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悖倫)의 본래 의미는 윤리에 어긋난다는 뜻이고, 불윤(不倫)은 윤리가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은 패륜은 부모에게 큰 죄를 지었을 때에 붙이고, 불륜은 보통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말뜻이 다소 변했다. 조선 성종 때 우리고장 청주목에서 희대의 불륜사건이 일어났다. 청주목의 변석령(邊石齡)이라는 사람이 장모 막비(莫非)와 간통한 것으로 신고됐으나 장모는 이를 부인했고, 대신 중 학초(學初)와 간통을 해 임신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중 학초는 막비와의 간통사실을 부인했다. 조선은 강상윤리[삼강오륜]를 매우 중히 여겨, 이를 어긴 사람은 중범죄자로 다뤘다. 따라서 지방정부가 아닌 국가에서 직접 수사를 맡았다. 따라서 이 사건도 지방 청주목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의 형조에 배당됐다. 혹독한 국문이 시작되자 변석령은 6차 고신(拷訊)을 받고 "장모 막비와 간통했노라"라는 자백하였다. 고신은 고문(拷問)과 같은 말로 숨기고 있는 사실을 강제로 알아내기 위하여 육체적 고통을 주며 신문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막비는 13차 고신을 당하고서도 "사위(변석령)가 아닌 학초와의 간통으로 임신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고
청주목에서 체포돼 생을 마감한 이금(伊金)에 대한 내용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비교적 간단히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전후해 고려에서는 매향(埋香)이라는 매우 독특한 풍습이 등장한다. 매향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 향나무를 묻는 것을 말한다. 당시 이땅은 민중들은 미륵이 메시아로 강림할 것에 대비해 그에게 향을 바치기 위해 미리 향나무를 준비하였다. 그같은 행위는 집단적으로 이뤄졌고, 그들은 비나리 행사 후 그 사실을 바위에 기록하였다. 현재 전국적으로 △전남 영광군 법성면 입암리 △전남 신안군 암태면 송곡리 △강원도 고성 삼일포 △충남 예산군 봉산면 효교리 △ 충남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평안북도 정주시 침향리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사진) 등에 매향비가 존재하고 있거나, 탁본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 매향비는 지리적으로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내륙이 아닌 바닷가나 그 인근에 비가 세워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이금과 관련된 기록에서 그 단서를 만날 수 있다. '또 이르기를, "내가 산천(山川)의 신(神)을 신칙하여 보내면 왜적(倭賊)을 사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니 무격(巫覡 무당 )이 더
[충북일보] 불교의 믿음은 상생(上生) 신앙과 하생(下生) 신앙으로 구분된다. 죽었을 때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상생신앙이다. 반면 메시아가 강림해 내가 살고 있는 땅을 극락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생신앙이다. 지난날 석가모니는 제자 미륵에게 장차 성불을 해, 사바세계(현재의 땅)의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할 것을 수기(授記)하였다. 수기는 부처가 수행자에게 미래의 깨달음에 대하여 미리 지시하는 예언이나 약속을 일컫는다. 불교 경전의 하나인 《미륵삼부경》에 따르면 현재 미륵은 성불을 한 후 도솔천에서 하생 시기를 기다리며 선정에 들어 있다. 이것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그 유명한 미륵반가사유상이다. 이 땅의 '가짜 지도자들'은 현재의 삶에 지친 백성을 현혹하기 위해 미륵의 강림사상을 자주 교묘히 이용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그러했고, 《정감록》에 등장하는 진인(眞人)도 미륵의 메시아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811년 평안도에서 난을 일으킨 홍경래가 내세운 메시아도 정진인(鄭眞人)이었다. 미륵사상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시간적으로 공통점
선조들은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이치로 산세는 물[강]에 이르러 그 흐름을 멈추고,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물은 산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 같은 현상은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연이어 흐르기 때문에 비롯된다. 모든 강은 수계가 같으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려진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같은 수계(水系)라 해도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이 같은 '부분칭'은 교통 미발달로 사람들의 행동반경이 좁았고, 따라서 산 넘어 저 먼 곳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비롯됐다. 임진왜란 때 경상도 군량미를 운반하는 것과 관련하여 《선조실록》에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충청도 금강(錦江) 일대의 물이 위로는 형강(荊江)과 연결이 되고 아래로는 바다에 닿아 있어 조운할 수가 있는데, 물이 많을 때면 형강 이상까지 올라갈 수 있고 물이 얕더라도 연기(燕岐)까지는 댈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경상도 초입인 금산 지방까지는 수삼일 일정에 불과하고 길도 그리 험준하지는 않아, 조령에 비하면 자못 편리하고 가깝습니다.'- 인용문의 형강은 많이 듣던 강이름이 아니다. 연기 상류에 위치하는 것으로 여겨지나 구체적인 위치는
