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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사인 내가 흙을 밟을 수 있는가”, 박중양

  • 웹출고시간2014.04.10 18:50:10
  • 최종수정2014.04.10 17:54:48

조혁연대기자

말티고개는 보은에서 약7㎞ 지점에 있는 속리산 입구의 첫 고개로 높이는 430m다. 현존하는 흑백사진을 보면 말티고개는 일제 강점기까지 오솔길 정도의 모습으로 그 폭이 좁았다.

고개 굽이가 워낙 많고 험하다 보니 선형 개선은 물론 노폭 확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대형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노폭을 확장하고 선형 개량을 처음 시도한 인물은 1920년대 충북도지사를 지낸 박중양(朴重陽·1872-1959)이다.

박중량의 일본식 이름은 ‘호추시게요’(朴忠重陽)이다. 이것에서 보듯 그는 친일행각이 뚜렷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신념적 친일파라는 사학자들의 평가가 따라 다니고 있다.

박중양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직과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1923년 2월 24일 충청북도지사에 부임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말티고개를 확장하는 토목공사를 처음으로 하게 된 것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는 유람을 무척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부임 2달 후인 1923년 4월 17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그는 괴산군내 명승지를 무려 7일 동안 구경하고 도청으로 돌아온 것으로 나타난다. 그가 말티고개를 넘으려 한 것은 법주사를 유람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이때부터 돌발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그는 법주사를 유람하기 위해 말티고개 입구에 이르러 “일도의 지방장관이 어떻게 흙을 밝을 수 있냐”며 인근 농가에서 소를 끌어오도록 명령했다.

‘당대의 일도 장관으로서 어찌 차에서 내려 흙발을 밟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박중양 씨는 기어코 차에서 내리지를 않고 촌가에 가서 소를 끌어다가 자동차를 끌어 넘기게 한 결과 겨우 도지사의 위엄은 간직하게 되었다.’-<동아일보 1923년 6월 16일자>

이때 박중양은 마음이 덜 풀렸는지 당시 김재호 보은군수에게 군민 부역을 통해 말티고개 확장하도록 명령했다. 그는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이를 따라야 했다.

속리산 말티고개는 일제 강점기까지 오솔길 모습이었다.

‘지사의 명령이라 일개 군수로서 어기는 수가 없으니까 김군수는 즉시 금월 초순부터 부역을 풀어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본시 이 고개는 비록 자동차는 통행치 못하나 인마는 임의로 통행되는 곳이며 그 고개는 다만 속리산 법주사 외에는 다시 통한 곳이 없는 주요 치안의 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 안가 커다란 파문을 낳는 불쏘시개가 됐다. 6월 중순이면 여름이 막 시작되고, 말티고개에서 먼 회남과 회북면민은 백리를 출퇴근하며 부역에 강제 동원돼야 했다.

역시 동아일보 1923년 6월 16일자는 보은 군민들의 커져가는 불만을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지사의 분부임으로 전군 만여호의 부역을 풀게 되는 때는 마침 첫 여름임으로 농가의 제일 바쁜 때이다. 일반 인민들은 백성의 생명을 보장하는 농사를 못짓게 하고 이 길을 닦을 시급한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며….-<〃>

당시 동아일보는 “ 매우 울분히 여기던 중 더둑이 같은 군에서도 회남면 회북면과 같은 곳은 부역장까지 근 백여리가 되니 인민의 피해와 곤란은 이를 길이 없었다”라고 적었다.

이런 불만은 부역나온 보은군민들이 당시 일본 토목기사와 순사를 집단 구타하는 사건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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