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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3.11 15:47:3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집권전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 세도가 김병학과 그의 딸을 며느리로 삼기로 밀약했다. 그러나 집권하자 마음이 달라져 고아나 다름없는 여흥민씨 명성황후를 왕비로 간택, 한 살 연하인 고종과 결혼을 시킨다. 이는 외척의 발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의도와 달리 총명했던 명성황후는 사사건건 시아버지와 부딪히며 권력 투쟁을 벌인다. 조선시대 때 대비 즉 임금의 어머니가 섭정을 한 예는 많아도, 아버지가 섭정을 한 것은 고종 때가 처음 이었다. 이것이 구부간 (舅婦間·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 갈등의 단초가 됐다.

이밖에 둘 사이의 개인적인 감정도 작용했다. 명성황후는 결혼한지 5년만에 첫 왕자를 얻게 되나, 그 왕자가 용변을 보지 못하면서 5일 만에 죽었다. 그런데 그 직전에 '왕자의 약으로 써 보라'며 산삼을 준 사람이 흥선대원군이었다. 명성황후는 이때부터 시아버지 때문에 첫 왕자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명성황후에게 찾아온 첫번째 정치적 시련은 임오군란이다. 명성황후가 개혁정책을 도입하기 전까지 군인들은 차별이나 그리 나쁜 대접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정책 후 월급이 13개월치 밀리고, 여기에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보다 후하게 대우하면서 구식 군인들의 감정이 폭발했다. 그들은 창덕궁에 난입했다.

그러나 두뇌회전이 빨랐던 명성황후는 재빨리 보통 궁녀의 옷으로 갈아 입은 후 가마를 타고 궁궐을 탈출한다. 그런데 그 직후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에게 발각돼 아찔한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홍재의라는 친위병이 "이 사람은 나의 누이동생 홍상궁이다"라고 둘러 돼 위기를 넘기고 충북 땅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러나 홍재의는 을미사변때 명성황후를 방어하다 일본군인 총탄에 사망했다.

충북 어느 땅으로 피신했는지에 대해서는 음성 감곡면, 충주 노은면, 제천 한수면, 단양 영춘면 등 크게 4가지 설이 있다. 이중 음성 감곡과 충주 노은면은 서로 "자기 지역이 명성황후 피난지"라며 표지석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구한말 민응식의 저택이 있던 음성 감곡면 왕장리 29번지 즉, 지금의 매괴 여중고가 자리가 명성황후 피난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년 민응식 후손이 대전에서 명성황후 피난 동선을 기록한 '임오유월일기'가 공개했다. 이 사료를 보면 명성황후는 궁궐을 빠져나온 후 6일만에 감곡의 민응식 집에 도착하고 이후 51일만에 환궁한다. 이 기간 동안 명성황후는 주변 가까운 곳은 가끔씩 다녀오나 먼거리 이동은 절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대신 또 다른 가까운 친척인 '민긍식'이 명성황후를 찾아뵙기 위해 충주 노은에서 감곡으로 온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갈등을 빚는다. 임오군란으로 재집권한 대원군은 명성황후가 해방불명 되자, 시신도 확인하지 않고 '며느리가 죽었다'며 국장을 지시한다. 물론 이것은 명성황후의 권력에 복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원군의 계책이었다. 이에 대해 명성황후는 남편인 고종에게 자신이 생존해 있음을 알리고, 또 김윤식을 통해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한 끝에 권력 복귀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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