앗을 심듯이 마음의 빈터마다 복음을 뿌리며 산다면 이 땅에 복음화가 요원하지만은 아니할 것을. 나도 부지런히 복음을 심고 돌보며 사랑으로 북을 돋우어야겠다. 잡풀은 뽑아내고 그리스도의 따뜻한 마음을 넣고 가꾸어야하리. 향기로운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