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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8.03 17:02:2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태종이 상왕이 된 후 임금인 세종, 양녕대군, 그밖의 대신들을 불러 앉혔다. 그리고 양녕대군 폐위에 따른 그 간의 속앓이를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부정(父情)을 거론하는 중에 단호함이 배여 있다.

'나는 대비와 더불어 서로 양녕을 안아 주고 업어 주고 하여, 일찍이 무릎 위를 떠난 적이 없었으며, 이로 말마암아 자애하는 마음이 가장 두터워 다른 자식과 달랐다. (…) 양녕을 의정부에 회부하건 육조에 회부하건 나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 그때 가서 나더러 잔인하다는 말은 말 것이며…',-<세종실록>

전회에 밝힌 기첩 어리(於里)사건 이후 상소와 탄핵주장이 빗발쳤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녕을 왜 국법대로 처리하지 않고 계속 감싸느냐"는 투였다. '"양녕 대군 이제는 군부(君父)께 죄를 얻었으니 전하께서 사사로이 할 바가 아니온데, 전하께서 특별히 우애의 정으로 불러서 접견하시고 인하여 수일씩 머무르게 하시와 태종의 유교(遺敎)를 어기시니, 온 나라 신민이 실망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세종실록>

조선은 왕권과 신권을 조화시키는 권력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의 기구는 왕권 견제용으로 볼 수 있다. 세종이 대소 신료의 상소와 탄핵 주문을 견디지 못하고 양녕을 경기도 광주에서 청주로 이배시킬 것을 하명한다. 세종 5년(1423) 3월 13일이다. 왕명서인 전지가 떨어졌다.

'청주목(淸州牧)에게 전지하기를, " 양녕 대군을 지금 그 고을로 옮기는데, 문을 지키지 말고, 다만, 잡인(雜人)이 사사로이 통하는 것만 금하고, 만약 사사로이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아뢰어라."

고 하였다'.- <세종실록>

양녕이 청주에 머무른 시간은 1년이 채 못됐다. 그는 세종 6년(1424) 2월 18일 하사받은 땅이 있는 경기도 광주로 다시 돌아갔다. 청주에서의 생활은 사실상 유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부인, 첩, 노비를 거느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생인 세종으로부터 수시로 술, 고기, 떡 등 궁중음식을 제공받았다. 그러고도 개전의 모습이 없자 대사헌 유영이라는 인물이 상소문을 옮린다.

'"그가 청주(淸州)에 있을 때에 종들이 출입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내사(內史)를 시켜 위문하는 것도 끊임없었습니다. (…) 전하께서는 제왕의 지극히 공평한 도를 본받고 대의로 결단하시어, 제(양녕 지칭)를 다시 청주에 안치하시기를 바랍니다"'.-<세종실록>

양녕은 다시 청주를 찾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왜 세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후대의 평가가 엇갈린다.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본문에 나오는 효령대군은 양녕의 동생이다.

'처음에 양녕이 미친 체하고 방랑하니 효령대군이 장차 그가 폐위될 것이라 짐작하고, 깊이 들어 앉아 삼가고 꿇어앉아 글을 읽었다. 이는 양녕이 폐위되면 다음 차례로 세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녕이 지나다가 들어와서 발로 차면서 말하기를,"어리석다. 너는 충녕에게 성덕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였더니, 효령이 크게 깨닫고 곧 뒷문으로 나가 절간으로 뛰어가서는 두 손으로 북 하나를 종일 두드려 북 가죽이 부풀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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