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환경과학원이 얼마전 "호랑이 없는 남한에서 담비가 최상위 포식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담비는 같은 족제비과 동물 중에서도 나무를 잘 타고 또 땅 위에서 날쌔기로 유명하다. 이런 요소들이 담비를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고 있다.담비의 중세 표현은 '담븨'로 이것이 '담뷔', '담뵈' 순으로 변했다. 경상도 지역에서 담비를 '담보' 또는 '담부'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아가 담비가죽의 순우리말은 '잘'로, 중세어 '쟈할'이 변했다. 이밖에 담비를 한자로는 '貂'(초), 또는 '山獺'(산달)이라고 쓰고 있다. 고사성어 중에 '구미속초'(狗尾續貂)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개꼬리로 담비꼬리를 잇는다'는 뜻으로 쓸모없는 사람에게 관직을 함부로 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때 사마륜(司馬倫)이라는 인물있었다. 그는 진나라 무제 사마염(司馬炎)의 숙부로 조왕(趙王)에 봉해졌다. 사마염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사마충(司馬衷)이 혜제(惠帝)로 즉위하였으나, 사마륜이 그 자리를 찬탈했다. 그런 사마륜은 권력을 남용, 그의 친척과 친구들은 물론 노비와 시종들에까지도 관직을 주었다.그러자 진서(晉書)를 쓴 방현
충북의 향토음식도 도민들의 기질과 비슷, 전반적으로 '꾸밈이 없고 평범한 것'을 주요 특징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충북학연구소(소장 김양식 박사)가 최근 충북학 교양총서 시리즈의 일환으로 '충북 민속문화의 길갑이'를 발간했다. 410여쪽 분량의 이 총서는 '충북민속학 총론'(이창식), '충북인의 일생의례'(최명환), '충북의 세시풍속'(안상경), '충북의 구비전승'(이상희), '충북의 향토음식문화'(김운주·이규진)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중 '충북의 향토음식문화'가 오랫만에 발간된 향토 음식서일 뿐 아니라 관광산업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방향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이 두 사람의 공저는 충북 향토음식의 전반적인 특징을, 어쩌면 드러나는 특징이 아닐 수도 있는 '꾸밈이 없고 평범한 것'으로 개념화했다. 공저는 이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충북 향토음식은 짜지 않으면서 맛은 대체로 맵고 △젓갈을 사용하지 않으며 △기름지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음식의 외형에 대해서는 "모양과 색깔은 요란하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조리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저는 충북 향토음식의 이같은 특징을 김치류와 장아찌류 그리고 단위별 음식으로도 나눠
제설제인 염화칼슘은 수질오염은 물론 도로변 가로수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주시 등 도내 지자체들이 많이 심은 이팝나무와 잣나무는 염화칼슘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제설제 중 사용량이 가장 많은 염화칼슘은 이른바 조해성(潮解性), 발열성, 빙점저하 등의 화학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조해성은 공기중에 노출된 고체가 수분을 끌여들여 녹는 현상, 발열성은 불해되면서 열을 발생시키는 현상, 빙점저하는 물이 어는 온도는 떨어뜨리는 현상 등을 일컫고 있다. 화학적으로 염화칼슘은 물과 접촉할 경우 물분자의 결합을 방해한다. 따라서 염화칼슘이 녹아있는 물은 그 빙점이 0도가 아닌, 무려 영하 55도로 떨어지게 된다. 염화칼슘은 이런 특성 때문에 제설제로 가장 각광을 받아왔다. 그러나 염화칼슘의 이같은 화학적 특성은 도로변 각종 가로수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그 경로는 직접적인 피해와 간접적인 것으로 나뉘고 있다. 과학원은 직접적인 피해에 대해 "제설작업 중 또는 염화칼슘이 녹은 물이 바람에 날려 잎이나 가지에 직접 접촉됨으로써 나타난다"며 "겨울 동안에는 눈에 띄지 않으나 일평균최저기온이 영상이
뗏목은 원시적인 배라 사고도 빈발했다. 여기에는 우리고장도 포함돼 있다. 성종 때 제천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내려가다 익사한 사고가 실록에 자세히 적혀 있다. 당시 한강도승(漢江渡丞) 심지(沈智)라는 사람이 이런 보고를 한다. "충청도 제천의 정병 김중선 등 6인이 본현에서 뗏목을 타고 양근군 지경에 이르렀다가 큰 물을 만나서 뗏목이 풀리어 3인은 익사하고 김중선 등 3인은 부서진 뗏목을 같이 타고, 한강에 표류하여 이르렀으므로 신이 이를 구원해 내었습니다."인용문에 등장하는 도승은 조선시대 한강수계 7곳의 진(津)과 도(渡)를 관리하던 책임자를 말한다. 종9품이다. '진'과 '도'는 그 구별이 쉽지 않다. 다만 도하(渡河), 진강(津江)의 표현으로 미뤄, '도'가 좀더 규모가 큰 나루터가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 사실 뗏목은 조선의 창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나설 때도 대형 뗏목사고가 발생했다. 익히 알다시피 이성계는 위화도까지 진출했다가 그곳에서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바로 그 직전의 상황에서 뗏목사고가 일어났다. 함께 출정했던 당시 좌군도통사 조민수(曺敏修·?~1390)의 상소 내용
