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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 논설위원의 겨울바다 예술기행 - 통영

쪽빛바다 물결 따라 예혼 춤추는 예술의 고장

  • 웹출고시간2011.02.06 16:49:5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편집자 주

본보 임병무 논설위원이 지난 주말 청주문화원 문화가족의 겨울바다 예술기행을 동행 취재했다. 예술의 도시로 알려진 경남 통영의 이모저모와 겨울바다 이야기를 들어본다.

통영 앞바다에서 청주문화원 회원이 새해 희망의 소지를 올리고 있다.

겨울바다 예술기행· 아니, 바다와 예술이 무슨 상관이 있어· 일반적으로 '바다'라는 단어와 '예술'이라는 단어를 짝짓기 시키기란 상당히 생뚱맞지만 그런 통념이 무참히 깨지며 두 단어가 기가 막히게 궁합을 맞추는 곳이 남쪽바다 경남 통영(統營)이다. 쪽빛바다 물결이 너울너울 춤추는 그곳엔 청마(靑馬) 유치환, 꽃의 시인 김춘수, 시조시인 김상옥,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문학 혼이 물결 따라 춤추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의 음악이 뱃고동 따라 울며 비구상 미술의 선구자 전혁림의 예술혼이 캔버스에 또 다른 남쪽바다를 강렬하게 새겨 넣는다. 여기에는 윤이상의 거리도 있고 유치환의 거리도 있다. 가는 곳 마다 예술혼이 발길에 채일 정도다.

역사적으로 보면 문(文)가 무(武)가 쌍끌이 어선으로 박자를 맞추며 통영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으니 문은 앞에서 열거한 위대한 예술혼이요, 무(武)는 거북선 앞세우며 학익진(鶴翼陣)으로 왜적의 판옥선을 물리친 한산대첩의 주인공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이다. 한마디로 통영은 조선시대 해군본부가 있던 곳이다. 통영(統營)이란 지명은 바로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에서 비롯된 것이며 세병관(洗兵館)은 그 관아의 흔적을 말해주는 건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도(三道)는 충청, 전라, 경상도를 한꺼번에 일컬음이다.

태평양으로 향하는 동해가 남성적인 장쾌한 맛을 주는데 비해 현해탄으로 향하는 통영 남쪽바다는 어쩐지 호수 같은 여성적인 맛을 준다. 늙은 산맥이 고성반도에서 내려와 땅 끝에서 체념한 듯 발을 담그고 있는 그곳은 해안선이 꼬불꼬불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산과 바다가 숨바꼭질을 하는 듯 오밀조밀하다. 도시도 이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산과 해안선을 따라 발달했다. 41개의 유인도와 109개의 무인도가 징검다리처럼 통영 앞바다에 펼쳐진다. 그 바다가 바둑판이라면 수많은 섬들은 바둑알 같다. 그래서 통영관광은 마치 술래잡기놀이 같다. 산허리와 해안선을 돌때마다 도시와 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거듭한다. 육지와 바다와 섬이 출몰하는 이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왜적 선을 유인했으니 승전의 첫째조건은 충무공의 지략과 용맹에 있는 것이지만 복잡한 해안선도 승전의 한 몫으로 작용한 것이다.

통영 앞바다 다도해 전경.

