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어제와 오늘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 때다.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는 있지만 1930년 서울 충정로에 지어진 4층 짜리 유림아파트가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라는게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연면적 1천50평의 이 아파트는 당초에는 도요다 아파트로 명명해 아파트로 사용하다가 이후 호텔로 용도를 변경했다고 한다.

아파트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유림아파트가 지어진 이후 6·25와 1960년대를 거쳐 본격적인 경제성장기인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파트는 한옥으로 대변돼 왔던 우리의 주거문화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정도로 가히 주거문화의 혁명을 가져왔다. 외국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는 한강변 아파트에 비유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문화가 됐다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과 성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아파트지만 어두운 뒤안길도 있었다. 1970년 발생한 서울 창전동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내면서 우리나라 부실공사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성냥곽 같은 획일된 아파트주거형태를 꼬집거나 폄하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모름지기 땅의 기운을 받아야 건강하게 살수 있을텐데 수십층 고층아파트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아파트에서 어떻게 건강을 구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적인 지적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와 걱정, 기우에도 불구하고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아파트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집 마련의 꿈을 아파트 장만으로 도식화 했고,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큰 평수의 아파트로 늘려가면서 부를 축적해 가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아파트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아파트가 지난 수십년간 개인 자산을 늘려가는데 1등 공신역할을 하면서 아파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집착 수준을 넘어 로망단계에 까지 달했던 것이다. 한때는 '사(士)'자 달린 사위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부잣집에서는 혼수 목록 1호로 아파트를 챙길 정도였고,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큰 평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작은 평수에 사는 아이들과 놀지 않는 이상 야릇한 풍토가 생길 정도로 아파트는 단순한 거주공간을 넘어 부의 척도가 됐다.

때문에 아파트 값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 상황에 따라 울고 웃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 세상이 됐고, 국가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도 아파트값의 변동은 중요한 변수가 된지 오래다.

이처럼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재산증식에 있어서 최우선 가치를 두고 신주단지처럼 여겨왔던 아파트가 최근들어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리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아파트 때문에 신음하는 목소리가 경향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인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지난 2006년 분양때 프리미엄이 1억5천만원이 붙었지만 부동산경기 침체로 현재는 매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투자목적으로 아파트를 매입한 입주자들이 계약금 10%를 날리고 입주를 포기한 경우가 수백건에 달한다고 한다.

청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입주가 시작된 신영지웰시티의 경우 계약자 500여명이 당초 신영이 약속했던 백화점 입점이나 청주시청사 이전과 같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주와 잔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복대동 금호어울림은 미분양 아파트를 할인분양하는 과정에서 입주자와 건설사측이 날선 대립각을 세우는 등 아파트로 인한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큰 평수의 아파트는 이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고 대신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대접받는 세상이 됐다. 그야말로 아파트에 대한 기존 가치관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공급은 많고 수요는 적은 공급과 수요 불균형에 따라 발생하는 총체적인 문제다. 정부도 급기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부동산 경기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 상향조정 등에 대해 부처 간 이견이 심해 좀더 시장 상황 등을 면밀히 지켜보고 전문가 의견 등을 더 들어본 뒤 대책을 내놓기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22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비상경제대책회의 의제에서도 주택거래 활성화 방안은 빠졌다고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급전직하( 急轉直下) 고통이 되고 짐이 돼 버린 아파트를 보면서 새삼 격세지감((隔世之感) 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