조선 영조 9년(1753) 단양 읍내에 우화교(羽化橋)라는 다리를 세운 인물은 당시 군수 이기중(李箕重·1697~1761)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영조 10년 다리 건립을 기념해 우화교 신사비(新事碑)라는 비석이 세워졌다. 이는 당시 우화교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그만큼 컸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당시 우화교는 죽령과 한양을 잇는 도로, 즉 봉화대로에 위치하면서 경상도 북부 사람들에게 상경과 귀향에 따른 교통 편의를 제공했다. 현재 우화교 비문의 일부에는 '圻湖之客循竹嶺而左者 必由是達焉 然登橋而望 林峀幽O O沙脩潔 如入天台武陵之路 故好事者名之曰羽化'(기호지객순죽령이좌자 필유시달언 연등교이망 임굴유O O사수계 여입천태모릉지로 고호사자명지왈우화) 명문이 보인다. 대략 '기호의 나그네가 죽령을 넘으려면 이곳(우화교 지칭)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다리에 올라 바라보면 산림은 그윽하고 개울 모래는 깨끗하니 마치 천태 무릉도원에 이르는 길과 같다. 호사가들은 이 다리의 이름을 우화라고 부른다' 정도가 된다. 우화교 신사비는 화강암 재질에 높이는 115㎝ 정도이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옛 군청 자리로 옮겼다가 1990년 하방리에 수몰이주기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과 돌계단. 그 계단을 오르면 손오공 이미지를 지닌 돌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고 전회에 밝힌 바 있다. 시선을 좌우로 돌리면 계단 면석에 돋을새김(양각)을 한 화문(花紋), 즉 꽃문양을 만날 수 있다. 전통건축에서 시선과 수평되게 볼 수 있는 석부재는 면석(面石), 반면 시선을 아래로 향해야 볼 수 있는 면은 갑석(甲石)이라고 한다. 사람은 직립하는 까닭에 거북의 등을 보려면 시선을 아래로 향해야 한다. 그래서 갑석이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법주사 대웅보전 계단면석의 문양을 연꽃으로 여기고 있다. 법주사 종무소 관계자도 전화통화에서 "지금까지 연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꽃문양을 연꽃으로 보기에는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다. 연꽃은 꽃잎이 겹을 이루면서 수직으로 핀다. 국보 제 64호인 법주사 석연지의 연화문도 그런 문양으로 돋을새김을 하였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 꽃문양을 법주사 창건설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길상초(吉祥草)로 보고 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길상초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연한 자주색의 꽃을 10cm 정도의 꽃대 위에 피운다. 고대 불교경전
현재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수몰기념관 경내에는 도유형문화재 제 80호인 '우화교 신사비(羽化橋 新事碑)'가 위치한다. 독특한 이름의 이 비는 '우화교를 새롭게 놓고 세운 비'라는 뜻을 지닌다. 비는 화강암 재질에 높이 115m의 크기의 제원을 지니고 있다. 우화교는 조선시대 경상도 사람이 죽령을 넘어 한양으로 향할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매우 중요한 교량이었다. 그런 우화교의 '우화'는 설화에 의하면 다리를 건널 때 날개가 돋아난다, 즉 선인(仙人)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충주댐이 수몰되기 전의 일대는 주변 숲과 단양천이 어울어지면서 마치 선경(仙景)의 모습을 연출했다. 이때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마치 날개가 달린 선인같다고 해서 우화교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우화교는 조선시대 언제인가 대홍수로 인해 파괴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 우화교가 그려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구한말까지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우화교 곁에 있었던 우화교 신사비는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지난 1985 옛 군청 자리인 단성면 상방리 97번지로 옮겨졌다. 이후 다시 수몰기념관 경내로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때 우화교를 세운 인물은 당시 단양군
