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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당 박세화선생 절명시 원본 111년 만에 공개

애처로운 현실을 표현한 진정한 유교지식인의 면모 드러나

  • 웹출고시간2021.05.30 14:08:03
  • 최종수정2021.05.30 14:08:03

의당 박세화 선생

[충북일보] 의당 박세화 선생(朴世和, 1834~1910년)의 절명시 원본이 111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병산영당 학술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양승운 의병연구가는 6월 1일 의병의 날을 맞아 한지에 먹으로 쓴 85×30㎝ 크기의 절명시 원본을 공개했다.

이 절명시(絶命詩)는 박세화 선생이 단식한지 3일째 되는 날 생애 마지막으로 쓴 글씨이다.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 1834~1910년) 선생은 월악산 용하동에서 용하영당(후칭 병산영당)을 창건하고 제천에서 수 없이 많은 문인들을 지도했으며 1905년 춘추대의 정신으로 월악산 용하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로 인해 제자들과 함께 8개월간 조선헌병사령부에 연행돼 구금되기도 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글 읽은 선비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23일간의 절식(絶食) 끝에 순국(殉國)하신 선비정신의 표상이자 한말의 대유학자다.

11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의당 박세화 선생의 절명시 원본.

ⓒ 양승운 의병연구가
또한 단식 중지를 종용코자 찾아 온 일제헌병의 말장화를 곰방대로 내리치며 당장 물러가라고 호통 친 일화는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이 절명시를 공개한 양승운 의병연구가는 병산영당 학술위원장으로 의당 박세화와 문인 학술대회를 8회 연속으로 개최했으며 의당학파를 알리는데 적극 활동하고 있다.

그는 평소 알던 고미술 관계자로부터 절명시 원본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입수하게 됐으며 6월1일 의병의 날을 맞아 공개을 결정했다

양승운 의병연구가는 "의당학파의 본산인 제천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면 상설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절명시를 본 원광대 정경훈 교수는 "한말 망국의 현실에서 많은 유교지식인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현실을 애탄(哀歎)했지만 순도(殉道)로 자신의 신념을 표출한 분들은 극히 적었다"며 "의당 선생은 순정한 성리학자였고 순도를 자신의 마지막 임무로 여겼으며 순도의 순간을 두 편의 절명시로 표현했다. 의당선생의 절명시는 매천 황현(1855~1910)의 절명시보다 더욱 애처로운 현실을 표현한 진정한 유교지식인의 한 면모를 드러낸다"고 평했다.

정경훈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절명시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장엄한 선택으로 육신의 사라짐으로 인해 선생의 글씨와 시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시간이 흐르며 더욱 향기를 낸다.

이 유묵은 의당 선생의 몸에서 완전히 녹아서 흘러나온 육필이다. 죽음을 앞둔 선비가 모든 것을 비우고 써내려 간 글씨야 말로 박세화선생의 사상과 철학을 다시금 알 수 있는 즉, 불교로 말해 사리(舍利)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의당 선생의 유묵은 죽음으로 완성된 글씨이기에 더욱 애절하고 아름다우며 그의 순국이 시(詩) 절명시를 빛나게 하고 또 글씨가 다시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한다."

제천 / 이형수기자

절명시(絶命詩)

白頭山色映蒼空 백두산색이 푸른 하늘에 비치니

華夏一區箕子東 중화의 한 구역 기자의 동쪽이구나

齊月光風何處在 밝은 달 맑은 바람 그 어디에 있는가

沒人氛祲太濛濛 사람을 죽이는 나쁜 기운이 너무 심하구나.

道亡吾奈何 도가 망했는데 내 어찌해야 하는가

仰天一慟哭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한바탕 크게 통곡하노라

自靖獻聖賢 자정하여 성현께 내 몸을 바치니

嗚呼君莫惑 오호라! 그대들은 미혹되지 말지어다.

경술 8월 8일 의당노인 절필/역해:정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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