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우리고장 영동 출신의 김훈이라는 인물은 아내 여흥이씨와 사이에 김수성(金守省), 김수경(金守經), 김수온(金守溫), 김수화(金守和) 그리고 딸 1명 등 4남 1녀를 뒀다. 이중 맏아들 김수성이 출가해 속리산 복천암 주지를 지낸 신미(信眉) 대사이고, 김수온은 식우집(拭·集)을 남기는 등 조선전기의 대문장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신미대사의 첫째 동생인 수경도 벼슬이 낮지 않았다. 먼저 우리고장 보은현감을 역임했다. '신미가, 임금이 부처를 받들어 믿는 것을 의지하여 자주 짧은 편지로써 임금에게 통해 아뢰어, 아우·조카가 벼슬에 제수되어 뜻과 같지 아니함이 없었는데, 이에 이르러 김수경이 보은현감으로서 벼슬에 초배(超拜)되니, 인망(人望)에 맞지 아니하여 물의가 자자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충청도 수부읍의 하나인 청주목사를 지내기도 했다. 때가 영농철에 접어들었는지 성종은 김수경에게 민폐끼치는 행정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청주목사 김수경·영해 부사 김효급·예안현감 김귀지가 하직하니 임금이 인견하고 말하기를, "이제 바야흐로 농사가 시작되어 백성이 노고할 것이니, 폐해가 되는 일을 일으키지 말라" 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정의 대신들은 김수
단순한 고리 모양으로 하찮게 보이는 등자(金+登子·발걸이)가 세계 전쟁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고구려가 그 과정에서 등자문화가 유럽으로 전파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설도 함께 제기됐다. 등자는 말을 탈 때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만든, 안장에 달린 고리 모양의 철제 발 받침대를 말한다. 충북대 박물관(관장 성정용교수·고고미술사학과)이 주최한 제 20기 박물관대학의 올 3번째 강좌가 얼마전 열렸다. 이날 강좌에는 경희대학교 강인옥 교수가 '동토 위에 피어난 문명: 시베리아의 고대문화, 그리고 한국'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강교수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철제 등자를 가장 일찍 만들었고 잘 다룬 민족은 흉노족이다. 이런 등자는 단순해 보이지만 발을 말에 단단히 고정시키면서 기사가 말잔등 위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거나 창을 휘두를 수 있는 등 제 2, 3의 연계 동작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기병(騎兵)이 궁수와 검술사를 겸하는 것이 이때부터 가능해 지면서, 고대의 전쟁하는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뀌어 놓았다. 고구려가 강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흉노의 등자제조 기술을 이른 시기에 수입할 수 있었
세조의 1464년 충청도 순행은 신미(信眉·1403-1479) 대사가 주지로 있는 속리산 복천암이 'U턴', 즉 반환점이 됐다. 그러나 당시 실록은 충청도 순행의 본래 목적이 온양행궁 거둥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임금이 온양(溫陽)에 행행(行幸)하고자 하여, 봉원부원군 정창손·예조 판서 박원형 (…) 공조 참판 강희맹을 수상(守相)으로 삼고…'- 그러나 세조는 곧바로 온양행궁으로 가지 않고 남쪽으로 한참 더 내려가 속리산 복천암을 방문했다. 그렇다면 세조의 어가는 한양도성을 나서기 직전, 거둥 코스를 긴급히 바꿨거나 아니면 경호문제 등으로 인해 '연막'을 피운 것이 된다. 세조가 원래의 목적지를 한참 벗어나 복천암 신미대사를 만난 것은 둘 사이의 인간적인 친밀함이 그만큼 강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삼으면서 불교와 승려를 탄압했다, 심지어 도첩제라는 것을 실시, 승려의 도성 출입도 금지했다. 이런 환경에서 왕과 승려가 '서로 꼭 봐야 할 사이'가 됐다면 그 전에 뭔가 특수한 인연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일부 학자들은 그 특수한 인연의 중간매체로 훈민정음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골수 중화주의자인 대신들의 반대가 뻔
청주향교는 5성과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5성은 공자, 맹자, 안자, 증자, 자사자, 송조 6현은 송나라 주자 등 6명을 말한다. 18현은 설총,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안유, 김굉필, 이언적, 조광조, 김인후, 이황, 성혼, 이이, 조헌, 김장생, 송시열, 김집, 박세채, 송준길 등이다. 청주향교는 역사적으로 10세기쯤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있다. 고려 성종은 즉위 2년(983)에 청주, 충주 등 전국에 12목을 설치했다. "진실로 백성들의 희망에 맞도록 하기 위하여 우서(虞書·요순시대 지칭)의 12목(牧) 제도를 본받아 지방관들을 설치하였노니, 주나라의 국운이 8백년간 계속 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국운이 장구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때 청주, 충주 등 전국 12목에 향교도 함께 설치되면서 중앙에서 경학박사가 파견됐다고 밝히고 있다. 세종대왕은 초정약수에 행차를 할 때 청주향교에 여러 권의 서적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 청주향교에 하사된 책은 통감절요, 통감훈의, 집성소학, 근사록, 통감강목, 성리군서, 사륜집 등 9권이었다. 세조의 어가는 1464년 2월 25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청주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때