'꽃은 5∼8월에 검은 홍자색으로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자란 긴 꽃자루 끝에 위를 보고 1개씩 달린다. 열매는 달걀 모양이며 꽃받침과 암술대가 남아 있다. 종자는 물 속에서 익는다. 우무 같은 점질로 싸인 어린 순을 식용한다. 어린 잎은 지혈·건위·이뇨에 약용한다.' 제천 의림지의 명물인 순채(蓴菜)에 대한 식물학적인 설명이다. 제천 순채는 문헌상 조선 전기부터 등장한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제천의 토산(土産)으로 신감초(辛甘草)·순채·홍화(紅花) 등을 기술하였다. 그러나 《세종실록》 지리지는 순채와 제천 의림지와의 관련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의림지와의 관련성은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순채[蓴] 의림지(義林池)에서 난다"라고 표현, 그 출처를 분명히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제천 의림지 순채는 조선 문인들의 단골 시주제가 됐다. 조선후기의 문신학자로 《농암집》을 지은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있다. 그는 '자익과 함께 의림지에서 시를 짓다'라는 시에서 제천과 의림지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넓디넓은 푸른 못 그리 아니 맑은데 / 교룡이며 어류들 생명 부쳐 살아가네 /
고려 성종 때의 제천 별호(別號·특별 명칭)인 '의천(義川)'과 전통시대 축조된 의림지(義林池)는 '의' 자를 어두에 공유하고 있다. 이는 두 지명이 상관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은 이와 관련하여 "의림지의 본래 지명은 '임지(林池)'였는데 여기에 '의(義)' 자가 붙어 의림지가 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대전은 이때의 '의' 자를 성종 때의 별호인 '의천'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연 설명하고 있다. 만약 이 설을 따른다면 제천 의림지의 본래 이름은 '임지'였으나, 별호 '의천'이 생겨난 후 지금의 이름인 '의림지'를 갖게 된 것이 된다. 의림지의 작명 시기가 곧 축조 연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나 의림지의 역사성은 그만큼 짧아지게 된다. 조선 세종~성종 연간의 인물로 홍윤성(洪允成·1425~1475)이 있다. 그는 수양대군(후에 세조)이 일으킨 계유정란 때 한명회의 살생부대로 철퇴를 휘두른 인물로 우리고장 보은 회인 출신이다. 그가 경연(經筵)에 나가 성종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조선시대 경연은 임금과 대신이 국정의 현안과 유교 경전에 대해 이야기는 나누는 정학(政學) 토론의 공간이었다. 성종: "연안(延安)의 남대
[충북일보] 돌계단은 전통 건축에서 디딤돌, 계단면석, 소맷돌, 지대석 등으로 구성된다. 디딤돌은 발바닥이 닿는 면으로 한 칸 한 칸 디디고 올라가는 돌, 계단면석은 양측면을 막은 판석을 말한다. 그리고 지대석은 계단 맨아래 위치하는 돌로 땅과 접촉하고 있고, 소맷돌은 계단면석 위에 올려져 있는 양쪽의 돌난간을 말한다. 소맷돌은 40도 내외의 경사를 이루는 것이 보통이나 이를 설치하지 않는 계단도 있다. 그러나 경사가 심하고 디딜돌의 수가 많을 경우 보행자 안전을 위하여 소맷돌을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소맷돌 아래쪽 끝에는 법수(法首)로 불리는 기둥석이 세워지기도 하고 그 위에 귀면, 동물, 연꽃 등의 조각이 장식되는 사례가 많다. 충북 불교의 종가인 속리산 법주사를 찾으면 대웅보전을 만날 수 있고, 여기에도 여느 대형 사찰 건물처럼 돌계단이 설치돼 있다. 그리고 대웅보전 돌계단을 무심코 오르다 보면 소맷돌 끝에서 원숭이 조각상과 마주친다. 원숭이는 동남아시아와 일본에 분포하고 있는 포유동물로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따라서 법주사 경내에 불쑥 들어와 있는 원숭이 조각상은 묘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인도신화에 '하누만'(Ha
병자호란(1636)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국제정세를 보는 눈이 달랐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유입된 서양문물을 보고 개방과 개혁만이 조선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동생 봉림대군에게 청나라는 오랑캐 국가로 단지 복수의 대상일 뿐이었다. 소현세자의 급서와 부왕 인조의 승하로 보위에 오른 봉림대군(후에 효종)은 포병 10만명 양성을 계획하는 등 북벌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색(色)도 멀리할 정도였다. 나아가 같은 북벌론자인 우암 송시열을 이조와 병조판서에 동시 임명, 북벌을 진두지휘토록 하였다. 그러나 송시열의 북벌은 이른바 관념론적인 북벌로 효종의 군사적인 북벌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이는 효종 서거 후 예송논쟁이 두 차례나 일어난 것에서 그대로 입증된다. 우암은 속으로 전전긍긍하였다. 당시 정치 지형은 효종과 송시열이 이끄는 산당(山黨)이 군사적인 북벌을 매개로 암묵적인 연합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벌의 반대는 곧 두 권력 관계의 파탄을 의미했다. 당시 송시열·송준길 등은 산당, 한양을 거주지로 했던 김육(金堉) 등은 한당(漢黨)으로 불렸다. 전자는 대동법 시행을 반
