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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4.20 21:38:2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영결편지'는 곧 죽을 사람이 산 사람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를 말한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국문을 받기 위해 귀양지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 숙종의 사약을 받고 전북 정읍에서 죽었다.
 
이때 수제자 권상하에게 남긴 영결편지에는 '괴산 화양동에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제사 공간인 만동묘(萬東廟)를 세워라'라는 유언이 들어 있었다. 명나라 신종은 임진왜란 때 군대를 파견해 조선을 도운 인물로, 이른바 재조지은(再造之恩)으로 표현된다. 재조지은은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도움을 준 은인이라는 뜻이다. 의종은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반란군이 북경으로 처들어오자 처첩과 딸을 죽이고 자신도 징산에서 자살한 인물이다.
 
제천 한수에서 달려온 권상하는 유언에 따라 숙종 29년(1703) 괴산 화양동에 만동묘라는 큰 사당을 건립하게 된다. 이때의 '만동'(萬東)은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따온 이름으로, '황하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충절의 표현이다.
 
우암은 임진왜란이 끝나자 명나라에 대한 고마움으로 화양동 석벽에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엄청나게 큰 글씨를 새겼다. 애각(崖刻)이라고 한다. 민정중이라는 인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의종에게 이 글씨를 직접 받아왔다.
 
이때부터 우암은 화양동 일대를 명나라에 대한 은혜의 공간으로 꾸밀 것을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속도를 내던 이 작업은 숙종에게 사약을 받음으로서 실현되지 못하게 됐다. 우암은 바로 이 희망을 수제자 권상하에게 영결편지로 남겼다. 만동묘는 숙종29년에 완성됐다. 그러나 우암이 사약을 받은 때는 숙종15년으로 14년의 시간적 공백이 존재한다. 산중에 짓는 건축물임을 감안해도 공기가 이례적으로 길다.
 
노론계가 화양동에 만동묘 건립을 추진하자 남인, 소론 등 이른바 反노론계가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 논쟁은 노론 성만징(1659~1711)과 남인 이만부(1664~1732)가 '대표선수'로 나서 격렬한 논리다툼을 한다.
 
성만징은 "옛날에 초나라가 망하여 그 유민이 연나라 昭王을 제사지내자 한유가 시를 지어 이를 찬미한 바 있다. 만동묘 제사가 비록 법도에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천리인정의 正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남인 이만부는 "예에서 말하는 제사는 그 나라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모두 亡人이 살았던 땅에서 제사한 것으로, 정신과 혼백이 그곳에 있음에 기인한 것이다"라며 노론을 공격했다.
 
급기야 이만부는 우암을 '時烈'이라고 지칭하며 "명분을 훔치고 널리 私黨을 심었으며 조정을 기롱하고 국맥을 손상시켰다"라고 송시열을 맹렬히 비난했다. 여기에는 이명휘라는 인물도 가세, "화양동은 명나라 천자에 있어 어떠한 관계도 없는 곳이며 천자의 사당이라면 천자의 예악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
 
곡절 끝에 세원진 만동묘는 흥선대원군 때 철거됐다. 이후 고종 때 다시 복원돼 일제강점기까지 제사를 지냈으나, 유생들이 모여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낸다는 이유로 총독부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현재는 만동묘정비만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글자는 일제가 고의로 정으로 쪼아 훼손, 판독이 어려운 상태다. 충북도기념물 제 25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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