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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수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사업계획부장

나의 어릴 적은 누구나 그러했듯이 먹을 것이 귀했고, 밥그릇을 채우는 건 쌀보다는 고구마, 감자, 보리가 더 많았다. 아버지는 농부였지만 열 명이 넘는 식구에 비해 수확하는 쌀은 늘 부족했다. 봄과 가을에는 누에도 쳤다. 밭에서 부족한 뽕을 따러 큰 산을 누비시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학교를 다녀와서도 형제 중 누구라 할 것 없이 농사 일을 도와야 했고, 그게 힘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을 정도였다. 천수답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논 한 귀퉁이에 만든 연못의 물을 아버지와 양쪽에 끈이 달린 두레박으로 몇 시간이고 퍼냈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이라면 양수기로 힘 안들이고 가능했을 일을 몇 시간이고 두레질을 한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모를 내기 위해서는 한 방울의 물도 너무나 소중했던 시절이었고 논은 집안의 생명줄과 같았다. 그 논이 내 대학입학 때 대학입학금, 자취방 마련을 위해 팔아버렸기에 마음 속 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저수지 아래에 있는 들녘도 물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농부는 우선 자기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몇 날이고 수로를 지키고 있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주변 농부들과 물싸움을 하는 것도 다반사였던 것 같다.

어느덧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도 경제가 발전하여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해지고 삶의 질도 많이 향상됐다. 농사를 짓는 논도 기계화 영농에 맞게 경지정리를 하여 반듯해졌다. 저수지, 양수장, 취입보에서 보내진 물을 물꼬만 열면 언제든지 채울 수 있다. 논 면적은 줄었어도 쌀은 언제나 넘쳐난다.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으로 예전처럼 많은 노동력 투입 없이도 경작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과거에는 쌀 생산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넓은 들녘에도 하우스, 과수원이 들어서고 연중 농사를 짓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상추, 딸기, 토마토, 오이, 호박 어느 것도 제철이 언제인지를 모를 정도로 사시사철 수확한다.

이렇듯 농업과 농촌의 테두리에서만 보면 생산성이 많이 증가하고, 편리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눈을 돌려 AI, 빅데이터, 자율주행, 드론,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관점에서 보면 농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쳐져 있다. 미래농업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가뭄, 홍수, 기온 상승이라는 기후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기온 상승으로 재배 적지가 변화하고 있고,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는 점차 노지에서의 농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강원도 고랭지 채소도 기온 상승으로 인해 재배가 불가능해 질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의 농업농촌은 고령화와 저출산, 산업생태계 변화, 기후위기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시설이 구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유리온실, 시설하우스를 중심으로 스마트 농업이 도입되고는 있지만 전체 경지면적에 비해서는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농업에 있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홍수는 안전하게 배제하고, 어떤 작물이든 재배가 가능한 대규모 범용화 농지기반을 만드는 것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과거와 현재까지 물의 소중한 가치는 변화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다만 미래의 스마트 농업을 위해서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자동으로 비료와 용수공급, 온도 등이 제어되는 형태가 더욱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에서도 물로 인한 재해예방 등을 통한 물순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2018년 6월 '물관리기본법'을 제정하여 2019년부터 시행하고 있어 농업용수 분야도 이에 대한 준비가 진행 중에 있다.

전국 82만ha의 논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물공급과 배수기능을 갖춰야하고, 지금처럼 많은 물이 필요로 하는 도랑 형태의 수로, 농부가 논에 가 직접하는 물꼬 관리와 농약방제, 수확 등의 기존 방식은 벗어나야 한다. 논은 벼만 재배하는 곳이 아니라 채소, 과일도 재배할 수 있는 전천후 범용화 조건을 구비해야 한다. 대형 무인농기계가 작업할 수 있도록 대규모 경작지, 넓은 경작로 조성이 필요하다. 저수지나 양수장에서 공급되는 물은 모래 여과장치로 깨끗하게 거르고, 먹는 수돗물처럼 관로를 통해 논배미 마다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만큼의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춰야 한다. 농부는 스마트폰으로 재배관리를 하고, 트랙터와 이앙기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논을 갈고 이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구가 감소하고, 가뭄이 닥쳐도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산된 고품질 농산물은 물류센터를 통해 도시와 해외로 팔려나가고, 농부는 도시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려 윤택한 삶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2021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 에 등극해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산업생태계 변화, 기후위기는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반도체, 가전, 조선업이 세계 1등인 것처럼 위기를 극복하여 가까운 미래에는 '농업강국'으로도 거듭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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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