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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비버'

타인은 또 다른'나'

  • 웹출고시간2012.07.15 17:56:5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하늘색 토끼였다. 토끼 귀가 나달나달해지도록 아이는 어디나 그 토끼베개를 끌어안고 다녔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자야할 일이 있을 때면 다른 무엇보다도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지금은 그 토끼 인형이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기억에도 없지만 큰아이가 대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 봉제 토끼는 우리 집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얼마 전 친척 중 누군가 내 친가에 와서 자고 갈 일이 있었는데 조그만 담요를 들고 왔다. 그 집 아이 것인 줄 알았더니 놀랍게도 아이의 아버지 것이었다. 그 작은 담요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단다. 특별히 덮는 용도라기보다는 일종의 수면 도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사십대 후반에 접어든 어른의 습관으로서는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니 어른들의 아이 같은 행동을 마냥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삶은 복화술 같은 것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월터(멜 깁슨 분)는 장난감 회사인 제리 주식회사의 CEO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몇 년 전부터 대낮에도 잠에 취해 지내고 깨어있을 때는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실력이나 기술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들이기 때문에 회사를 물려받았다. 능력으로 치자면 저기 있는 부사장이 더 뛰어나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의 원인은 월터가 직원들 앞에서 위와 같은 고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결국 월터는 집을 나와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비버 인형을 발견한다. 팔에 끼워 가지고 노는 비버 인형에 자기 모습을 투사해서 복화술을 시도하며 월터는 점차 즐거운 기분을 가지게 된다. 그의 내적 자아가 비버 인형 뒤로 숨어버림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 것이다. 비버 덕분으로 월터는 다시 가족을 만나고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인 막내아들 헨리와는 비버를 통해 서로의 순수함을 교감하게 된다. 헨리와 목공일을 함께 하면서 장난감 제작에 대한 특별한 영감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큰아들 포터는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한다.

"우리 셋이 같이 갈래?"

막내 헨리가 한밤중 창고에서 무언가를 만드느라 시끄럽게 하자 방에서 나온 큰아들을 보고 월터는 말한다. '셋'이라는 표현에 포터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도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 털북숭이와 같이 가라는 말과 함께. 포터는 아버지의 분열된 자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그 이전부터 아버지의 모든 버릇들을 혐오해 왔다. 자신의 모습 속에 겹쳐지는 아버지의 흔적들을 지우려고 일일이 포스트잇에 적어놓고 지워가고 있었다. 포터 역시 자신의 참모습으로 살기보다는 학교 친구들의 리포트나 에세이를 대필해 주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 역시 한쪽 팔에 비버 인형을 끼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포터는 졸업 연설문 작성을 부탁하는 노라와 친해지는데 둘 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라에게는 마약중독으로 죽은 오빠가, 포터에게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타인은 또 다른 '나'의 자가 증식

부인 매러디스와 막내 헨리는 우선 활기를 되찾은 아버지가 좋기만 하다. 포터를 빼놓고는 일견 가정은 화목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비버를 손에 낀 채 샤워를 하고, 심지어 부부간 잠자리에서도 비버를 손에 놓지 않아 옆자리에서 함께 숨을 몰아쉬는 비버 인형을 보며 부인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결혼 20주년 외출을 하기 전 부인은 제발 식사자리에서 월터로만 마주 앉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인은 준비했던 '추억의 선물상자'를 꺼내 놓는다. 신혼시절, 아이들의 갓난아기 모습 등 가족의 지난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과 물건들을 보는 순간, 월터는 폭발하고 만다. '나는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는 비명과 함께. 그 추억의 상자에서 월터는 행복을 연상하기보다 기억하기 싫은 어떤 열패감을 본 것인지 모른다. 그는 다시 비버를 꺼내들고 아내를 남겨 둔 채 식당을 나와 버린다.

결국 가족들이 모두 떠난 빈집에서 비버랑 대화를 나누던 월터는 점차 자신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비버를 없애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극한의 비극적 결단이었다. 월터는 비버를 팔에 끼운 채 전기 톱날을 작동시킨다. 자신이 썼던 가면을 벗어던지기 위해 그는 결국 팔 하나를 희생해야 했다.

극한의 삶 속에서 반짝이는 'EXIT'

인간이 불안하고 때로 우울한 것은 극히 정상이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이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는 것이 100% 예정되어 있는 인간이 불안하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죽을 때까지 미래를 향해 고독하게 자기 자신을 창조해 나가야 하는 존재이자, 다른 인간들과의 끝없는 갈등과 투쟁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노라는 졸업식 연설문에서 포터가 대필해준 '우리들은 모두 속아왔다. 다 잘될 것이라는 말에'라고 읽으며 이 우울한 연설문은 누군가 대필해 주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또한 누군가가 항상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결국 인간에 의한 구원을 말한다. 학교 강당에서 노라의 연설을 듣고 있는 포터의 뒤로 "EXIT"의 선명한 빨간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막다른 끝자락이라고 생각될 때도 비상구는 있는 법. 학교를 빠져나온 포터는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아버지의 병원으로 찾아가 따뜻하게 아버지를 안아 준다. 실제 우울증을 앓았던 멜 깁슨의 깊은 내면적 연기와 할리우드의 지성파 배우 조디 포스터의 절제된 연기 앙상블이 더욱 빛나는 영화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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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