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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안네의 일기' 세계기록유산 됐다

유네스코,'5·18 기록물' '일성록' 등 45가지 등재 승인

  • 웹출고시간2011.05.26 18:30:1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된 여고생의 일기와 관련 기록 등이 세계기록유산에 올라 영구 보존된다.

유네스코(UNESCO·whc.unesco.org)는 25일(현지 시간) 웹사이트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5·18 기록물''일성록(日省綠)' 등 세계 문서 및 기록물 45가지에 대해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은 다양한 기록물의 보호와 공유를 통해 인류 문화와 사회의 다양성,창조적 풍부함을 향유하고 학문적 토대를 강화시킨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이에 앞서지난 23일(현지 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회의를 열고 5·18 기록물과 일성록 등에 대해 심의,등재를 권고했다.

◇5·18기록물=등재가 확정된 기록물은 △9개 분야 편철(編綴) 85만8천904 쪽 △필름 2천17컷 △사진 1천733점 분량이다. 주요 내용은 정부 기관과 시민이 작성한 자료,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 서류,국회 청문회 기록, 피해자 보상 자료,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 등이다. 여기에는 특히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쓴 일기장이 포함돼 주목을 끈다.

'한국판 안네의 일기' 라 불리는,주소연(49)씨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쓴 일기장.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제공
일기의 주인공은 당시 광주여자고등학교 3학년생 신분으로 전남도청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주소연(49·서울 중부교육지원청 장학사)씨다. 주 씨는 당시 전남도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목격하고 언론보도를 보며 느낀 생각들을 신문자료 스크랩과 함께 대학노트에 기록해 뒀다 지난 3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기증했다. 주씨는 "누군가가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가 왜곡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일기를 썼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기의 주요 내용이다.

"1980년 5월 22일 목요일, 우리는 민주화를 하자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 민주인사들을 구속시키다니 이 원통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소위 민주주의란 나라가 민주인사를 죽이다니, 이 같은 일이 세계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갖은 만행을 벌여 사망자는 밝혀진 사람만 해도 200명을 능가하고 실종자는 거의 한 동에 몇 사람 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매스컴은 일절 이러한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완전한 정부 편에 서서 우리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있었다."

"5월 23일, 공수부대에서는 처음에는 몽둥이로, 다음은 대검으로, 다음에는 총으로 우리 시민을 무차별 살해했으며, 또한 도망간 사람까지 모두 잡아 그 즉시 살해했고 구경만 하던 어린이, 할머니까지 무차별 살해해서 우리 시민들은 좋지 못한 일인 줄 알면서도 공수부대에 맞서기 위해 무기고를 털어 총으로 대전해 물리쳤다."

"5월 24일 우리 광주에서 계속 민주시위를 하는 동안 우리나라 매스컴에서는 한 번도 진실 보도를 하지 않았다"면서 "5월25일 공수부대가 투입되지 않았으면 우리 광주사태는 있지도 않았을 것이며 평화적인 군중시위, 즉 민주화 운동으로 끝났을 것이다."

"5월 28일, 27일 상황실에서는 총기를 회수하고 이것으로서 사태를 수습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부지사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오빠들이 와서 깨웠다. 지금 계엄군이 공단 입구에 오고 있으니 사태를 알아서 깨어 있으라는 것이었다.그 때가 2시쯤 이었을까? 약 30분 후에 계엄군이 광고 앞, 돌고개를 넘어섰고 지원동 쪽에서도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살고 싶은 사람은 피하라 하여 우리는 도청 밖으로 나와 피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일성록

ⓒ 문화재청 제공
◇일성록(日省綠)=조선 영조 36년(1760) 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조정과 내외의 신하에 관련된 일기다. 1973년 12월 31일 국보 제153호로 지정됐다. 임금의 입장에서 펴낸 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이다. 현재 2천329책이 모두 전해지고 있으나, 21개월 분이 빠져 있다.

이 문헌은 당시 펴낸 의도대로 임금이 국정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임금이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모든 기록을 다시 분류해 편집한 것이라 임금의 의도대로 취사선택이 있었고,임금의 뜻에 거슬리는 내용은 제외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충할 수 있는 귀한 자료로,실록과는 달리 당시의 더욱 자세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어 조선 후기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다. 일성록은 18~20세기 동·서양의 정치·문화적 교류의 구체적 실상과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안네 프랑크

ⓒ 안네프랑크재단 제공
◇안네의 일기(The Diary of a Young Girl Anne Frank)=독일 출신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1929∼45)가 쓴 일기다. 1940년 독일군 점령하의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있던 프랑크 일가는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아버지 오토의 사무실 뒤에 있는 은신처로 옮겼다. 일기는 안네가 양친과 언니,그리고 다른 4인 가족의 유대인과 은신처에서 함께 사는 동안(1942년 6월∼1944년 8월)에 씌었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의 성장 과정, 어른들 세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 곤경에 처해서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견지해 나간 용기를 꾸밈없는, 그러나 소녀에게서는 드물게 볼 수 있는 격조 높은 문장이다.

안네는 나치스에 의해 독일의 어느 유대인 수용소에서 언니와 함께 장티푸스에 걸려 짧은 일생을 마쳤다. 그러나 일기는 그가 사망한 뒤 한 네덜란드인에게 발견돼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 손에 들어가게 됐다. 1947년 네덜란드어로 출판된 이후 각국어로 번역돼 세계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극이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안네 프랑크 생가는 세계적 관광명소가 돼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penismight@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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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