18년만에 충북출신 프로기사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청주출신 김진휘(17·사진) 군. 김군은 14~20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 132회 일반입단대회 본선 64강에서 7위를 차지, 입단에 성공했다. 이번 입단자 대회에는 전국에서 총 172명의 아마추어들이 참가, 이중 상위 성적자 7명에게만 입단의 영예가 주어졌다. 특히 이번에 입단 티켓을 거줘진 7명 중 6명은 서울·경기 등 모두 수도권 출신이어서 김군의 입단이 더욱 돋보였다. 나머지 입단자는 유병용(서울), 이호승(인천), 박대영(서울), 백찬희(광명), 신윤호(서울), 한승주(남양주) 등이다. 이로서 충북출신 프로기사는 노영하(청원) 9단, 김강근(청주) 7단, 권오민(충주) 5단 등 4명으로 늘어났다. 충북은 지난 1995년 김·오 두 프로기사를 배출한 후 18년 동안 등단자를 배출하지 못해왔다. 장수영 바둑도장에서 박병규 8단의 지도를 받은 김군은 본인 스스로 "이세돌 9단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전투형 기풍을 지니고 있다. 그는 프로와 아마츄어가 함께 참가할 수 있는 제 3회 비씨카드배 국제바둑대회(2011)에서 중국 신예강자 구링이(古靈益·현 9단)를 꺾어 일찌기 전투력을 인정받은 바
남한강 상류의 산간 내륙에서 벌목돼 뗏목 형태로 운반된 소나무는 역시 궁궐을 짓는데 가장 많이 사용됐다. 광해군일기에서 영건도감이 이런 말을 한다. "작년 가을과 겨울부터, 여기 저기서 긁어모아 마련하여, 금년 경덕궁(慶德宮) 공사를 끝내는데 쓰려고 한 것이, 재목과 서까래 감을 합쳐 모두 1만8천여개였습니다. (…) 그런데 뜻하지 않게 경덕궁 안에 또 더 건축할 곳이 생겼고, 장롱과 궤짝, 제상과 향탁 등의 집기에 응당 들어갈 수효도 또한 2백, 3백개에 이릅니다."- 그러나 뗏목은 궁궐 뿐만 아니라 한양 사대부들이 자기집을 짓는데까지 사용되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중종실록에 이런 표현이 보인다."사대부의 집에서도 다투어 본받아 또한 장려하게 꾸미기를 힘써 화려한 서까래와 높은 용마루가 방곡에 즐비했는데, 선왕 때 재상의 집은 여기에 비교해 보면 마치 변소와 같았다. 수령들도 매번 집짓는 재목을 벌채해 뗏목과 배로 운반하여 권귀(權貴)에게 아첨하느라 동강과 서강을 메웠다."- 인용문 중 '권귀'는 사대부를 의미한다. 강원도 영월의 동강과 서강이 메워질 정도로 소나무를 벌채했다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재목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영건도감이라는
전통시대 청주 별호(別號)의 하나인 '상당'(上黨)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성명(전 청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이 최근 '충북학' 최근호(제 14집)에 '청주 지명 상당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지역 전문가들 사이에 지명 논쟁이 일고 있다. 김 학예관에 따르면 '상당'이라는 지명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전기에 쓰여진 고려사 지리지부터 이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청주목은 본래 백제 상당현이다. 신라 신문왕 5년에 처음으로 서원소경을 설치하고…'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 김 학예관은 중국 산서성에 위치하는 '上黨'(현 장치시)이라는 지명이 어떤 이유로 충북 청주에 그대로 전래된 것으로 봤다. 그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 조선시대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1744년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남긴 내용을 제시했다. 상당산성의 명칭, 축성내력, 성내 유물·유적 등을 적은 이 사적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돼 있다. '산의 이름이 어찌하여 상당이라 했습니까라고 묻자, 주인이 대답하기를 "'일찍이 육국지(六國地)를 보건대 중국 한(漢) 나라가 상당(上黨)이라 부른 내력에 해설하기를 하늘과 이어진 마을이라 상당이라 했
담비(멸종위기 Ⅱ급)는 최근 공개된 동영상과 달리 먹이섭취의 50% 가량을 이른바 '식물성'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노루 새끼를 공격하는 모습만 집중적으로 홍보한 것은 자칫 담비에 대한 이미지나 정보를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국립환경연구원은 최근 담비(貂·marten)가 호랑이 없는 남한에서 최상위 포식자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원은 이에 대한 근거로 담비 2~3마리가 무리를 지어 노루 새끼를 공격하는 채록영상을 공개했다.동영상에는 △노루 새끼가 지나가자 담비가 나무 위에서 쏜살같이 내려오고 △그러자 노루가 공포 속에 방어 행동에 나서며 △이런 노루를 담비 무리가 공격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연구원은 이를 보충하는 자료로 "배설물을 조사한 결과 담비 1무리(3마리 정도)가 연간 고라니(성체) 또는 멧돼지(새끼) 9마리를 사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단일 종으로는 청설모가 먹이의 5.7%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담비는 대형동물을 연중 사냥하는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이자 넓은 행동권을 지닌 우산종(Umbrella species)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우산종은 행동권이 넓은 동물의 서식지 보전이
