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인터넷판에 '가뭄'이라는 단어를 열쇠말(키워드) 방법으로 입력하면 무려 1천18건이 검색된다. 추출된 데이터를 월별로 살펴보면 4-7월에 집중돼 있고, 지역별로는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순이었다. 최근의 가뭄현상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가뭄은 남한과 북한 모두 한반도 서쪽 사면이 심하다. 기상청은 이에 대해 '금년 상반기는 동쪽의 오흐츠크해 고기압이 이례적으로 강한 세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상학상 오흐츠크해 고기압이 강하면 이른바 푄현상이 나타나면서 그 서쪽 사면에서는 가뭄과 함께 고온현상이 찾아온다. 뿐만 아니라 장마전선도 브로킹을 당하면서 북상이 느려지게 된다. 이것은 가뭄의 장기화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땅거죽이 타들어가는 극심한 가뭄현상은 17-18세기에 많이 찾아왔다. 17세기는 임진왜란의 종전 직후가 된다. 때문에 당시 이 땅의 민중들은 전쟁에 천재까지 겹치면서 도탄에 빠진 삶을 살아야 했다. 어떤 학자는 이같은 '악기후'가 조선후기의 농민반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우리고장 충청도에도 가뭄현상이 심심찮게 찾아왔다. 실록에는 '강물이 끊겼다'는 표현이 더러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 사비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재 부여라 불린다. 백제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부여 '사비길'로 50회 클린마운틴 아카데미의 여정을 시작했다.초여름 햇살이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23일. 부소산성의 초입에 들어서자 위용이 넘치는 부소산문이 우릴 반겼다. 부소산문을 통과하자 하늘 높이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일행은 삼충사에 도착했다. 백제 말기의 충신 성충·흥수·계백을 제향하는 곳이다. 용맹스러운 초상화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삼충사를 지나 영일루에 오르자 탁 트인 부여시내가 보였다. 소나무와 이름 모를 산새 소리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고란사에 도착했다. 고란사는 한 번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는 약수로 유명하다. 몇 날 며칠 가물었던 탓인지 약수는 바닥을 드러냈지만, 일행들은 저마다 기도를 하며 얼마 남지 않은 약수를 들이켰다.낙화암. 백제가 쇠망의 길로 들어서자 3천 궁녀가 굴욕을 면하고자 백마강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긴긴 세월 그 모든 것을 지켜봤을 백마강은 유유히 흐를 뿐 말이 없었다.사비길 역사여행은 정림사지 5층 석탑에서 정점을 찍
조선시대에는 가뭄 등 천재지변이 찾아오면 임금의 부덕함으로 하늘이 노한 것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그 노여움을 풀기위해 기우제를 지냈다. 조선 조정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제를 지내는 것 외에 산에 올라가 장작불을 놓고 기우제를 지냈다. 흰 연기가 하늘에 닿으라는 의미에서 였다. '종묘·사직·원단과 명산 대천(名山大川)에 비를 빌었다. 임금이 오랫동안 가뭄으로 인하여 대전(大殿)에 나아가 정사를 듣지 아니하고, 날마다 더욱 두려워하여 수성(修省) 하였다.'- 태종대는 가뭄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러자 저자에는 '태종이 이복 동생들을 죽이고 보위에 올랐기 때문'(1차 왕자의 난 지칭)이라는 쑥덕공론이 나돌았다. 태종이 기우제를 지내기로 결정했다. '임금이 내관을 시켜 불러서, 역마(驛馬)를 타고 함께 이르렀다. 임금이 말하기를, "들으니 네가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하니, 나를 위하여 한번 비를 빌라." 하였다. 이에 가학이 재계(齋戒)하고 사흘이면 반드시 비를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인용문 중에 '가학'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성이 문(文) 씨인 그는 경상도 진주 사람으로 목화로 유명한 문익점의 조카이다. 그의 기도가 신통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태
