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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5.29 20:50:4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1589년 정여립(鄭汝立·1546 ~ 1589)이 모반을 꾀했다는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율곡 이이의 문하생이었던 정여립은 표변했다. 율곡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인을 비판했다. 이후 전북으로 귀향, 대동계를 조직하여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그해 황해도 관찰사, 안악 군수 등이 정여립이 대동계 사병을 이끌고 반란을 시도, 선조 임금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려 한다고 고변했다. 체포령이 내려지자 정여립은 진안 죽도(竹島)의 토굴에서 자결했다. 혐의자에 대한 국문에 2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때 형관을 맡은 사람은 정철이었다.

기축옥사로 동인 1천여명이 희생됐고, 한때 전라도는 반역지향(叛逆之鄕)이라 하여 인재 등용이 제한됐다. 기축옥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여립의 반란으로 규정됐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서인의 책사였던 송익필이 조작했다는 설, 서인의 집단 조작설, 정여립의 혁명적인 주장이 옥사를 초래했다는 설 등 여러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

기축옥사 때 자살한 정여립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스레 염(殮)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한백겸(韓百謙·1552~1615)이다. 또한 그는 정여립의 생질인 이진길(李震吉)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기도 했다. 한백겸도 체포됐다.

'황해감사 장운익의 서장에, "역적 괴수 변희복과 동당 변종금이 그 때(정여립 모반사건 지칭) 도망하여 잡지 못했었는데, 이 달 8일 안악고을 북면에 와서 거접(居接)하는 것을 그 면의 약정 이응춘이 신고하자, 이에 의거하여 현감 한백겸도 잡아 가두었습니다" 하였는데, 의금부에 계하(啓下)하였다.'-<선조실록>

한백겸은 장형(杖刑)을 받고 귀양가야 했다. 이후 임진왜란 때의 대사면령으로 석방돼 다시 관직이 복귀할 수 있었다. 한백겸은 청주가 본관이나 출생지는 한양이다. 그러나 그는 청주목민을 무척 사랑했다.

"신이 주군을 안행하면서 수령들이 현부(賢否) 및 불법에 대한 일을 탐문하였습니다. 청주목사 한백겸은 자상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강명하게 다스려, 속리의 부화스런 작태를 물리쳐버리고 힘써 돈실한 정사를 행하고 있습니다."-<선조실록>

당시 충청도어사 성진선(成晉善)이 보고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선조 38년(1605) 청주목사겸 청주진병마절제사로 부임한 후 시조인 한란의 유적을 찾아내 이를 고증했다.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동생 준겸(당시 이조참판)은 청주한씨 후손들에게 가문의 내력을 알려줄 목적으로 비를 건립했다. 청주한씨 시조 제단비(도유형문화재 제 169호)로, 청주시 운동동 다릿골마을 뒷산 끝자락의 밭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문은 제사를 마련하기 위한 토지인 위토(位土)와 제단을 쌓고 담을 둘러 경계를 표시한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한백겸은 말년에 경기도 양주 수이촌으로 이주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동국지리지를 저술했다. 동국지리지는 역사지리학의 창시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역사지리 연구에 많은 자극을 주었다. 신경준의 강계고, 안정복의 동사강목, 정약용의 강역고 등이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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