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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08.25 19:10:0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할머니의 재봉 솜씨는 단연 수준급이었다. 쌀 서너 가마니를 내어 어렵게 장만했다는 미제 싱거(SINGER)미싱은 보릿고개를 넘는 우리 집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경기도 안성 동막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할머니는 학교 근처에 가본 일이 없어도 당신 스스로 한글과 한문을 깨우쳤다. 청주로 시집을 와 신혼초기에 다소 무리를 해서 재봉틀을 장만한 것이다.

농사일을 하면서도 할머니는 바느질과 재봉틀 품삯으로 아버지를 학교에 보내 신식 교육을 받게 했고 손자들이 보챌 때면 고쟁이 속에 감춰두었던 그 품삯으로 과자 등을 사주었다. 할머니는 양재학원을 다닌 적도 없었는데 할아버지의 두루마기나 삼베적삼을 척척 만들어냈고 더러는 손자들의 바지나 원피스도 만들어 입혔다. 나는 그때 할머니의 손이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낸다는 마이다스의 손처럼 느껴졌다.

우리 동네에는 재봉틀이 우리 집 밖에 없었다. 따라서 명절 무렵이면 동네 아낙들이 우리 집으로 집결하다시피 하였다. 할머니는 흔들거리는 호롱불아래서 밤을 새우며 동네 사람들의 설빔, 추석빔을 만들어주고 얼마간의 품삯을 받았다. 할머니의 눈썰미는 참으로 대단했다. 양재에 필요한 대나무 자나 분필 등을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대강 눈대중으로 재단을 했고 큼지막한 무쇠 가위로 옷감을 쓸어냈다. 그 거친 옷감이 재봉틀을 거치면 때깔고운 회장저고리나 옥색 치마로 탄생했다. 동네 아낙들은 할머니의 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그 싱거 미싱은 발로 밟는 것이 아니라 오른 손으로 핸들을 돌리고, 왼 손으로 박음질을 하는 앉은뱅이 재봉틀이었다. 두 발로 구르는 재봉틀이 나왔음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그 앉은뱅이 재봉틀을 고집했다. 그 재봉틀은 여러 가지 부속품을 갖추고 있다. 북실을 감는 기계며 재봉의 용도에 따라 박음질의 눈금을 달리하는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다. 명절 무렵이 오면 할머니의 일손은 더욱 바빠졌고 꼬맹이들은 긴 목을 빼며 색동저고리가 완성되길 기다렸다.

나는 할머니 몰래 통 큰 바지를 줄이거나 교복에 일부러 구멍을 내어 재봉틀로 박다가 기계를 망가트리는 통에 번번이 할머니의 꾸지람을 들었다. "사내놈이 큰일을 해야지 자잘하게 여자들 흉내를 내면 못 쓰는 법이여..." 그때에는 교복에 흠집을 내어 재봉틀로 박아 입는 이상한 패션이 유행하였다. 누나는 어디서 미군이 입다버린 사지 쓰봉을 구해 와서 재봉틀로 다시 옷을 만든 후 검정 물감을 들여 입었다. 무명옷이 대부분인 당시 미군의 사지 쓰봉 재활용은 일류 멋쟁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후 재봉틀을 보유한 가정이 점점 늘어갔다. 먹뱅이에 사는 당고모의 집에도 재봉틀을 들여놓았다. 재봉틀은 혼수 목록 제 1호였다. 당시의 혼수품은 가전제품이 아니라 장롱, 침구류와 더불어 재봉틀이 필수품이었다. 브라더 미싱이나 드레스 미싱이 주종을 이뤘고 혼기 찬 새악시들은 부모를 졸라 재봉틀을 혼수품으로 가져갔다. 라사라 양재학원, 노라노 양재학원 등 유명 양재학원이 성업을 이뤘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재봉틀 고쳐요..."하는 수리공의 목소리가 골목으로 메아리쳤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며 여인네의 영원한 벗인 재봉틀이 가정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기성품의 시장이 넓어지고 동네마다 세탁소나 수선집이 들어서고 나서는 여인들이 재봉틀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아침 출근길에 떨어진 양복 단추를 달려 해도 집 사람은 번개같이 세탁소로 달려간다. 재봉틀이 차지하던 방 윗목에 재봉틀은 어디가고 그 대신 번들거리는 속칭 호마이카 장식장이나 원목가구가 그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

청주문화의 집에서는 이 점을 안타깝게 여겨 '홈패션 교실'을 열었다. 재봉틀을 가까이 하면 가정경제에 적잖게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연출하는 효과가 있다. 살림도 보태고 남과 다른 유행을 창조할 수 있는 1석2조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강사를 하는 심상분 씨는 동호인 모임인 청강아카데미 회원들과 함께 홈패션의 길잡이인 '우리 집 홈패션 D·I·Y'를 펴냈는데 출간 1주일 만에 인터넷 서점 '인터 파크'의 취미,레저 분야에서 단박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청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고 문학 분야와 합치면 도종환의 시집 '접시 꽃 당신'이후 두 번째 있는 일이다. 여인의 곁을 떠난 재봉틀이 다시 여인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바느질과 재봉은 여인들의 건전한 취미생활일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작은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수 십 년 간 방치해 둔 할머니의 재봉틀이 고향의 물레방아처럼 사각사각 다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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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