통영은 한려수도(閑麗水道)의 출발점이다. 한산도에서 시작하여 여수에 이르는 꿈같은 한려수도는 여객선이 취항하며 여행객에게 남쪽바다의 풍광을 선사한다. 요즘은 동서로 통하는 고속도로, 국도가 많이 개설되어 전 같은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모습은 1968년부터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많은 관광인파를 끌어들인다. 동백꽃이 붉은 울음을 터트리는 남쪽바다는 내륙에 비해 훨씬 따뜻하다. 내륙이 이상한파로 꽁꽁 얼어붙어 몇 겹의 옷으로 무장하고 출발했지만 남쪽바다의 따사로운 햇볕은 두툼한 외투를 벗게 했다. 역시 봄소식은 남녘이 먼저 안다. 소한, 대한에다 입춘까지 지났음에도 내륙의 봄은 아직 멀리 있는데 남쪽바다에서는 봄소식이 아름아름 전해진다. 통영 앞바다로 난류인 쿠로시오 해류가 흘러 연평균 기온차가 전국에서 가장 적다. 이로 인해 물고기가 많이 잡혀 일찍이 수산업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외지인이 얼핏 보는 바다는 '낭만'이라든지 '해수욕' 등 놀이문화와 관련된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만 현지인들이 겪고 부대끼는 바다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땅과 바다는 본디 삶의 터전이다. 인간의 영혼과 육신은 끊임없이 그곳에 생명의 물과 영양소의 빨대를 꽂고 살아간다. 그리하여 땅과 바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삶의 원액을 제공하지만 예술인의 손을 거치는 순간 위대한 문학과 음악과 미술 등으로 가치를 전환한다. 남쪽바다는 위대한 예술인을 낳고 길렀다. 만약 통영에 바다가 없었더라면 이처럼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철부지 하동(河童)때 알몸으로 뛰어들던 바다, 사춘기의 열병을 달래주던 바다는 곧 위대한 작가를 탄생케 한 지리적 배경이 된 것이다.

청주문화원 탐방객 일행이 청마 유치환 문학관에서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겨울바다 예술기행에 나선 청주문화원 가족 일행은 우선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량동 망일봉 언덕에 위치한 청마 유치환 문학관을 찾았다. 아담한 문학관에는 청마의 작품과 생애, 유품 100여 점 등 청마의 모든 것을 가지런히 정돈해 놓았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깃발의 일부)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시여서 친근감을 준다. 시조시인 이영도 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5천여통 중 2백편을 골라 엮은 시집 '사랑했음으로 행복하였네라'는 국민애송시집이다. 청마의 생가는 통영시 태평동에 있었으나 현지 복원이 어려워 문학관 위로 옮겨 복원하였다. 초가삼간이나 처마엔 선친이 몸담던 유약국(柳藥局)현판이 걸려있고 한약재가 몇 봉 천정에 걸려 있다. 청마는 '귀고(歸故)'라는 시 끝부분에서 "행이불언(行而不言)하시는 아버지께선 어느덧 /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나는 끼고 온 신간(新刊)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라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망일봉 언덕길은 산책로가 그만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어서 더욱 정감이 간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잰걸음으로 달려온 봄바람에 실려 오감을 자극한다. 20분쯤 산허리를 돌면 남쪽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 공원의 중심부분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 남쪽을 응시한다. 한 치의 땅과 바다도 왜구에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표정이다. 동상의 가운데에 '死卽必生 生卽必死'(사즉필생 생즉필사: 죽기로 싸우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충무공의 좌우명이 새겨져 있다.

충무공의 호국정신과 청마의 문학 혼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내려와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로 향했다. 장현석 청주문화원장이 한지에다 '素望'이라고 써서 문화가족에게 나누어진 소지(燒紙)에다 각자의 새해 소망을 적어 소지를 올렸다. '건강' '행복' '운수대통' 등 각자의 소망을 새긴 소지는 불을 붙이는 순간 너울너울 춤을 추며 방파제를 박차고 하늘로 올랐다. 그리고 당대발복(當代發福)이라도 할까 싶어 문화원에서 선물로 나누어준 주택복권을 동전으로 긁었는데 2억 원이라는 최고 당첨금은 파도 따라 사라지고 44명 일행 중 최고 당첨자의 당첨금액은 5천 원에 불과했다. 성질 급한 속인(俗人)들의 바람은 뜬 그름이었나 보다. 그러나 청마의 시처럼 누구를 사랑하면 그게 바로 행복이고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소망을 이룬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나왔는지 일행은 '등대지기' 노래와 '가고파'를 합창했다. 하늘을 날며 자맥질을 하는 갈매기가 끼룩끼룩 화답한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기념관 내부. 선생의 유품을 가지런히 정리해놓았다.