[충북일보] 속리산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을 둘러싸고 최근들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다. 법주사 미륵대불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시멘트 미륵대불, 청동미륵대불, 금동미륵대불 순으로 불리워져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조각가인 김복진은 1939년 시멘트 미륵대불을 제작했다. 그리고 월탄스님이 주지로 있던 1987~1990년 사이에는 청동미륵대불, 석지명 스님이 주지로 있던 2000년에는 청동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가 진행됐다. 이후 청동색 녹이 배어나오면서 금년 4월까지 3번째 개금불사가 진행됐다. 금동미륵대불은 말 그대로 금동+미륵+대불의 조합어이다. 일련의 진행을 보면 법주사는 불가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이것들에 집착(?)을 보이고 있다. 금동은 곧 황금색을 의미하고, 따라서 석불, 철불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불상은 황금색을 나타내고 있다. 황금색에는 부처의 이른바 32길상(吉相)이 관여한다. 32길상은 《중아함경》과 《방광대장엄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른바 부처님 외모에 관한 규정이다. 정유육계(頂有肉髮), 나발우선 기색감청(螺髮右旋 其色紺靑), 액광평정(額廣平正) 등의 표현이 있다. 순서대로 '정수리에 육계가 있다', '소라같은 머리칼
[충북일보] 최근 청주시 미호강변에서 아주 기묘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새벽에 수백여 명의 인파가 강변 공원 앞에 줄을 서있는 낯선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젊게는 30대에서 많게는 70대 노인까지 행렬에 참여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돗자리를 펴고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충북일보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이들은 미호강 파크골프장에서 '2025 생활스포츠지도자' 실기·구술 시험을 보러온 응시자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야심한 시간에 줄을 서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파크골프 종목 생활스포츠지도자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식 시험장이 전국에서 청주 딱 한 곳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3천여 명의 응시자들이 서로 연습기회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 응시자에게 왜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이냐고 묻자 "밤 11시부터 줄을 서도 새벽 5시 30분 파크골프장 개장시간에 대기번호 후순위를 받을 정도"라며 "줄을 서지 않으면 입장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춘천에서 왔다는 또 다른 응시자는 "사람이 너무 몰려서 하루 1번 겨우 연습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전날부터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청주시설관리공단을 도시공사로 전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16일 시에 따르면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청주시의회 정례회에 '청주도시공사 설립 및 운영 조례'를 상정할 예정이다. 시가 시의회에 상정한 조례안에는 기존 청주시설관리공단의 기능을 확장해 도시개발사업과 위수탁·대행사업을 수행하는 통합형 공사를 만드는 방안이 담겼다. 시가 공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앞으로 지역에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타 기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추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청주시는 개발사업을 주도할 주체가 없어 대부분의 개발사업을 LH나 충북개발공사, 민간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또 시설관리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청주시설관리공단으로는 각종 개발사업을 처리할 여건이 안된다는 것도 시가 새로운 컨트롤타워 조직 구성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청주시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의 중심지역이고 공항과 철도, 도로 모두 발달해 앞으로의 개발 수요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도시공사 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시의 주장이다. 시는 시설공단이 도시공사로 전환되면 도시개발에 따른 이익이 지역에 환원할 수 있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