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오씨 시조인 오현필(吳賢弼)은 1175년(고려 명종 5)에 출생하여 1195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화순군사(和順郡事)를 지냈다. 1216년 두 형과 함께 거란군의 침입을 토벌한 공으로 '보성군'에 훈봉되었다. 이후 후손들은 '보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청원군 현도면의 보성오씨 입향조는 9세 오숙동(吳叔仝)이다. 그는 태종 말엽에 해안지역에 왜구가 빈번히 출몰하자 이를 피해 보성서 신탄진을 거쳐 오늘날의 현도면 양지리 월대촌으로 들어왔다. 당시 그는 양지리에 살고 있는 원계종(元繼宗)의 집에 의지하였고, 이후 그의 사위가 되어 청원에 정착하였다. 오숙동은 양지리에 정착한 후 장남 오인정(吳仁政), 차남 오인헌(吳仁憲), 삼남 오인후(吳仁厚) 등 4남1녀를 두었다. 이중 오인후는 소위장군 부사과를 지내고 증직으로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오른 인물로, 그의 후손들이 '삼기문중'(三岐門中)이다. 여기서 다시 통정공 장사랑파(將仕郞派·오상익)가 분기됐다.◇ 부강에 사는 대고모가 중매 1926년생인 강을기(康乙基) 할머니는 현도 보성오씨 통정공 장사랑파의 11대 종부(宗婦)로, 그의 나이 19살 때 충남 연기군 남면 고정리(높은댕이)에서 지금의 주소지인 현도면 중삼리
'바람도 쉬여 넘난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난 고개 /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래매 쉬여 넘난 고봉 장성령 고개 / 그너머 님이 왓다하면 나난 한 번도 쉬어 넘어가리라.' 청구영언에 실려 있는 사설시조의 하나로, 작자는 미상이다. 시조 중장에 등장하는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래매는 모두 매에 관한 표현들로, 보래매는 보라매의 옛이름이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은 그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매 종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해주목과 백령진에 매가 많이 나고 전국에서 제일이다. 매는 그 해에 나서 길들여진 것을 보라매하고 하고 야생으로 여러 해 된 것은 '산진이'라 한다. 집에 있으면서 여러 해 된 것은 '수진이'라 하며, 흰 것을 '송골'(松·), 청색인 것을 '해동청(海東靑)이라 한다.' 조선 숙종~영조 때 인물인 강재항(姜再恒, 1689~1756)도 양응자설(養鷹者說)이라는 매와 관련된 문헌을 남겼다. 먼저 이 글은 매사육 방법을 체험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매를 날리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날아서 바람을 맞으면 그 기운이 바야흐로 솟아나서 스스로 멈출 수가 없지. 한번 날면 자유자재로 날게 되고 세 번 날면 구속을
단양군 영춘면 하리 온달동굴은 4억5천년 전부터 생성되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동굴내 공간은 지금도 계속 퇴적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전체 길이 1천5백20m 중 4백50m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온달동굴은 조선시대에는 석굴(石窟)로 많이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런 내용이 보인다. '성산 아래에 석굴이 있는데 높이가 11척 남짓이고 넓이가 10여 척쯤 되며 깊숙히 들어가 끝이 없고 물이 철철 나와 깊이가 무릎에 닿는데 맑고 차갑기가 얼음과 같다. 고을 사람이 횃불 10자루를 가지고 들어갔다가 구멍은 오히려 끝나지 않았는데 횃불이 다되어 돌아왔다.' 이밖에 해동지도에는 '남굴'(南窟)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남굴은 남한강의 남쪽에 있는 굴이라는 뜻이다. 조선 정조 때의 인물인 '신광하'(申光河·1729~1796)는 온달동굴을 직접 체험한 후 '사군록'(四郡錄)이라는 기행문을 썼다. '사군'은 제천, 단양, 청풍, 영춘현 등을 일컫는다. 그는 영춘현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래 강에서부터 배를 끌고 강을 통하여 가시오. 짐을 짊어지고 비탈길을 지나서 굴입구에 이르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대개 굴속은 물이 깊어 길로
지화전자(磁化電子)가 시사주간지인 시사저널과 컨설팅그룹인 인싸이트그룹이 공동으로 수행한 올해(2014년)의 '굿 컴퍼니 지수'(Good Company Index·GCI)에서 50위에 올랐다. '굿 컴퍼니'는 경제·사회·윤리적 가치의 극대화를 통해 기업 내·외부 이해 관계자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을 의미하고 있다. 1~10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생활건강, 한화케미칼, LG전자, 현대자동차, 두산인프라코어, SK텔레콤, 기아자동차, LG디스플레이 등이 차지했다. 본사를 충북에 둔 기업 중 50위는 물론 100위권에 든 기업은 자화전자가 유일하다. 아시아나항공(51위), 신세계(52위), 삼성화재(56위), 삼성중공업(57위) 등이 51위 이후인 것을 감안하면 자화전자의 선전이 어느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자석은 자연상태에도 존재, 하찮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형(形)을 만들 수 있는 '플라스틱 자석'이 존재한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자화전자는 플라스틱 자석으로 전자부품에 들어가는 주요 소재를 석권하고 있다. 