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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2.10 22:47:5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조선시대 양반가 남자들은 자신의 혈육임에도 불구하고 서자와 얼자, 즉 서얼(庶孼)을 심하게 차별했다. 서자는 양인(良人) 첩의 자손을, 얼자는 천인(賤人) 첩의 자손을 일컫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가 뿌린 '씨앗'이라고 해도 양반의 숫자가 많아지면, 양반 전체의 기득권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서얼 차별의 근원에는 조선 양반들의 집단적 이기심이 깔려 있었다.

모든 양반들이 서얼 차별제도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의식있는 일부 관료는 능력있는 인물은 서얼을 따지지 말고 과감히 발탁할 것을 주장했다. 조선 중종 때 두 명의 관료가 같은 주제를 놓고 서로 다른 내용을 상소한다.

'김정국이 아뢰기를, "서얼에 대해서는 나라에 정해진 법이 있으니 고쳐서는 안 됩니다. 전에는 서경(署經)할 적에 그 선조(先祖)가 미천하면 서경하지 않기도 하였습니다"'-<중종실록>

'구수복이 아뢰기를, "서얼은 법이 이미 그러하지만, 어진이가 있다 하더라도 과거에 구애되어 포부를 펴지 못하니, 이것도 사람을 쓰는 길에 방해가 됩니다"'-<〃>

인용문 중 서경은 인사 등이 있을 경우 왕의 재가 있은 후 대간도 함께 서명을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종의 왕권견제 행위로 볼 수 있다. 1519년 중종이 남곤(南袞) 등 훈구파의 주장을 등에 업고 조광조 등 신진사류(新進士類)를 대거 숙청하는 기묘사화를 일으켰다.

당시 이조 좌랑으로 있던 인물이 두번째 인용문에 등장하는 구수복(具壽福·1491∼1545)이다. 이조 좌랑은 정6품으로 직급은 낮지만 인사행정의 실무 기안자였다. 따라서 이조전랑과 함께 권한이 무척 컸고, 이것은 후에 사림이 동서인으로 분당되는 원인이 됐다.

훈구파가 사화를 일으키면서 한 여러 일 중에는 사관(史官)을 갈아치우는 작업도 포함돼 있었다. 구수복이 이를 참지 못하고 사화의 긴박한 와중에도 강한 항의를 한다.

'구수복이 그때 낭관으로 패(牌)를 받고 궐내에 들어와 항쟁하여 말하기를, "만일 사관을 다 파직시키면 오늘 기주(記注)는 누가 하느냐" 하며 전교에 서명하지 않으니…'-<연려실기술>

'기주'는 사관이 당일의 일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 출신인 구수복은 이 일로 인해 파직됐다. 그러나 파직 후 그가 찾은 곳은 서울이 아닌, 우리고장 보은이었다. 사료에 그 이유를 알게 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공이 단장과 짚신으로 명산승지를 두루 돌아 다니며 마음껏 탐승했는데, 특히 속리산의 경치를 가장 좋아하여 숲과 샘 사이에서 읊조리며 즐겨 돌아갈 줄을 몰랐다.'-<연려실기술>

구수복에게는 자유인적인 기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목은 다소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아무리 양반이라 해도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는 궁금하다. 다음회에 소개할, 김태암(金兌岩)이라는 인물이 도움을 줬다.

구수복의 묘는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에 있다. 이후 보은지역 여러 곳에 그의 본관인 능성(綾城) 구씨들이 많이 세거하게 된다. 구천서 전 국회의원이 대표적인 인물의 한 명이다. 능성은 전남 화순군 능주면의 옛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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