남한강 뗏목은 얼음이 풀리는 우수·경칩이 지난다고 바로 운반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로 강물이 어느정도 불어나야 가능했다. 뗏사공들은 봄비로 물이 어느정도 불어나면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다. 뗏목을 엮는 방법은 △칡넝쿨이나 쇠줄로 붙들어 매기 △나무에 구멍을 뚫어 연결하기 △쇠고리를 이음새로 박고 밧줄로 잡아매기 등이 사용됐다. 이렇게 완성된 뗏목배 하나를 '한동가리'라고 불렀고, 여기에는 보통 25~35개 정도의 굵고 곧은 소나무가 사용됐다.이렇게 영월이나 우리고장 단양 등 남한강 상류에서 만들어진 뗏목은 자본가인 목상(木商)이 자비를 들여 '강치성'이라는 제사를 올린 후에야 한양을 최종 목적지로 운반이 시작됐다. 이때 여자의 접근은 엄격히 금지됐고, 뗏목이 출발할 때는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강치성을 드린 뗏목은 한번에 보통 5~7 동가리가 운반됐고, 이때 2-3명의 뗏사공이 동가리떼에 올라탔다. 그러나 뗏목도 배는 배여서 조타수 역할을 하는 사공이 필요했다. 뗏사공 중 제일 앞에 서는 사공을 '앞구잽이', 맨 뒤에 서는 사공을 '뒷구잽이'라고 불렀다. 이중 앞구잽이가 조타수 역할을 했다. 앞구잽이는 각 지점의 여울, 수심,
뗏목은 '목재 따위를 엮어 물에 띄워 내리는 나무'로 정의된다. 조선시대 우리고장 남한강으로 뗏목이 운반됐다. 이 뗏목은 일반 배와 많이 달았다. 또 그 자체가 나중에 상품으로 팔렸기 때문에 재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종사자들에게는 생계수단이 됐던 셈이다. 그러면서 뗏목은 뗏사공을 운송했다는 점에서 운송수단의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뗏목은 단순해 보이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제작이 쉽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뗏목은 크게 벌목, 목재운반, 엮기 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먼저 벌목은 낙엽이 진 이후인 음력 10월부터 2월 사이의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여름에 나무를 베면 청태가 끼거나 뒤틀림 현상이 심해 목재로서 가치가 떨어졌다. 또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은 영농철이라 인력동원이 쉽지 않은 면도 있었다. 벌목을 했으면 일단 산 밑으로 운반해야 했으나 그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다. 지금은 임도가 거미줄처럼 뚫여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러질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통길'과 '목도'라는 방법으로 산속의 소나무를 산 밑으로 운반했다. 통길은 잡목을 제거한 후 경사면 아래로 미끄럼 길을 내, 통나무를 운반한 것을 일컫는다. 목도는 두 사람이 줄과
[충북일보]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손님이 연이어 들어선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오늘 저녁을 위해 포장하는 손님,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달라는 손님, 내일 점심 포장을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포장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진열장에 보이는 빵 메뉴부터 6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라자냐, 샐러드, 잠봉뵈르 등 신중한 선택이 이어진다. 스피카 카페에서는 청주 흥덕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보인다. 통창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환하게 들어오는 채광이 따스한 공간을 연출한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곳에서는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온다. 스피카의 이선영 대표는 10년 넘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성인이 된 후 일본으로 떠날 용기를 줬다. 일본의 베이커리나 카페 등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며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게 됐다. 40살이 되면 뭔가 달라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여름철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17일 시에 따르면 올 여름 청주지역 무심천 범람에 대비해 시민들의 통행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한다. 이 자동차단시설은 갑작스러운 폭우나 장마기간 무심천의 수위가 위험수준에 달했을 때 시민들의 세월교 보행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시는 지난해 운천동 세월교 1곳에 양방향으로 이 시설을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시는 이달 내로 무심천 19곳 세월교 전체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단시설 1기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1천만원 수준으로, 모두 38개 시설에 3억8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직원들이 세월교를 일일이 방문해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부턴 원격으로 작동하는 이 시설을 무심천 전 구역에 설치해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이 시설은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투입 대비 사업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시는 재난 예보·경보시설도 개선한다. 시는 노후화된 예보·경보시설을 점검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총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