국내외 상당수의 스마트폰에는 자화전자의 플라스틱 전자부품이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성내 시설의 하나인 집수지(集水池)는 인위적으로 물을 모은다는 점에서 샘, 우물, 연못과는 구분되고 있다. 다만 지표수를 모으는가, 아니면 지하수를 집수하는가는 구분이 쉽지 않은 면이 있다. 지표수만을 모으려고 만들었지만 그 벽면이나 바닥에서 지하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축(石築)한 것만을 집수지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 역사에 있어 성내 집수지는 5세기 후반부터 등장한다.이후 6-7세기에 가장 많이 축조했고, 8세기 이후는 산성축조 기술의 변화로 급격히 감소했다. (재)울산문화재연구원 황대일 씨가 최근 '야외 고고학' 제 19호를 통해 '고대 산성내 석축집수지의 구조와 변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지금까지 발굴된 전국 25개 산성의 집수지를 대상으로 위치·형태·석축쌓는 유형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34기(85%)는 계곡, 4기(10%)는 구릉사면, 2기(5%)는 구릉 정상에 위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수지의 형태는 방형이 14기(35%), 장방형 12기(30%), 원형 역시 12기(30%), 타원형 2기(5%) 2기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석축을 쌓은 유형은 직선형 20기(53%), 계단형 6기(18%), 사선형 12기(29%) 등
현 청주 중앙공원 일대를 촬영한 것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발견됐다. 20일 청원군 69년사 간행위원회는 관련 사료를 수집·조사하던 중 '사진으로 보는 근대한국'에 수록된 사진 중 1장은 충주가 아닌 당시 청주 상생정(相生町·현 청주 중앙공원 일대)를 찍은 사진이라고 밝혔다. 출판사 서문당은 지난 1986년 '사진으로 보는 근대한국' 상·하권을 출간하면서 해당 사진을 일제 강점초기의 충주 일대를 촬영한 사진으로 분류, 상권 103쪽에 수록했다. 그러나 간행위가 사진에 등장하는 지형물·지표 건물·노거수목·원경 등을 종합 비교한 결과, 지금의 청주 중앙공원 일대를 촬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원회는 그 근거로 △일제 강점기 존재했던 자혜의원(왼쪽 건물)이 보이고 △그 옆에 노거수목인 압각수가 위치해 있으며 △멀리 우암산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는 점 등을 들었다. 위원회 관계자는 "자혜의원은 1911년 신축되고 인접 회랑(담장 모습)은 1920년대초에 헐린다"며 "현재의 청주문화관과 그 옆 주차공간이 당시 자혜의원 자리"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사진은 1910년대 후반~1920년대 초반 사이에 지금의 남문로 한복거리 쯤에서 남서→북동 방향으로 카메
청주 부모산(232m) 정상 부근에 '모유정'(母乳井)이라는 우물이 위치하고 있다. 하부 직경 1m 크기의 모유정은 이름 그대로 '어머니의 젖과 같은 우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물과 관련해 임진왜란과 몽골침입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1920년대 동아일보가 부모산 모유정 전설을 소개했다. '피란민들이 실컷 울다가 울음을 그치고 본즉 그 앞에 놓여 있는 돌틈에서 천만 뜻밖에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이 신기한 일을 본 백성들은 "이것은 필시 천지신령이 우리를 불쌍히 굽어 살피사 우리에게 생명수르 내리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 즉시 그곳을 넓게 파고서 제법 버젓한 샘을 꾸미여 놓고보니 생명천 가치를 가지게 되었드랍니다.(…) 그리하여 그후부터 이 산을 아양산(阿孃山)이라고도 하며 부모산(父母山)이라고도 불러왔다 합니다.'- 인용문 중의 피란민은 임진왜란 때의 난민을 의미한다. 그러나 임란 당시 청주 부모산에서 왜군과 전투가 있었다는 역사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전설은 임진왜란이 아닌, 몽골 침입을 역사적 배경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구한말 청주지역 유림의 한 명으로 박노중(朴魯重·사진)이라는 인물이 존재했다. 그의 본관은
청원군은 행정적으로 1946년 6월 1일 출범했다. 김상호(金相虎) 씨는 그보다 하루 늦은 1946년 6월 2일 청원군 오창면 복현리 162에서 아버지 김석영과 어머니 변정임 사이에서 2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말 그대로 '청원둥이'인 셈이다. 유년시절을 줄곧 오창에서 보낸 그는 1959년 청주 영동에 있는 '청주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오창초등에서 7명이 응시해 김씨 혼자만 합격했다. 현재도 보관돼 있는 당시 학생증을 보면 그는 '1학년 4반'이었고, 교장은 '김춘근'으로 기록돼 있다. 학생증(사진) 역시 그의 출생일을 '단기 4292년 6월 2일'로 기록했다. 당시 청원 오창면과 청주중이 위치한 청주 영동 구간에는 속칭 완행버스가 운행, 통학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완행버스를 놓칠 경우 오근장까지 걸어간 후 거기서 기차를 타고 오창의 집으로 와야 했다.◇청주고 2학년 수료, 학력의 전부 그는 1964년 명문 '청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와 달리 오창에서 청주 서부지역 변두리에 있는 청주고를 통학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오창집-장대리(면소재지)-청주합동정류장(구 고속터미널) 구간을 중학교 시절처럼 완행버스를
