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는 면리제(面里制)가 근간으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里 밑에 자연부락 지명이 존재하나 이는 법적 행정지명은 아니다. 따라서 현재의 시골지역은 '~리 OOO번지' 식의 주소를 갖는다. 일제는 1914년 우리나라 지방행정제도를 개편하면서 농촌지역의 경우 부(府)와 현(縣)을 폐합, 군(郡)으로 일원화했다.이때 도내에서는 영춘, 청풍, 연풍, 청안, 문의, 청산, 황간현 등이 면(面)으로 격하됐다. 이중 청풍현은 바로 청풍면이 되지 않고 1914~1917에는 비봉면(飛鳳面)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행정명으로서의 면은 태조 때부터 등장한다. '목조는 두타산성을 지켜서 난리를 피하였다. 때마침 전일의 산성별감이 새로 안렴사에 임명되어 또 장차 이르려고 하니, 목조는 화(禍)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바다로 배를 타고 동북면(東北面)의 의주(宜州)에 이르러 살았는데…'- 조선전기 우리고장 보은에서도 면(面) 이름이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청산현의 월경지(越境地)인 주성부곡을 서술하면서 '북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월경(越境)은 청산(靑山) 임내의 주성부곡(酒城部曲)이 현 북면(北面)에 터무니 없이 들어와 있다.'-
10. 이노우에, 동학은 물론 명성황후 시해에도 관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1836~1915)에 대한 평가를 보면 그가 왜 조선과의 악연을 자원했는지 알 수 있다. "이노우에의 장점은 머리회전이다. 일단 분규가 일어나면 전광석화처럼 대처해서 수완을 보인다. 어떤 어려운 문제에도 임기응변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 성격은 급하지만 싫증을 잘 내지 않으며 공명심에 담박하고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부탁받으면 나쁜 직무라도 열심히 일했다. 세상의 악평은 그런 점에서 나온 것도 있다." 메이지정권이 당면 목표로 삼은 조선 침략의 앞잡이로선 실무에 밝은 그가 적임자였다. 불평등조약 체결부터 개화파정권의 친일 정책과 최대 반일세력인 동학농민군 제거까지 이노우에 가오루가 책임을 졌고, 명성황후 시해에도 마무리에 등장했다. 조선의 국권 탈취는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2대 소네 아라스케(1849~1910), 3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1852~1919)가 담당했다. 요시다 쇼인의 가르침은 그렇게 50년만에 조슈번의 사무라이들인 야마구치 인맥에 의해 완수되었다. ■ 유다온천의 메이지유신 사적지 야마구치 시청의 남서쪽에 대형 호텔과 여관들이 늘어선 곳
정철에게는 정여립을 단죄한 기축옥사의 업보가 계속 따라다녔다. 그는 임진왜란 와중에 명나라를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선조의 신임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인들은 기축옥사의 한을 곱씹고 있었다. 결국 정철은 전란 중임에도 불구하고 동인의 모함을 받아 지금의 강화도 송강촌이라는 곳으로 방축됐다. 실각한 그가 왜 강화도로 들어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선조의 부름이 다시 있을 것으로 보고 한양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는 추정이 있다. 반면 그의 문인(門人·제자)인 권필(1569∼1612)이 강화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권필은 젊었을 때 평안도 강계에서 유배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이때 역시 그곳에 건저의 사건으로 유배와 있던 정철을 만나 사제 관계를 맺은 바 있다. 권필은 이후 강화도에 정착, 그곳에서 많은 유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혹자는 정철이 이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쫓기듯 들어간 강화도에서, 정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난과 병고였다. 그는 지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썼다. '내가 강화로 물러나온 후 사면을 둘러봐도 입에 풀칠할 계책이 없으니 형이 조금 도와줄 수 없겠습니까. (…) 그러나 형처럼 절친한 이에게서는 약
신립(申砬·1546∼1592)은 과연 임진왜란 충주전투에서 자살을 했을까. 지금까지 신립은 금년 기준으로 7갑(1592년) 전인 임진왜란 충주전투 때 패배에 따른 책임을 지고 달천에 뛰어들어 자결했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이는 선조실록 1592년의 기사 중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라는 표현에 근거하고 있다. '적이 복병을 설치하여 아군의 후방을 포위하였으므로 아군이 드디어 대패하였다. 입은 포위를 뚫고 달천 월탄(月灘)가에 이르러 부하를 불러서는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고 하고 빠져 죽었다. 그의 종사관 김여물(金汝山+勿)과 박안민(朴安民)도 함께 빠져 죽었다.'- 선조실록 원문은 '賊設伏繞, 出我師之後, 衆遂大潰。 砬突圍至달(수달달)川月灘邊, 召其下曰: "無面目見殿下。" 遂溺死。 其從事金汝山+勿、朴安民, 亦溺死'로 적혀 있다. 그러나 신흠(申欽·1566~1628)의 상촌집(象村集)은 같은 전투였지만 약간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조선중기 문신인 신흠은 '상촌집'이라는 시문집을 63권 22책의 방대한 분량으로 남겼다. 이중 '여러 장사들이 왜란 초에 무너져 패한 기록'(諸將士難初陷敗志) 편에 임진왜란 충주전투와 신립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
