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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11.29 17:41: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달아 높이 높이 돋으시어 / 어기야차 멀리멀리 비치게 하시라 / 어기야차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 시장에 가 계신가요 / 어기야차 진 곳을 디딜세라 / 어기야차 어강됴리 / 어느 것에다 놓고 계시는가 / 어기야차 나의 가는 곳에 저물세라 / 어기야차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악학궤범>

악학궤범 권5에 실려 있는 작자 미상의 백제 가요인 '정읍사'(井邑詞)이다. 정읍사는 아내가 행상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높은 곳에 올라 남편을 기다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망부가(望夫歌)다.

그러나 정읍사는 경제사적인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적인 시(詩)가 된다. 남편의 직업이 '행상'(行商)이기 때문이다. 행상은 보통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으로 구분된다. 정읍사의 행상 남편이 보상인지, 부상인지는 내용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은 대형마트 등에 밀려 장시(場市)의 일종인 5일장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장시는 양민들의 유일한 교역장소이자 정보 너트워크의 공간이었다.

장시에 나가 막걸리를 곁들인 대화를 나눠야 이웃 동네를 비롯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혹자는 장시를 '조선시대 인터넷'이라고도 부른다.

장시는 15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처음 발생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처음의 장시는 축하를 받지 못했다. '끝'(末)을 쫓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끝'은 상업적인 이윤을 의미한다.

"전라도 무안(務安) 등 모든 고을에서 상인들이 장문(場門)이라 일컫고 여러 사람이 모여 폐단을 민간에 끼친다 하니, (…) 비록 있는 물건을 가지고 없는 것과 바꾼다고 하나, 근본을 버리고 끝을 따르는 것이며, 물가가 올라 이익은 적고 해가 많으므로, 이미 모든 고을로 하여금 금지시켰습니다."-<성종실록>

중종 때 최숙생이 올린 상소도 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폐해상이 좀더 구체화된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장문'은 장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장문(場門)에는 간도(奸盜)가 기생(寄生)하고 안으로 시정(市井)에는 남위(濫僞)가 모입니다. 적은 부락과 좁은 골목이 모두 시장이 되어서 이(利)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날마다 성하고 달마다 불어나니 본업(本業)이 황폐된 것은 실로 이 때문이라 하겠습니다.'-<중종실록>

조선시대 양반가도 물물교역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양반들은 자신이 직접 장시에 가지 않고 대신 종을 보냈다. 장시는 '아래것들'만 모이는 공간이었고, 또 그런 곳에는 '나쁜 기운'이 돌아다닌다고 믿었다.

그러나 당시 조정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장시는 16세기 중엽 쯤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후 관료가 장시 존재의 필요성을 적극 두둔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우리고장에서 장시의 필요성은 처음 언급한 인물은 당시 충청도관찰사 권민수(權敏手·1466∼1517)였다.

"충청도 관찰사 권민수가 도내에 장문을 설치하겠다고 청하므로 호조에 의계하도록 했더니, 또 각도에도 아울러 설치하자고 청했다. (…) 아직은 민원대로 충청도에만 설치하고 다른 도에는 설치하지 않는 것이 가하니 다시 호조에 문의하도록 하라."-<중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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