산 정상부 경사면에서 삼국시대 대형 집수지(集水池)가 발견되면서 청주 부모산(282m)이 새삼 지역민의 주목을 받고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한 고을의 지세를 진산(眞山)-물길-안산(案山)의 모습으로 파악한다. 진산 앞에 물길이 있기 때문에 '배산임수'라는 표현이 나왔다. 또 진산을 무릎꿇은 모습으로 마중하는 산이 '안산'이다. 따라서 안산은 진산과 마주 보는 방향에 위치하고, 또 위계가 낮기 때문에 진산보다는 낮다. 그래서 '책상 案'자를 쓰고 있다. 그러나 부모산이 청주의 안산인지는 다소 불확실하다. 진산인 우암산은 무심천에 가깝게 위치하는 편이나 마중하는 산인 부모산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혹자는 부모산보다 구KBS청주총국 뒷산을 청주의 안산으로 보기도 한다. 부모산(父母山)은 독특한 지명이 인상적이다. 전국의 산중 '父母'를 이름으로 갖고 있는 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산' 또는 '부모성'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1530년(중종 25) 이행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보완하기 위해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청주목 고적조에서 부모성(父母城)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사진 참조) '고을 서쪽 15리에 있는데 돌로 쌓
본보 14일자 2면 '청주 부모산 정상서 거대 집수지 발견' 기사 내용 중 충북대 박물관의 현장 시민공개 설명회는 16일이 아닌, 15일(목) 오후 2시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충북일보]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손님이 연이어 들어선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오늘 저녁을 위해 포장하는 손님,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달라는 손님, 내일 점심 포장을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포장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진열장에 보이는 빵 메뉴부터 6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라자냐, 샐러드, 잠봉뵈르 등 신중한 선택이 이어진다. 스피카 카페에서는 청주 흥덕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보인다. 통창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환하게 들어오는 채광이 따스한 공간을 연출한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곳에서는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온다. 스피카의 이선영 대표는 10년 넘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성인이 된 후 일본으로 떠날 용기를 줬다. 일본에서 베이커리나 카페 등 일하고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도 만족스러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며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게 됐다. 40살이 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청주시설관리공단을 도시공사로 전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16일 시에 따르면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청주시의회 정례회에 '청주도시공사 설립 및 운영 조례'를 상정할 예정이다. 시가 시의회에 상정한 조례안에는 기존 청주시설관리공단의 기능을 확장해 도시개발사업과 위수탁·대행사업을 수행하는 통합형 공사를 만드는 방안이 담겼다. 시가 공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앞으로 지역에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타 기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추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청주시는 개발사업을 주도할 주체가 없어 대부분의 개발사업을 LH나 충북개발공사, 민간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또 시설관리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청주시설관리공단으로는 각종 개발사업을 처리할 여건이 안된다는 것도 시가 새로운 컨트롤타워 조직 구성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청주시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의 중심지역이고 공항과 철도, 도로 모두 발달해 앞으로의 개발 수요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도시공사 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시의 주장이다. 시는 시설공단이 도시공사로 전환되면 도시개발에 따른 이익이 지역에 환원할 수 있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