지금까지 뿌리만 사용하고, 별 쓸모가 없어 버려지던 인삼잎이 피부탄력 증대와 주름 개선에 커다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산하의 인삼특작부(팀장 김승유)는 최근 이같은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인삼잎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그 이용 가능성을 새롭게 규명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특히 인삼잎의 프로콜라겐 생성과 엘라스타제의 저감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주목했다. 생화학 이론상 프로콜라겐은 콜라겐 생성유도물질로, 노화와 피부주름 방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로콜라겐은 효소반응을 거쳐 콜라겐 섬유를 형성하게 돼 피부의 결합성과 탄력성을 높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험결과, 인삼 잎은 프로콜라겐 생성이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삼 잎 추출물을 100μg/ml 투입했을 때 대조군보다 프로콜라겐이 36 % 더 생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콜라겐을 형성하는 중요한 영양성분인 비타민C를 투입했을 때보다 프로콜라겐 생성이 더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탄력성 단백질 분해요소인 엘라스타제는 태양광에 노출되면 활성이 증가해 피부의 탄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만들어지는 원인으로 알려져 왔다.
우리고장 진천 문백에 영면하고 있는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은 조선중기 당쟁의 한 복판에 서 있던 인물로 생각될 수 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 그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진력을 다 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 기간 동안 충청과 호남의 양호체찰사가 되어 우리고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체찰사는 왕명에 의해 특정 지역에 파견되는 임시 고위관료를 말한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른바 건저의(建儲議·세자를 세우는 것에 대한 논의) 사건에 대한 선조의 노여움으로 압록강 아래인 평안도 강계에 유배됐다. 이때 그는 유배생활의 고달픔을 시로 남겼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고 / 하늘을 업고도 하늘 보기 어렵네 / 마음을 아는 넌 오직 백발이라 / 나를 따라 또 한 해를 지나는구나.'- 인용문 중 '하늘을 업고도 하늘 보기 어렵네'는 유배된 곳의 집담장 둘레는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배의 한 종류인 위리안치(圍籬安置)는 빽빽히 들어산 탱자나무가 담장을 이룬 것을 말한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가시가 나 있고, 또 그물처럼 촘촘하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달여만에 유배지 강계에서 사
전회에 송강 정철의 아들 종명이 아버지를 변호하는 내용을 간략히 소개했다. 그러나 이 글은 장문이고 또 정종명 혼자가 아닌, 동생 홍명(弘溟)과 같이 올린 상소문이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변호·복권시키려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의 사실'이라는 것도 있다. 더욱이 상소하는 대상이 일국의 지존인 국왕이다. '신의 아비가 명종·선조 두 조정을 섬기게 되어서는 용호가 풍운을 만나고 고기가 물을 만난 듯한 기쁨이 한때 견줄 데 없었으나 다만 강직한 충성 때문에 남과 화합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철은 '한 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놓고 무진 무진 먹세그려'의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지을 정도로 술을 매우 좋아했으나 불같은 성격을 함께 지녔다. 두 아들은 '남과 화합하지 못했다'라는 말로 그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소문은 아버지 정철이 기축옥사의 위관을 맡고 싶어서 맡은 것이 아닌, 선조의 강권 때문에 맡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위관(委官)은 죄인을 추국할 때 대신 중에서 임시로 뽑아서 임명하는 재판관을 말한다. 국조인물고를 보면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해 11월에 공을 우의정에
그날 서인 영수 정철과 동인 연수 이산해는 선조 앞에서 세자 책봉 문제를 논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선조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이산해는 그날 병을 핑계로 어전에 나가지 않았다. 정철은 이같은 음모도 모르고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할 건의했다가 혼자 선조의 미움을 사 강계로 유배됐다. 이른바 건저의(建儲議·세자를 논하는 것) 사건으로, 이로 인해 서인이 몰락하고 동인이 집권했다. 기축옥사의 최고 국문관이었던 정철은 실각하자마자 기축옥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기축옥사는 정여립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은 동인계열 사람 수백명이 희생된 사건을 말한다. 이때 동인중 정철을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북인, 온건론을 편 쪽은 남인으로 갈렸다. 정철의 아들중에 정종명(鄭宗溟·1565∼1626)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학문과 실력을 갖췄으나 군수직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모두 아버지 정철 때문이었다. 이조가 정종명을 안성군수로 추전했으나 선조는 비망기를 내려 이를 거부했다. "정종명은 간신의 아들로 여러 해 동안 폐기한 데에는 의도한 바가 있었다. 전에도 여러 차례 수령에 의망된 적이 있어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괴이하여 추구하고
