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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2.15 20:47: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우리나라 안경은 임진왜란 때 유입됐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몇해전 조선시대 김성일이 사용하던 실물 안경이 그의 후손들에 의해 공개됐다. 김성일은 황윤길과 함께 임진왜란 직전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방문했던 인물이다.

이듬해 귀국한 두 사람은 상반된 보고서를 내놨다. 정사 황윤길은 "왜가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고, 반면 김성길(金誠一)은 "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는 짧은 기간이나마 동인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두 사람의 보고 내용중 동인인 김성일 것이 채택됐고, 결과는 불문가지였다.

김성일은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에 사망했다. 그렇다면 그는 임진왜란 이전에도 안경을 썼을 확률이 높다. 이와 관련 국내 안경광학과 한 교수는 "일본이 아닌 중국을 거쳐 유입된 것 같다"는 견해를 내놓은 바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안경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정조실록에서 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정조는 그러나 안경쓰는 것 자체에 대해 부담스러운 마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차대(次對)가 있었다. 상이 이르기를, "나의 시력이 점점 이전보다 못해져서 경전의 문자는 안경이 아니면 알아보기가 어렵지만 안경은 2백 년 이후 처음 있는 물건이므로 이것을 쓰고 조정에서 국사를 처결한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라고 말했다'-<정조실록>

인용문중 '차대'는 삼정승 등 고위 관료들이 매달 여섯 차례 임금 앞에 나아가 정무를 보고하던 것을 일컫는다. 안경 역사와 관련, 민간 기록에는 실록보다 이른 시기의 내용이 등장한다.

황주석(黃株錫)이라는 인물은 그의 저서 신제전서(臣齊全書)에 수록된 '동경수정안경명'(東京水晶眼鏡銘) 항목에서 '경주부윤 민기가 1630년경에 경주에서 만들어진 남석안경(南石眼鏡)을 착용했다'고 썼다.

이때의 '동경'은 지금의 경주를 일컫는다. 대한안경인협회의 '한국안경사대관'에 따르면 남석안경은 조선시대 유일한 안경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식 안경을 대량으로 팔면서 수요가 감소했다.

이후 현재는 경주 남산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서 지정되면서 수정 채굴이 전면 금지돼 그 명맥이 거의 끊어졌다.

이상의 대로라면 문헌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안경을 처음 착용한 인물은 민기(閔機·1568~1641)가 된다. 전회에 언급한 민기(閔箕·1504∼1568)와 이름은 같으나 한자가 다르다. 그는 제주 부윤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는지 사관이 칭찬을 한다.

'이광정을 형조 판서로, 박동선을 의정부 우참찬으로, 민기(閔機)를 병조 참지로 삼았다. 민기는 사람됨이 청백하고 잘 다스린다는 명성이 있었다.'-<인조실록>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로 안경을 착용한 사람일 수도 있는 민기는 우리고장 제천 인물이다. 그는 백운면에서 나고 그곳에 묻혔다. 백운면 도곡1리 우경마을 뒤에 그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그의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이 문장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부근에는 신라 경순왕의 이궁(離宮) 터가 존재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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