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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현

국립괴산호국원 현충선양담당

의병은 외침(外侵)을 받아 관군의 응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위급할 때 국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자위군으로,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 없이 자원해 종군하는 민군(民軍)이다.

의병은 이름 그대로 '의(義)를 위해 창의한 군대'다.

이때 의(義)는 인륜의 근본으로 충의(忠義)라 표현되며,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유교사상에서 출발한다.

조선시대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은 주로 전직 관료나 사대부로, 유교이념을 깊이 체득한 인물이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의병은 시기에 따라 다른 의를 위해 일어났으며, 이는 근왕에서 독립까지 이른다.

왕국에서 근왕(勤王·임금에게 충성을 다함)하는 의병의 창의는 전통시대 의병의 성격을 보여주며, 국민국가의 인식이 확대되면서 독립을 목표로 한 의병전쟁의 성격으로 변화했다.

일본은 1907년 헤이그밀사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통감부에 의해 정미7조약이 체결, 통치권을 장악했다.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함으로써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에 반대하는 군사 기반을 제거하고자 했다.

이에 군대 해산을 전후해 대규모 의병이 창의했다.

의병전쟁은 대한제국 군대와 연결됐다.

1907년 8월 1일 군대가 해산되자 시위대 제1연대 제1대 대장인 박승환 참령은 권총 자결함으로써 대한제국 군대의 대일본 전투를 불러왔다.

박 참령은 유서에서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며 대한제국 군인의 자세를 보여줬다.

대한제국 군대는 일본군과 시가전을 전개했으며 원주진위대, 강화분견대 등 각지에서 일본군과 전투했다.

의병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경상도의 이강년·신돌석, 경기도의 허위, 전라도의 기삼연·전해산, 충청도의 김동신, 황해도의 박정빈, 평안도의 김여석·채응언, 함경도의 홍범도·차도선·최재형·안중근 등이 있다.

이후 독립군으로 이어져 국군의 독립전쟁사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고종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신분을 초월한 전 한국민이 참여해 창의했다.

해산된 군인이 합류해 무기와 편제가 개선됐으며, 전국 규모의 13도창의군을 구성할 정도로 거국적인 의병전쟁을 수행했다.

점차 지형지세를 활용한 유격전술을 구사하며, 이후 활동근거지를 만주와 연해주로 옮겨 독립전쟁을 수행했다.

국가위기상황에 민군으로 구국활동을 전개했던 의병의 의병전쟁은 근왕의 전쟁에서 독립전쟁으로 발전했으며, 1910년 이후 일본을 상대로 한 독립군으로 이어져 독립전쟁의 역사에 첫 단추를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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