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강서동에 위치한 부모산(父母山)은 해발231.7m의 작은 산이다. 본래 이산은 아양산, 악양산 등으로 불리웠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흑전이 침공하여 이고장 출신 박춘무가 그의 아우 춘번, 아들 동명과 함께 칠백여 의병을 모아 성내에서 대적할 때 군량과 식수가 떨어져 아사직전 이 곳 상봉에서 물이 솟아 생기를 얻고 왜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산을 부모산이라 하고 물이 솟은 샘을 모유정(母乳井)이라고 불렀다. 현재 모유정은 통신탑이 서있는 정상아래 위치해 있다. 오래전부터 샘은 말라있지만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함께 옛시절을 이야기 한다. 부모산의 주변에는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 유역에 발달한 구릉과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산이 없어 청주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지역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주의 동서를 지키는 외곽 방어시설로 축성된 부모산성은 미호천변의 넓은 평야지역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청주지역을 통치하는 한편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한 백제시대의 성이다. 산봉우리 위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동쪽으로는 와우산 토성 및 당산 토성은 물론 상당산성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전회에 신미(信眉·?-?)대사의 법호가 이례적으로 길고 극존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미대사가 문종으로부터 받은 법호는 '대조계 선교종 도총섭 밀전정법 승양 조도 체용 일여 비지 쌍운 도생 이물 원융무애 혜각 종사(大曹溪禪敎宗都總攝密傳正法承揚祖道體用一如悲智雙運度生利物圓融無·惠覺宗師)로, 무려 37자에 달한다. 그러나 이 법호는 사실은 문종이 아닌 세종이 준비했던 법호였다. 세종은 궁궐내 내원당 건립 등 신미대사의 불사에 감사를 표시하는 의미로 '선교종 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싸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 慧覺尊者)'라는 긴 법호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이 법호를 내리기 전에 승하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고, 아들 문종이 대신 전하게 된다. 골수 유교분자들인 대신들이 "그 법호는 안 된다"며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그들이 보인 반응 정도는 '국조 이래로 이런 승직이 없었다'(문종실록)라는 것이었다. 하위지는 "안팎이 눈을 비비며 간절히 유신(維新)의 정치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정사에서 간사한 중에게 존호를 내리시었으니, 바르지 못한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는 내용의 상소를 했다. 본문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세종~예종 연간에 우리고장 속리산 복천암 주지를 지낸 인물로 신미대사((信眉·?~?)가 있다. 그의 본관은 영산(永山), 즉 지금의 영동으로 그의 집안은 본래 유학을 숭상했다. 그러나 신미는 부친 김훈(金訓)이 주지육림에 빠지자 출가했다. 문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집현전 직제학 박팽년 등이 상서하기를, "(신미는) 그 아비 김훈이 죄를 입게 되자, 폐고(廢錮) 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몰래 도망하여 머리를 깎았습니다…'" - 본문 중 '폐고'는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미대사와 관련해 이른바 '한글창제 주도설'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 설은 대략 세종이 한글창제를 기획하고 작업을 주도한 인물은 신미대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신미가 세종·세조 두 임금과 유난히 친밀했던 점, 한글창제후 유교가 아닌 불교경전이 집중적으로 간행된 점, 법호가 유난히 길고 극존칭으로 돼 있는 점 등을 꼽고 있다. 이밖에 월인석보와 훈민정음이 불교적 상징을 지닌 108장과 33장으로 각각 구성돼 있는 점 등도 거론하고 있다. 신미대사가 한글창제를 주도했다는 내용은 현존하는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재료와 모양에 따라 술잔(盃)의 이름을 다양하게 불렀다. 규화배(葵花盃), 옥배(玉杯), 수정배(水晶재), 앵무배(鸚鵡盃), 나배(螺杯) 등이 있다. '규화배'는 접시꽃 모양, 앵무배는 바다의 앵무조개, 나배는 소라껍데기로 만든 것을 말한다. 사전은 앵무조개에 대해 '헤엄칠 때는 아가리를 위로, 갓을 아래로 하고 껍데기를 앞으로 하여 후퇴 방향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대다수 임금들은 잔을 중요시 여겼다. 