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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 삼겹살 상인엽합회 총무

자시를 갓 넘긴 야심한 밤, 문을 걸어 잠그고 골목 바깥쪽을 보니 저쪽에서 휘청휘청 기웃기웃 다가오는 이가 있다. 삼겹살거리에도 하나둘 전광판이 꺼지고 야간영업을 하는 몇 개 업소에만 불이 켜져 있어 전체적으로는 침침하고 음울한 분위기다. 먼발치에서 보니 곧바로 걷지 않고 곧추 서 걷지 않는 품새가 자못 위태롭다. 금방이도 기력이 떨어져 털썩 주저앉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 순간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그러나 골목의 오른쪽 왼쪽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때론 만져보고 때때론 들어보는 손길이 재다. 저쪽 골목 입구에서부터 벌써 10여 미터를 지그재그로 훑어오는 모양이다. 작은 손수레에는 이미 잡동사니들로 거의 차 있다. 가장 많은 것이 종이박스이고 플라스틱 통도 눈에 띄었다. 이 골목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다른 골목 두어 곳을 뒤진 게 틀림없다. 길 한 켠에 주차된 승용차 옆을 뒤질 때는 차 밑에 있던 고양이가 귀찮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도심의 밤 고양이만큼 많은 노인들이 이 시간에 어두운 골목을 쏘다니는 건 혹 아닌지.

"늦게까지 하시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주울 게 없어 들어가는 중예요"라고 할머니는 말을 받았다. 며칠 전 낮에 만났을 때 커피 한잔을 권했던 그 할머니였다. 일할 때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며 거절하시는 바람에 겸연쩍었었다. 커피를 마시고 땀을 흘리면 커피의 카페인 성분 때문에 탈수증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듯했다. 칠순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 할머니는 허리가 약간 굽어 있기는 해도 건강해 보였다. 용모도 곱상하니 거친 일을 하신 분 같지는 않아 보였다.

오늘도 술을 한 잔 걸쳤으니 택시를 타야 했다. 이제는 내게 승용차보다 편한 교통수단이 된 안심콜을 불렀다. 이내 택시가 도착했고 지름길로 가기 위해 골목길로 접어드는 순간, 또 다른 할머니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고 있었다. 뒤에서 택시가 오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좁은 일방통행로를 온통 차지했다. 맘씨 좋은 장년의 택시기사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뒤를 따랐다. "이 늦은 시간까지 저 노인네들이 무슨 돈을 벌겄다고! 증말." 정기 휴무일을 빼고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해야 150만 원 정도 번다는 그 택시기사와 가는 동안 사는 얘기를 나눴다.

가끔 삼겹살을 먹으로 오는 인근 고물수집상 여주인의 말을 빌리면, 하루 20여 명의 노인들이 자신의 고물상을 이용한다고 했다. 새벽 시간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나오는 박스를 주워오는 노인들은 하루 두 차례 용돈을 버는데 많게는 8천 원 정도라고 귀뜸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전 시간대에 상점가에서 물건을 풀고 버리는 박스를 줍거나, 오후 시간대 물건을 풀고 버리는 박스를 줍는 게 대부분인데 하루 수입이 3천원에서 5천원 사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박스 줍는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여서 수입이 줄면 줄었지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지어는 먹고 살기에 충분한 노인들도 아는 업소를 중심으로 종이박스를 줍고 있어 박스 줍는 노인들의 입지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내년도 국가 예산 376조원에 복지분야 예산만 해도 115조를 웃도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에 이런 살풍경이라니! 노인기초연금 수령자가 내년에는 464만 명으로 늘어나며 모두 7조 5천억 원을 받아간다는데, 생계급여를 지원받는 국민이 123만 명에서 내년에는 133만 명으로 늘어난다는데 도대체 이건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서 굳이 한다면 몰라도 산 목숨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꼼지락거려야 하는 노인들이 속절없이 이렇게 늘어만 간다면 도대체 그 많은 돈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누구의 주머니로 새어 들어가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 시절 들쥐들이 하루가 다르게 갑자기 늘어나는 이유를 알고 아연실색했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극심해지고, 춘궁기를 맞은 민초들이 힘없이 죽어 나자빠지면서 썩은 시체를 먹기 위해 쥐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 다산의 시대에 비해 그렇게 암울한 것은 분명 아니지만 갈수록 고착되고 구조화되는 민생의 빛과 그림자가 그 골의 깊이와 농도를 더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그 할머니를 또 보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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