포유류는 다람쥐, 파충류는 유혈목이, 양서류는 북방산개구리가 로드킬을 가장 많이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도내 월악산과 속리산을 지나는 도로도 로드킬 발생빈도가 높은 등급에 속하나 저감시설을 한 후 빈도가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공원연구원이 얼마전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국립공원 야생동물 로드킬 저감대책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야생동물이 먹이 획득, 번식 등을 위해 서식지가 단절된 공간인 도로 위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로드킬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연구원은 이와 관련, 로드킬 저감대책을 세우기 위해 2006~2012 7년 동안 전국 16개 국립공원애 41개 도로노선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이 기간 동안 포유류 2천74개체, 파충류 7백82개체, 양서류 2천2백30개체, 조류 3백51개체 등 총 5천5백37개체의 로드킬이 발생했다. 계절별로는 4월 1천1백37개체, 9월 6백67개체, 5월 7백17개체 등이 관찰돼 번식 전후와 월동 준비가 시작될 무렵에 로드킬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파충류는 다람쥐 59.8%, 청설모 9.4%, 너구리 7.2%, 족제비 4.0%, 멧토끼 3.8% 등으로, 다람
세조 어가는 1464년 2월 26일 청주를 출발하여 피반령(皮盤嶺·360m)을 넘어 회인에서 1박했다. 청원군 가덕면 계산리와 보은군 회인면 오동리를 남북으로 잇는 피반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고갯길이 아홉 번 꺾이어 가장 높고 위험한 곳이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역사성이 오래 됐다. 세조 어가는 27일 보은 동평을 지나 병풍송에서 1박했다. 이때 복천암 주지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79)가 영접나와 호종하는 군사들에게 떡을 대접했다. '거가가 보은현 동평(東平)을 지나서 저녁에 병풍송(屛風松)에 머물렀다. 중 신미가 와서 뵙고, 떡 1백 50동이를 바쳤는데, 호종하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조 어가는 그 다음날(28일) 충청도 순행의 맨 남쪽 꼭지점인 속리산 중턱의 복천암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속리사(俗離寺)를 경유하기도 했다. '임금이 속리사에 행행하고, 또 복천사에 행행하여, 복천사에 쌀 3백 석, 노비 30구, 전지 2백 결(結)을, 속리사에 쌀·콩 아울러 30석을 하사하고 신시(申時)에 행궁으로 돌아왔다.' 조선시대 1'결'은 대략 3천평 정도로, 이날 복천암이 세조로부터 받은 전토는 60만평이나 됐다. 위 인용문은 눈여겨 볼
도내 일부 지방자치 단체장들의 치적 홍보가 도를 넘는 '자기 우상화' 수준이어서 빈축을 사고 있다. 19일 괴산군 등에 따르면 화암서원이 괴산읍 검승리로 이건(移建)한 이후 김문배 전 군수의 공덕비를 세워졌다. 당시 괴산지역 유림은 지난 2003~2006년 기간 동안 5억여원의 사업비를 들여 칠성면 송두리에 있던 화암서원을 괴강 건너편의 검승리 야산으로 이건했다. 이와 관련, 화암서원 이건은 혈세인 군비에 의한 것임에도 마치 김 전군수 개인의 지원 때문에 가능했던 것처럼 공덕비에 기록돼 있다. 화강암 오석 재질의 공덕비는 '김문배 괴산군수는 화암서원 이전신축과 향교서원 등 유교진흥에 업적을 많이 남긴 분이다'라고 시작한다.(편의상 한글로 표기) 그러나 비문 여러 곳에서 서원 이건사업과 전혀 무관한 개인을 우상화하는 표현이 다수 등장, 외지 방문객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비문 중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문배 군수는 도량과 능력이 훌륭하며 괴산 명덕학교와 괴산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또 공덕비 중에는 '(도청) 사회복지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괴산군민의 여망에 의하여 제 38대 제 39대 괴산군수로 당선되어…'라는 내용도 보
세조의 어가는 1464년 2월 23일 청주에 도착해 이틀간 머물렀다. 이때 세조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실록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유생, 창기의 노래 환영이 있었고, 104살의 문원(文原)이라는 노인이 시를 바친 것으로 나타난다. 세조는 그 노인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했다. '노인에게 주육을 하사하였다. 문원(文原)이라는 노인이 있었는데, 나이 1백 4세이나 기력이 오히려 건장하므로 임금이 그 노인을 가상히 여기어 특별히 포와 술 및 의복 한 벌을 하사하였다.'-당시 세조의 어가를 호종, 경호군사를 총괄 지휘한 인물은 병조판서 윤자운(尹子雲)이었다. 그는 경호군사들의 군기와 관련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청주도착 이틀째 되는 날 갑자기 인원 점검을 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왕의 순행과 관련해 가장 풍기문란적인 내용이 적발됐다. '이어 종친에게 명하여 길을 나누어서 적발하게 하였더니, 의정부 사인 성윤문이 민가에 투숙하였고, 사대장 김처의가 군을 버리고 마을에 들어갔으며, 예조좌랑 이수남·이길보는 기녀를 데리고 민가에 투숙하였고, 또 충찬위 이세정은 술에 취하여 길가에 누워 있었다.'- 경호원들의 행동을 유형별로 요약하면 △민가 투숙 △기녀와 동침