주역은 계절에도 음양이 있는 것으로 봤다. 우리 선조들은 음력 1-6월은 양, 그 이후는 음의 기운이 강하다고 믿었다. 전반기 명절인 1월 1일 설날,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등은 모두 양수(陽數)의 결합을 하고 있다. 반면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7월 이후부터는 저녁이나 달(月)과 관련된 절기문화가 전면에 등장한다. 7월 칠석에 '저녁 夕' 자가 들어가 있고, 8월 15일은 한가위 대보름이다. 금년은 오는 24일이 단오이다. 우리 선조들은 단오날 창포로 빚은 창포주(菖蒲酒)를 즐겨 마셨다. 실록에도 임금이 직접 창포주 제조를 하명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참의 황자후(黃子厚)에게 명하여 창포주(菖浦酒)를 만들게 하였다.'- 이처럼 선조들이 창포주를 즐긴 것은 취흥보다는 질병 퇴치에 목적이 있었다. 허준은 창포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창포주방(菖蒲酒方) 뿌리를 교즙하여 찹쌀의 양과 상반(相半)되게 한 다음, 상법대로 양조하여 구복(久服)하면 연년익수(延年益壽)하고 신명(神明)을 통한다."- 단오가 양기의 절정을 이루는 때이기는 하나 하지(夏至) 뒤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날 이후로는 음의 기운이 조금씩 돋아나기 시작하는 등 기(氣)의 환절기에
조선 영조-순조 연간의 인물로 성대중(成大中·1732∼1812)이 있다. 그는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할 처지였으나, 신분상승 운동의 일종인 서얼통청에 힘입어 관료가 될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저서 중에 '청성잡기'(靑城雜記)라는 것이 있다. '윤구연의 점괘는 삼남에 죽을 것(死於三南)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가 삼남 지방의 관직에 부임하지는 않았지만 남병사(南兵使)로 부임하여 남태회의 상소에 의해서 남대문(南大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실록에도 충청도 병마절도사 출신인 윤구연이 당시 대사언이던 남태회(南泰會·1706∼1770)의 상소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난다. '임금이 경현당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대사헌 남태회가 아뢰기를, "남병사 윤구연은 자신이 수신이면서도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 지엄함을 염두에 두지 않고 멋대로 범양하여 매일 술에 취한다는 말이 낭자합니다. 이와 같이 법을 능멸하는 무엄한 사람을…"'- 윤구연이 즉시 체포돼 한양으로 이송됐고, '멋대로 범양하여 매일 술에 취했다'는 증거를 찾기위한 수색작업이 벌어졌다. 그 결과, 윤구연의 근무처에서 '술냄새 나는 항아리'가 발견됐다.
'임자 당신 날 싫다고 울치고 담치고 배추김치 소금치고 열무김치 초치고 / 칼로 물벤 듯이 그냥 싹 돌아서더니 이천 팔십리 다 목가고서 왜 또 날 찾아 왔나.' '당신이 날마다 울치고 담치고 열무김치 소금치고 오이김치 초치고 / 칼로 물친 듯이 뚝 떠나 가더니 평창 팔십리 다 못 가고서 오니 되돌아 왔나.' 두 민요 가사는 같은 듯하지만 다른 면이 있다. 전자는 '서울제' 정선아리랑이고 후자는 '지방제' 정선아리랑이다. 아리장은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변하는 특징이 있다. 중국만주 정암촌의 청주아리랑이 좋은 예가 된다. 서울제 정선아리랑도 정선아리장이 남한강을 타고 내려와 서울에서 변한 것이다. 변화를 이끈 주체는 역시 뗏목꾼이었다. 서울 뿐만 아니라 우리고장 충주 등 북부지역과 경기도 여주 주변에도 정선아리랑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뗏목꾼은 물품거래 뿐만 아니라 소리를 통한 문화의 전파자 역할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건·사고에 얽힌 얘기까지 등장한다. 성종 3년(1472) 우리고장 제천의 정병(正兵) 김중선 등 여섯명이 한강 하류에 이르러 3명은 익사하고 3명은 겨우 목숨을 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땅길이 아닌 뗏목을 이
조선시대에는 우금(牛禁), 주금(酒禁), 송금(松禁) 등 이른바 삼금(三禁)정책이 자주 반포됐다. 우금은 농우(農牛) 도살을 금지하는 것, 송금은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금년같이 큰 가뭄이 찾아올 경우 삼금정책의 하나인 금주령이 선포됐다. 실록을 키워드 방식으로 검색한 결과, 조선시대 경우 총 175건의 금주령이 포고됐다. 역대 왕별로는 성종(31건), 영조(29건), 세종(17건), 중종(14건) 순으로 많았다. 금주령은 △근신 절제로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로하며 △식량과 비용 절약의 목적을 지녔다. 금주령은 가뭄이 심한 봄ㆍ여름에 반포되어 추수가 끝나는 가을에 해제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때로는 10∼12월에도 시행됐다. 또 보통은 중앙 조정의 결정으로 직접 반포됐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방관찰사들의 건의로도 반포됐다. 그러나 금주령이 반포된 기간에도 음주나 양조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국가의 제향, 사신접대, 상왕(上王)에 대한 공상(貢上), 그리고 백성들의 혼인ㆍ제사 및 노병자의 약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됐다. 금주령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단속도 사실상 어려웠다. 같은 내용의 국가법령이