특히 애주가형 임금일수록 잔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연산군도 애주가형 군주에 속한다. 그에 얽힌 이야기가 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전교하기를, "나배(螺杯) 3백∼4백 개를 생산되는 곳에서 채취하여 들이게 하라"하였다.'- '전교하기를, "규화배 1천, 앵무배 1백을 구워 만들라" 하였다.'- 연산군이 왜 한번에 수백내지 1천개의 술잔이 필요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여러가 정황상 '궁중 파티'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추정은 "팔정배(八呈杯) 및 일체 주기(酒器)를 숙용(淑容)의 집 헌수연에 진배하라"는 표현에서 어느정도 입증되고 있다. 숙용은 임금의 후궁에게 내리던 종3품 내명부의 품계를 말한다. 조선시대 후궁들은
청원군 문의면 소재 문의영화마을을 시작으로 국전리 주지미 마을과 삼정리 산정말, 노현리 마근이 마을, 마동리 마동창작마을까지 연결되는 걷기코스가 대청호 둘레길 2구간이라면 역대 대통령들의 자취를 쫓아 휴식과 산책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청남대가 2-1코스. 문의 영화마을에서 호변을 따라 노현리 인공 습지공원을 지나 작은용굴과 상장리 피미마을, 청남대 가로수길을 거쳐 출입국 관리소 입구 망향비까지가 대청호 둘레길2-2코스. 청남대 출입국 관리소나 산덕리를 들목으로 구리봉과 곰실봉을 오른뒤 청남대 경호를 위해 주둔했던 공수부대원들이 오갔던 산덕리길이 2-3코스이다. 대통령 별장이 있던 곳으로 삼엄한 경비는 물론 통행, 근접, 가시거리등 많은 규제들로 인하여 수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던 반면 수려한 자연경관과 생태계 또한 보존될 수 있었기에 채집되는 풍경 또한 각별한 오지 숲길이다. 대통령 전용별장이었던 청남대가 20여년의 베일을 벗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때 함께 모습을 드러낸 곳이 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소재 청남대 뒷산인 곰실봉(321m)이다. 청남대와 함께 철책선에 갇혀 일반인들은 갈 수 없었던 곰실봉은 그리 높지 않으나 산책길 같은 오롯함 속에 이쪽저쪽으로
조선시대는 청렴결백한 관리인 청백리(淸白吏)를 제도적으로 육성·관리했다. 청백리 제도가 언제 시작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종실록에 청백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도입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청백리의 선발은 전후기가 달랐다. 조선 전기에는 의정부·이조에서, 후기에는 비변사·이조가 왕명에 따라 2품 이상의 관료자 중 생존하거나 사망한 인물을 1차 대상으로 했다.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청백리 중에 이약동(李約東·1416∼1493)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세종 때 진사시와 문과에 잇따라 급제한 후 제주목사까지 승진했다. 그의 청백리에 얽힌 이야기는 이때 만들어 진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공이 제주 목사로 있으면서 사냥할 때에 채찍 하나를 가졌었는데, 임기가 차서 돌아올 때 그 채찍을 벽 위에 걸어 두었었다. 후에 섬 사람들이 보배처럼 간수하여 매양 목사가 도임하면 채찍을 내어 놓았다. 세월이 오래 되자 좀이 먹어 부서지니 화공(畵工)을 시켜 그 채찍의 형상을 그려 걸어 놓았다.'- 공적(公的)으로 주어진 물건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개인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용문에는
# 금요일△청주우정산악회(011-464-1434)* 3일 : 곡성 동악산* 17일 : 태백산 눈꽃산행△청주무궁화산악회(010-3423-2783)* 3일 : 청양 칠갑산* 10일 : 강원 태백산* 17일 : 광주 무등산* 24일 : 부산 장자산△청주우리산악회(010-2466-3822)* 3일 : 시산제* 10일 : 금산 보리암* 17일 : 서산 황금산* 24일 : 무주 덕유산△청주 의정산악회(016-864-3259)△청주에이스 금요산악회(011-487-5556)# 토요일 △해맑은산꾼들(010-6473-4488)* 4일 : 포천 극망봉* 11일 : 정읍 방장산* 18일 : 평창 백덕산* 25일 : 진안 선각산△청주백두오름산악회(010-6486-1055)* 4일 : 제천 용두산* 11일 : 안동 천등산* 18일 : 남해 금산* 25일 : 부산 봉래산△청주산사랑 산악회(010-3423-8505)* 4일 : 사명산 문바위봉* 11일 : 원주 매화산~비로봉* 18일 : 문경 오정산* 25일 : 관매도 돈대△사람과산(010-9573-3651)* 4일 : 안성 서운산* 11일 : 사랑도 칠현산* 18일 : 영덕 블루로드* 25일 : 호남정맥10구△청주토요산악회(010-73
도굴(盜掘)의 사전적인 의미는 '법적 수속이나 관리자의 승낙을 받지 않고 고분 따위를 파거나 광물을 캐내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꼭 땅속이 아니더라도 사찰이나 고택에서 옛 유물이나 유품을 훔치는 행위도 넓은 의미의 도굴로 보고 있다. 