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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구

세명대학교 교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모교로 부임한 영어 교사 키팅은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가르친다. 이 말은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한다. 카르페 디엠은 영어로는 "Seize the day"로 많이 번역된다. 이 말은 '현재를 즐겨라' 라는 뜻과 함께 '현재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라'와 '현재(오늘)에 최선을 다해 충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 왜 이 격언이 관심을 끄는 것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입시지옥, 취업난, 결혼 고민, 자식 걱정, 건강 염려, 노후 불안 등등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가지 잠시라도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현재를 그 자체로서 즐겁게 받아들여 향유하지 못한다. 지나간 날들은 돌이킬 수 없고, 다가올 날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마주하는 시간은 오직 현재 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중한 선물 같은 현재를 무의미한 걱정과 근심으로 낭비하는 때가 많다.

마태복음에서도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하였다. 한국 현대 사상가 유영모 선생은 하루를 일생처럼 생각해서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살이'를 실천하였다. 그는 오늘 하루가 자기 삶에서 몇 번째 날인지를 세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았다. 물론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평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居安思危)는 말도 있다. 지나친 기우가 문제인 것이다.

삶이란 시간예술이다. 인간은 오래 살건 일찍 죽건 절대로 같은 시간이 두 번 돌아오지 않는다. 금년은 지난해가 아니고, 오늘은 어제가 아니고, 오후는 오전이 아니다. 독일이나 영국처럼 시간 관념이 예민한 사회도 있고, 스페인이나 그리스처럼 비교적 여유로운 사회도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화가 진전될수록 시간 관념도 예민하게 된다. 우리는 기계와도 같은 시간의 빈틈없는 흐름 속에서 삶의 여유를 잃어 버렸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지나친 우려로 현재를 즐기는 여유를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카르페 디엠이란 격언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내일 일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현재, 오늘은 내가 누리는 최고로 고귀한 시간이다. 오늘이 인생에 전부인 것처럼 소중하게 누릴 수 있다면, 그런 오늘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인생도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마치 현재가 전부인 것처럼 현재에 몰입한다. 과거에 대한 미련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어린아이의 정신을 예찬한다. 어린아이는 놀이 하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현재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순간순간의 삶이 마치 창조와 같고 놀이와 같다. 삶이 순수하고 쾌활하고 성스럽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행복한 사람의 특징은 몰입에 있다고 한다. 어린이는 몰입의 화신이다. 그러나 어른이 될수록 일이 많아질수록 몰입을 느끼기가 어렵고 힘들어진다. 나는 요즘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일에 몰입이건 스포츠나 취미에 몰입이건 사랑에 몰입이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삼매경에 들어간 적이 있는가.

어린 시절에 그토록 호기심이 넘치고 신기하기만 하던 세상이 어른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그런 것으로 다가온다. 존재의 신비감이나 세계의 신성함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바라보는 세계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 다시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창조성을 회복할 때 세상은 경이감과 신선함으로 가득 차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권태와 불안을 벗어나 하루하루가 좋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될 것이다. 추운 겨울 끝에 마침내 다가온 아름다운 봄! 마치 봄을 평생 처음으로 맞이하듯 경이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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