조선시대에는 수년마다 기근이 찾아왔고 수십년에 한번씩은 이른바 대기근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농사는 기상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조선 조정은 그때마다 진휼정책을 실시했다. 그 기본은 인접한 도(道)의 진휼미를 기근이 발생한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가령 강원도에 기근이 발생했을 경우 충주 경원창의 비축미를 육로를 통해 이동시켰다. 실록은 우리고장 충청도에도 대기근이 심심찮게 찾아왔던 것으로 기록했다. '전라도의 쌀 5만 석을 충청도에 옮겼다. 이보다 먼저 본도 감사가 아뢰기를, "기민(飢民)의 전후 수효의 총계가 70만 1천 2백 89인인데 (…) 비록 전라도의 쌀 9만 석을 조운(漕運)하더라도 진휼하여 구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으므로, 이 명령이 있은 것이다.' 인용문은 세종대에 발생한 기근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먼저 기민의 숫자가 70만1천여명이라고 쓰고 있다. 당시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또 이들은 구휼하려면 쌀 9만석이 필요하나 전라도에서 방출되는 것은 고작 5만석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세종대에는 기상재해에 따른 대기근이 자주 발생했다. '군자감의 묵은 쌀·콩
청주 신항서원이 창건 당시에 제향한 인물은 경연, 박훈, 송인수 등 3위였다. 임진왜란 10년 후에는 김정, 그리고 조금의 시차를 두고 한충, 송준길, 송상현, 이득윤, 이이, 이색 등의 위패를 차례로 추향하게 된다. 이와 관련, 김수항이 지은 신항서원 이건(移建) 상량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같은 당에 각기 따로 신위를 배설한 것은 도덕의 고하의 차이를 나타냄이라. 한 중간에 가장 높이는 신위(위패)를 남면하여 배설하고…'- 인용문은 '도덕의 고하에 따라' 신위를 새롭게 배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때 중앙에 자리잡은 위패는 율곡 이이(李珥·1536∼1584)였다. 서원에서는 전통적으로 중앙 자리가 위계가 가장 높고 중요시됐다. 신항서원은 이후 화양서원이 건립되기 전까지 청주목을 대표하게 된다. 봉안된 위패 중에 김정(金淨·1486∼1521), 한충(韓忠·1486-1521)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둘은 비슷한 점이 많다. 생몰 연대뿐만 아니라 사림파라는 점이 같다. 김정은 우리고장 보은, 한충은 청주가 고향이다. 1519년(중종14) 조광조 등 사림파가 남곤, 심정 등의 훈구파에 의해 화를 입은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동지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중죄
서원(書院)과 사우(祀宇)는 명현과 관련된 전통시대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그 기능은 좀 다르다. 서원은 유학 발달과 관련된 충신이나 사표로 삼을 만한 인물을 제향한다. 반면 사우는 가문의 인물을 주로 모시고 있다. 우리고장 충주 신니면의 박팽년 사우(충북도기념물 제 27호)가 대표적인 사례로, 순천박씨 문중이 매년 제를 올리고 있다. 청주를 대표하는 서원으로는 신항(莘巷)서원이 있다. 신항서원은 1570년(선조3) 조강 등이 청주지역 여러 사림들과 상의하여 지금의 용정동(속칭 이정골)에 세웠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마을 이름을 딴 '유정'(有定)서원이었다. 그리고 초기에는 경연, 박훈, 송인수 등 3위의 위패를 모셨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전란 기간중 왜군에게 점령당한 청주도 다른 지역 못지 않게 전화를 입었다. 유정서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복구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러나 전란후 농경지가 급감하고 유랑자가 많아진 상황에서 복구가 쉽지 않았다. 당시 유정서원의 원장은 서계 이득윤(李得胤·1553~1630)이었다. 그의 문집인 서계집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동향의 院儒가 무려 1백명에 가까운데 지금 참여하는 사람은 불과 11명에 불과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이 올 발굴 30주년을 맞았다. 충북대 박물관팀이 지난 1982부터 2003년까지 총 6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수십여기의 고분에서 4~5세기 무렵의 한성백제기 유물이 다량으로 발굴됐다. 무기류로는 철갑옷, 화살촉, 철도끼, 철창 등이 나왔고 말과 관련된 무구류로는 말재갈, 등자(발걸이) 등이 수습됐다. 이밖에 '손잡이잔'(파배) 토기도 수습됐다. 고고학적 발굴에는 종종 비화가 뒤따른다. 신봉동고분 발굴에도 비화가 존재하고 있다. 충북대 차용걸 교수는 그해 3월 대학 동기인 고고학자 심정보 씨 등과 원래는 상당산성을 산책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차용걸 교수가 전날 먹은 술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자 "상당산성 대신 가까운 야산인 신봉동 일대를 산책하자"며 장소를 바꿨다. 차 교수는 이날 신봉동 일대에 도굴된 고분이 매우 많이 존재하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충북도에 긴급 발굴조사를 의뢰했다. 그로부터 두달 뒤 충북대 박물관팀에 의해 정식 발굴조사가 시작되면서 유물이 수습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도굴갱이 1천개가 넘었다. 특히 도굴범이 얼마나 활개를 쳤는지 나무 위에 망루까지 설치해 놓고 마음껏 무덤을 파헤쳤다. 그