몇년전 국내 최고 수준의 도굴꾼으로 불리는 서모씨가 "내가 직지를 훔쳤다"고 말해, 지역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또 얼마전에는 1백년전 청주 음식문화를 다룬 '반찬등속'이라는 고문헌의 존재가 확인되기도 했다. 1백년전 청주 강서의 한 양반가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반찬등속은 아쉽게도 우리 지역이 아닌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 정황상 강서지역에서 도난당한 것이 여러 경로를 거친 끝에 민속박물관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도굴꾼들이 활개를 쳤다. 실록에도 도굴과 관련된 내용들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충북 불교의 공간적인 종가(宗家)가 되는 속리산도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법주사가 도내 최고의 대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복천사(福泉寺·지금의 복천암)도 그에 못지 않았다. 복천사는 신미대사가 주지로 있을 때 세조 임금이 방문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이때 세조는 불전 이상의 파격적인 경제적 지원
하루가 시작되는 산성마을의 아침은 가라앉은 듯 차분하다. 자연스레 발걸음도 살금살금 조심스럽다. 하얀 도화지에 줄을 긋듯 시작된 둘레길은 산성 소류지를 지나 상당산성 성벽을 오른다. 가지런히 정돈된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은 공남문과 남암문을 지나 미호문 가기 전 왼쪽으로 난 등로를 따라 내려선다.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져진 산길은 길도 선명하고 숲도 좋다. 군데군데 쉼터와 계단등 편의시설도 잘 되어있다. 한바탕 풀어놓은 내리막길은 우암산 순환도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만나며 한숨 돌린다. 굴다리에서 바로 내려서면 우암어린회관과 국립청주박물관으로 하산할 수 있지만 굴다리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우암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계속된 오름길이 다소 힘들지만 20여분이면 우암산에 오를 수 있다. 해발고도 353m의 우암산은 예로부터 소가 누운 형상이라 하여 와우산(臥牛山), 또는 대모산(大母山), 장암산(壯岩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오는 청주의 진산이다. 많은 약수터와 운동시설 등이 있고 정상에서 조망되는 청주시의 전경이 아름답다. 우암산의 녹색 숲은 탁한 도시 공기를 맑게 해주고 시민들에게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공유하고 있어
고려말기의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은 우왕과 창왕을 공민왕의 핏줄이 아닌, 신돈과 시녀 반야(般若)의 사생아라고 빡빡(?) 우겼다. 어떤 때는 '왕'이라는 호칭도 생략하고 그냥 '우', '창'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래야 자신들의 쿠데타 명분이 반비례적으로 강화되기 때문이었다. 조선 초기에 쓴 고려사에 이어 실록에도 같은 표현이 보인다. "왕씨는, 공민왕이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남으로부터 신우(辛禑)가 사이를 틈타서 왕위를 도적질했다가, 죄가 있어 사양하고 물러갔으나, 아들 창(昌)이 왕위를 물려받았으므로 국운이 다시 끊어졌습니다."- 조선 초기 조정은 반란을 우려해 왕씨들에 대한 대대적인 멸족 작업에 착수했다. 언뜻 생각하면 '과연 한 성씨를 멸망시키려 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록을 보면 사실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매우 단문이지만 왕씨에 대한 수장 행위가 있었음을 그 행동자 이름까지 기록해 놓았다. '윤방경 등이 왕씨(王氏)를 강화 나루에 던졌다. 손흥종 등이 왕씨를 거제 바다에 던졌다.'- 이밖에 '중앙과 지방에 명령하여 왕씨의 남은 자손을 대대적으로 수색하여 이들을 모두 목 베었다'(태조실록)라는 표현으로 봐 육지에서도 멸족 행위가 진행됐음을 알
조선은 '대국을 섬긴다', 즉 사대(事大)를 외교의 한 방도로 삼았기 때문에 매년 중국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파견해야 했다. 하정사(賀正使), 동지사(冬至使), 성절사(聖節使) 등이 바로 그것으로, 이른바 삼절사라고 불렀다. 하정사는 새해 정월, 동지사는 세밑 동지 무렵, 성절사의 황제나 황후의 생일에 맞춰 보내던 사신을 말한다. 이중 하정사는 매년 10월말이나 12월초에 떠나서 그 해가 가기 전에 북경에 도착, 40∼60일 동안 머무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때 중국 황제에게는 모시·명주·백면지(白綿紙)를, 황후에게는 나전소함(螺鈿梳函) 등을 바쳤다. 백면지는 고급 종이의 일종, 나전소함은 자개로 만든 화장 도구함을 일컫고 있다. 힘없는 나라 조선의 사신은 황태후와 황태자에게도 선물을 바쳐야 했다. 그 종류는 황제와 비슷하나 그 수량은 대략 절반 정도였다. 그해 하정사는 2월중에 떠나서 3월말이나 4월초에 돌아오는 것이 통례였다. 세종 즉위년(1418)의 하정사로 김여지(金汝知·1370∼1425)라는 인물이 선발됐다. 세종이 김여지에게 중국 황제의 신년맞음을 축하하는 내용의 글을 휴대하게 했다. 이렇게 정초에 중국에 올리는 외교글을 '정조하표전'(正朝賀表箋)이라