점심을 먹고 서둘러 박경리 기념관으로 향했다. 문학기행은 여유를 갖고 천천히 하는 것이 제 맛이지만 통영엔 문화콘텐츠가 너무 많아 어물어물하다가는 해 걸음 녘 까지 둘러보아도 보고 싶은 것을 다 못 본다.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에 위치한 박경리 기념관에는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문학혼과 생애가 숨 쉬고 있는 곳이다. 1969년에 시작하여 1994년까지 26년 만에 완성한 '토지'는 한국문학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쌓은 위대한 작품이다. 한국의 근대사는 물론 한국인의 생활사가 수백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재구성된 대하소설 '토지'는 땅을 바탕으로 살아온 민초들의 질기고 굴곡진 삶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토지'외에도 '김약국의 딸들' '창' '애가' '표류도' '시장과 전장' 등 수많은 장편, 단편을 펴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고 생전에 말했지만 그의 보석 같은 작품은 언제나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다. 원주에는 박경리 문학공원에, 고향에는 기념관에 이승의 흔적이 압축되어 남아 있으니 인생은 유한하나 예술은 영원하다.

비구상 미술의 선구자 전혁림 미술관 내부.

이번에는 전혁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영남지역 비구상 회화의 선구적 역할을 한 전혁림 화백은 전통적인 한국의 정서를 반추상으로 재해석한다. 강렬한 원색의 대비라든지 기하학적인 화면의 분할, 원근법을 탈피한 평면적 배치 등으로 보아 일면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1950년대 앵포르멜이 주류를 이루는 비정형 회화를 부산 지역에 선보이기도 했던 현대미술의 선구자다. 그는 일찍이 현대미술에 눈을 떴다. 당시 지역작가들의 흔한 보수적 취향과 달리 그는 전위적(前衛的)조형 방법으로서 전통을 표현했다. 이러한 실험정신아래 탄생한 그의 작품은 발랄한 생명력을 풍기며 현대미술의 지향점을 말해준다. 통영시 봉평동에 위치한 전혁림 미술관은 건물 겉면에 그의 작품을 형상화한 세라믹 타일로 장식하여 외관부터 현대미술을 느끼게 한다.

김춘수 유품 전시관은 전혁림 미술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밀물과 썰물이 들락거리는 바닷가에 들어선 선생의 유품전시관에서 선생의 치열한 작가정신이 열기를 내뿜는다. 흔히 '꽃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김춘수. 그는 시계를 분해하고 다시 결합하듯 언어를 해부하고 조립하는데 능숙한 시인이었다. 그는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 '인식의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중략" 꽃의 시인이 보는 꽃은 어떤 꽃일까.

김춘수 유품전시관을 나오니 어둠이 어둑어둑 쏟아져 내렸다. 도대체 인구 14만 명의 작은 해안도시에서 이 많은 예술의 거장이 쏟아져 나오고 문화 콘텐츠가 넘쳐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풍수가 좋아서일까· 문예진흥정책을 효율적으로 펴서일까· 귀로에 접어든 탐방객에게 그런 의문부호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그럼 청주는 뭐야·"라는 또 다른 의문부호를 찍게 한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예술을 자랑하는 청주에는 그 흔한 미술관도 문학관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당산성이나 흥덕사지 고인쇄박물관 등을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는 게 청주시의 현실이다.

귀로에서 문화가족 일행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시낭송회를 열었다. 모두가 아끼고 좋아하는 애송시 한 편씩을 낭송했다. 권영애 사무국장은 이해인 시인의 '기도'를, 이명희 운영회장은 자작수필 '바다'를 각각 낭송했다. 이날만큼은 모두가 시인이 된 기분이다. 나는 청주시인 신영순의 '청주에도 바다가 있다'를 조용히 읊조렸다. " 아침 식탁에서 해를 떠먹는/ 아이들 목젖이 선홍빛이다/ 대관령을 넘어 온 오징어로 반쯤 마르다 만 동해바다를/ 송두리채 굽고 있는 시내 복판/ 흑산도 홍어는 느린 햇살로/ 우암산 나뭇가지에 올라/ 시내를 굽어본다/ 청주에도 바다가 있다/ 남해바다를 등 푸르게 업고 온 고등어가/ 선홍빛 목젖으로 부르는 바다/ 가슴 갈피마다 출렁거린다...중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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