경기도 고양시에 '가와지 볍씨 박물관'이 들러서면서 3개 지자체의 볍씨 전쟁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고양시는 구 농경문화전시관을 새롭게 확대·단장한 '고양 가와지 볍씨 박물관'을 오는 19일 오후 2시 현장에서 개관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개관은 이융조(전 충북대 교수)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이 지난 1990년대 가와지 지구에서 발굴한 볍씨를 토대로 건립되는 것이어서, 지역학계의 관심도 끌고 있다. 이와 관련 이 이사장은 미리 보낸 인삿말에서 "1991년 일산 신도시 개발에 따른 학술조사에서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학생들과 함께 선사시대 볍씨를 찾았다"며 "박태식 박사 등 식물학자의 분석 결과, 5천년전 재배 볍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가와지 볍씨는 한강문화권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문화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나아가 우리나라 벼종사가 청동기시대에 시작됐다는 종래 이론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고 밝혔다. 발굴 당시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관련 내용을 '5000년전 볍씨출토 한국' 제목의 7단 박스 크기로 보도, 자국의 벼농사 전파 경로와 연관시켜 커다란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앞서 이 이사장은 지난해 고양시에서 열린 관련 학술회
속보= 청원군의 청석굴 관광 명소화 사업이 논란(본보 3월 17일자 1면)을 빚고 있는 가운데 옥화대 수계는 시조의 한 장르인 '육가'(六歌)의 발생지이고 또 '낙우당구곡'(樂愚堂九曲)도 설정되는 등 인문학의 보고인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국어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문학사는 신라의 향가, 고려의 장가,조선의 시조 순으로 발전해 왔다. 이중 고려시대에 싹이 튼 시조는 조선시대 들어 작품이 2천여개에 달하는 질과 양적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시조 중에는 '육가'(六歌)라는 장르가 존재했다. 이는 평시조 6개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형태로,16~17세기에 발달했다. 바로 이 육가가 탄생한 곳이 미원 경주이씨가 4대에 걸쳐 거주했던 청원군 미원면 일대의 옥화구곡 수계이다.(그림 참조) 성균관대 임형택(한문교육과) 명예교수의 논문 '17세기 전후 육가형식의 발전과 시조문학'과 괴산 중원대 이상주 씨의 '이득윤과 서계육가ㆍ옥화육가의 창작시대' 논문에 따르면 16~17세기 옥화대 일대에는 이별(李鼈), 이정(李淨), 이득윤(李得胤), 이홍유(李弘有) 등 경주이씨 4대가 연이어 살았다. 그리고 이들 4대는 시대순으로 '장육당육가'(이별), '풍계육가'(이정),'서
[충북일보]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손님이 연이어 들어선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오늘 저녁을 위해 포장하는 손님,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달라는 손님, 내일 점심 포장을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포장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진열장에 보이는 빵 메뉴부터 6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라자냐, 샐러드, 잠봉뵈르 등 신중한 선택이 이어진다. 스피카 카페에서는 청주 흥덕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보인다. 통창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환하게 들어오는 채광이 따스한 공간을 연출한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곳에서는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온다. 스피카의 이선영 대표는 10년 넘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성인이 된 후 일본으로 떠날 용기를 줬다. 일본의 베이커리나 카페 등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며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게 됐다. 40살이 되면 뭔가 달라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여름철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17일 시에 따르면 올 여름 청주지역 무심천 범람에 대비해 시민들의 통행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한다. 이 자동차단시설은 갑작스러운 폭우나 장마기간 무심천의 수위가 위험수준에 달했을 때 시민들의 세월교 보행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시는 지난해 운천동 세월교 1곳에 양방향으로 이 시설을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시는 이달 내로 무심천 19곳 세월교 전체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단시설 1기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1천만원 수준으로, 모두 38개 시설에 3억8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직원들이 세월교를 일일이 방문해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부턴 원격으로 작동하는 이 시설을 무심천 전 구역에 설치해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이 시설은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투입 대비 사업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시는 재난 예보·경보시설도 개선한다. 시는 노후화된 예보·경보시설을 점검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총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