중국의 용은 은나라, 그러니까 신석기시대부터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늦은 청동기 시대부터 용 문화가 관찰되고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는 국보 제 147호인 천전리 각석이 존재하고 있다. 선으로 새긴 그림들 중에는 4개의 다리와 2개의 지느러미를 가진 몸통이 긴 동물이 그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용그림으로 보고 있다. 용 문양이나 장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아무대로 사찰이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사연이 존재하고 있다. 불교 건축물에 용 문양과 장식이 적극적으로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다. 사명, 영규대사 등에서 보듯 조선의 승려들은 북인과 합세해 임진왜란 때 전공을 많이 올렸다. 임란이 끝난 후 불교에 대한 탄압이 크게 완화됐다. 그러자 불교계는 이때부터 백성들을 절로 불러들이기 위해 민간에 퍼져있던 용 사상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시작했다. 불교 건축물의 각종 용 조각과 용 그림은 바로 백성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계산된 상징기호였다. 따라서 고려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교건물인 향교와 서원에는 용장식이 관찰되지 않는다. 국보 55호인 팔상전은 임란후인 인조(17세기) 때 재건된 목탑이다. 이 팔상전을 잘 살펴보면 용그림
[충북일보] 최근 청주시 미호강변에서 아주 기묘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새벽에 수백여 명의 인파가 강변 공원 앞에 줄을 서있는 낯선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젊게는 30대에서 많게는 70대 노인까지 행렬에 참여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돗자리를 펴고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충북일보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이들은 미호강 파크골프장에서 '2025 생활스포츠지도자' 실기·구술 시험을 보러온 응시자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야심한 시간에 줄을 서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파크골프 종목 생활스포츠지도자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식 시험장이 전국에서 청주 딱 한 곳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3천여 명의 응시자들이 서로 연습기회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 응시자에게 왜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이냐고 묻자 "밤 11시부터 줄을 서도 새벽 5시 30분 파크골프장 개장시간에 대기번호 후순위를 받을 정도"라며 "줄을 서지 않으면 입장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춘천에서 왔다는 또 다른 응시자는 "사람이 너무 몰려서 하루 1번 겨우 연습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전날부터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청주시설관리공단을 도시공사로 전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16일 시에 따르면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청주시의회 정례회에 '청주도시공사 설립 및 운영 조례'를 상정할 예정이다. 시가 시의회에 상정한 조례안에는 기존 청주시설관리공단의 기능을 확장해 도시개발사업과 위수탁·대행사업을 수행하는 통합형 공사를 만드는 방안이 담겼다. 시가 공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앞으로 지역에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타 기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추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청주시는 개발사업을 주도할 주체가 없어 대부분의 개발사업을 LH나 충북개발공사, 민간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또 시설관리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청주시설관리공단으로는 각종 개발사업을 처리할 여건이 안된다는 것도 시가 새로운 컨트롤타워 조직 구성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청주시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의 중심지역이고 공항과 철도, 도로 모두 발달해 앞으로의 개발 수요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도시공사 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시의 주장이다. 시는 시설공단이 도시공사로 전환되면 도시개발에 따른 이익이 지역에 환원할 수 있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