꿈의 사전적인 정의는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이다. 꿈의 가장 큰 특징은 꿈꾸는 '나'는 '나'이면서도 현실의 '나'와는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 고전인 주례(周禮)는 일찌기 점몽 편에서 꿈을 꾸게 된 원인에 따라 꿈을 정몽(正夢), 악몽, 사몽(思夢), 오몽(寤夢), 희몽(喜夢), 구몽(懼夢) 등 여섯 종류로 분류했다. 정몽은 깨어나도 기억이 생생한 꿈으로 어떤 문제에 깊이 고심하고 있을 때 주로 꾸게 된다. 악몽은 심히 놀라 꾸는 꿈, 사몽은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 꿈속에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잠에서 로또 당첨되는 꿈을 꿨다면 바로 '사몽'이 된다. 이밖에 오몽은 낮 동안에 있었던 일이나 평소에 말한 것을 꿈에 보는 것을, 구몽은 두려워하는 꿈을 말한다. 이밖에 꿈과 관련된 표현으로 비몽사몽(非夢似夢), 일장춘몽(一場春夢), 태몽(胎夢), 호접몽(胡蝶夢) 등이 있다. 이중 호접몽은 장자(莊子·BC 369 ~ BC 289?)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깨서는, 자기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호랑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데서 나온 표현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꿈을 꾸고 난 후 그 꿈의 인상
[충북일보] 민선 8기 청주시 출범 이후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여름철 꿀잼 물놀이장이 올해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오창읍 각리공원과 오송읍 정중근린공원에 물놀이장을 새로 개장해 더 많은 시민들이 물놀이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기존의 문암생태공원(문암동), 생명누리공원(주중동), 유기농산업복합서비스지원단지(남일면) 등을 포함하면 청주지역에는 총 8곳에서 물놀이장이 운영된다. 물놀이장은 오는 26일부터 8월 24일까지 60일간 개장한다. 지난해 55일보다 운영 기간을 5일 늘렸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로 나눠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등 2시간씩 운영하며 월요일은 물놀이장 청소 및 수질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회차별 이용 가능 인원은 △대농근린공원 300명 △망골근린공원 100명 △장전근린공원 200명 △문암생태공원 200명 △생명누리공원 200명 △각리근린공원 200명 △정중근린공원 200명이다. 이용 방식은 사전예약(30%)과 현장 선착순 입장(70%)이 병행되며 개인은 '청주여기' 앱(APP)으로, 유아단체는 청주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6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각 물놀이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바이오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목표로 청주 오송 국제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과 청주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정주 환경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오송은 주변 지역인 오창, 옥산 등과 연계해 오는 2033년 인구 35만5천 명 규모의 도시권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충북경자청에 따르면 오송을 산업과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만들기 위한 28개 사업을 발굴해 청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사업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는 내부 검토를 거쳐 바로 추진이 가능하거나 시급하다고 판단한 현안 10개를 협력 사업으로 정했다. 충북경자청과 시는 최근 협력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향후 연계와 협업 방안도 논의했다. 양 기관이 추진할 협력 사업을 보면 먼저 오송 국제도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오송이 '국제도시'라는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시내버스 정보시스템(BIS)을 활용해 홍보에 나선다. 국내 바이오산업 중심지 오송과 첨단산업 집적화와 다목적 방사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