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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친구가 운영하는 입시학원에 갔다가 학부형과 학원장의 상담을 듣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생의 학부형은 아이를 꼭 특목고에 보내고 싶다고 하였다. '아주 열심히 한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테스트 결과는 어렵네요.' '그럼 얼마나 열심히 하면 되요? 어느 과목이 문제죠?', '모든 과목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하고 몇 등급을 올려야 하는데, 오답노트를 꼼꼼히 작성하고…….' '오답노트요? 어떻게 쓰는 건데요?' '아, 오늘 여기서 가르칠 수는 없고, 등록하시면 각 과목의 선생님들이 알려줄 겁니다.' '이 학원에서 시킨 대로만 하면 특목고에 가는 거 맞죠?'라며 확답을 요구했지만 학원장은 그런 장담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이 입시가 처음이라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입시학원에서 그 정도는 보장을 해주셔야죠?'라며 날카로운 추궁이 이어졌다. '우리 애가 어려서부터 머리는 좋은데, 이제까지 선생님을 잘못 만나서 성적이 이래요.' 듣는 내 속이 답답하여 먼저 자리를 일어서고, 나중에 친구에게 그날의 상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반에서 중상위권인데, 계속 학원과 과외 뺑뺑이를 돌아와서 그런지,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나 방법을 잘 모르더군. 학원에 데려다만 놓으면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믿는 것 같아. 부모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학원과 아이를 대하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아. 일단 '제가 입시를 잘 몰라서'라며 책임을 선생님에게 미루고 자기는 쏙 빠져나가려는 거거든. 자기 자식 입시인데 잘 모른다? 모르면 찾아서 공부해야지.' 내가 병원에서 종종 만나는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과 너무 비슷했다.

과정과 결과로 보면, 공부와 치료는 과정이고, 입시와 치료의 결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시경 조직검사라는 과정으로 위암을 처음 진단하고, 전이가 없어서 수술이 가능한지 컴퓨터단층촬영(CT)로 확인하고, 수술을 하여 병이 몇 기인지 확인하고, 항암치료가 방사선치료를 추가할지 결정하고, 이후 5년 동안 재발 여부를 추적검사하여 완치판정을 하는 것이 마치 대입이란 끝까지 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암환자를 진료하지만 수술하고 나서 현미경으로 확인해야 병의 정도를 확진할 수 있고, 5년이란 시간을 관찰해야 완치를 판정할 수 있다. 신이 아니고선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의사나 환자나 현재로서 알려진 연구결과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진단과 치료방법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본 학부형 같은 말을 병원에서도 똑같이 듣는다. 지난주에 위내시경으로 조직검사를 했는데, 수술하고 조직검사를 왜 또 하냐는 질문에 암의 병기를 정확히 알려면 적출된 장기로 조직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하면, '내가 의학은 몰라서 그런데…….'라며, 다시 도돌이표 질문으로 그럼 수술 전에 왜 CT를 찍었냐고 한다. 계속 내 말의 내용은 모르쇠하고 나의 대답을 질문으로 되묻는다. '위암 3기로 수술 후 진단이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하면, '위암 몇기인데요?'하고 질문한다. '재발 여부를 보려고 3달 뒤 CT와 위내시경 검사를 합니다.'라고 하면, '왜요? 언제 무슨 검사를 하라고요?'라고 되묻는다.

보호자가 긴장해서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많은 비의료인에게 같은 설명을 해온 내 경험으로 그렇지 않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질문과 답변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자기 말을 하고 싶어서, 남의 말을 들을 겨를 이 없어 보인다. 볼 관(觀)의 한자가 부엉이(雚)처럼 두 눈 부릅뜨고 목표물을 보는(見) 뜻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관(觀)이 너무 확고해서, 다른 이의 말을 들을 생각이 처음부터 없는 것도 같다. 재미나는 부분은 '남의 말 안 듣고, 결국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성향'은 교육이나 직업과 별 연관이 없다. 아흔 살 시골 할머니가 30초면 이해하는 내용을 명문대를 나온 나이 마흔 대학교수가 30분을 듣고도 이해를 못하고 자기 말만 하다가 화를 내고 진료실을 나간다. 한 술 더 떠서 '집안 내력'이란 것이다. 아들이 이런 성향이면 형제나 부인이나 자식이나 부모가 와도 모두 똑같이 자기 말만 하고 경청하지 않는다. 어려서 어머니가 '헛똑똑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셨는데, 오늘 집에 가서 내 아이들에게도 전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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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