금년이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7갑(420년)인 가운데, 임란 충주전투는 일본 근대역사소설들의 주요 소재가 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 소설들은 충주전투(탄금대전투 포함)를 임진왜란 전개의 가장 중요한 국면으로 다뤘던 것으로 나타났다. 18-19세기 근대 일본소설 중 임진왜란을 다룬 역사소설로는 '에혼타이코키'(繪本太閤記)와 '에혼조센군키'(繪本朝鮮軍記) 등이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두 소설에 '회본'이라는 표현이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은 소설 문장과 함께 삽화가 곁들여진 것을 의미한다. 에혼타이코키는 오카다 교쿠잔(岡田玉山·1737~1812)이 저자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를 그렸다. 세부 내용은 도요토미의 침략 목적과 임란전쟁 과정 그리고 영웅담 등을 담고 있는 가운데, 일본내에서 근대 일본역사소설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혼조선군기는 고니시 휘하의 장수였던 아키자토 리토(秋里竹+離島)가 저자로, 히데요시에 대한 신격화와 함께 임진왜란 진행 내용을 담고 있다. 에혼타이코키보다 1년 앞선 1880년 일본 춘양당( 春陽堂)이라는 곳에서 출판됐다. 흥미로운 것은 두 역사소설에 유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을 참고했을 듯한 표
자연에 방사된 산양은 적응기간이 지나면 행동권이 뚜렷하게 좁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적응기 이후의 행동권은 가을에 가장 넓고, 겨울에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환경부는 지난 2006년 지리산 반달사슴곰을 시작으로 한반도 멸종위기종 동물에 대한 복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따라 충북에서는 지난 2007년 산양(천연기념물 제 217호)이, 그리고 금년 10월말에는 토종여우(멸종위기 야생동물1급)가 소백산에 방사된 바 있다. 복원사업은 멸종위기 동물의 자생력 강화와 장기적인 생존,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건강한 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충북대 출신의 이배근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얼마전 '월악산 멸종위기 산양의 행동 특성에 관한 연구' 논문을 한국 생태학회지에 발표했다. 논문은 자연계열이어서 양은 많지 않으나 자연 방사된 산양에 대한 거의 처음의 논문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연구팀은 지난 2007년 산양의 행동권, 서식지 대응. 식이(먹이) 습성, 행동생태 등을 알아보기 위해 'HF-01' 관리번호를 부여한 산양에게 무선 발신기를 부착한 후 방사했다. 'HF-01'는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고 암컷이며 관리번호가 '01'번이라는
[충북일보]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손님이 연이어 들어선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오늘 저녁을 위해 포장하는 손님,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달라는 손님, 내일 점심 포장을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포장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진열장에 보이는 빵 메뉴부터 6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라자냐, 샐러드, 잠봉뵈르 등 신중한 선택이 이어진다. 스피카 카페에서는 청주 흥덕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보인다. 통창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환하게 들어오는 채광이 따스한 공간을 연출한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곳에서는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온다. 스피카의 이선영 대표는 10년 넘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성인이 된 후 일본으로 떠날 용기를 줬다. 일본의 베이커리나 카페 등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며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게 됐다. 40살이 되면 뭔가 달라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여름철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17일 시에 따르면 올 여름 청주지역 무심천 범람에 대비해 시민들의 통행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한다. 이 자동차단시설은 갑작스러운 폭우나 장마기간 무심천의 수위가 위험수준에 달했을 때 시민들의 세월교 보행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시는 지난해 운천동 세월교 1곳에 양방향으로 이 시설을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시는 이달 내로 무심천 19곳 세월교 전체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단시설 1기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1천만원 수준으로, 모두 38개 시설에 3억8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직원들이 세월교를 일일이 방문해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부턴 원격으로 작동하는 이 시설을 무심천 전 구역에 설치해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이 시설은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투입 대비 사업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시는 재난 예보·경보시설도 개선한다. 시는 노후화된 예보·경보시설을 점검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총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