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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1.02 15:24:15
  • 최종수정2014.01.02 14:01:56

조혁연대기자

일본의 극우 세력이 준동하면서 최근의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흡사 구한말 같다는 표현이 적지 않다. 구한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조선 말기의 정치가이자 개화운동가인 김옥균(김玉均·1851∼1894)이다.

2014년은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이 단행된 지 2갑, 즉 120주년이 되지만 김옥균 서거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풍운아 김옥균은 일본의 세력을 등에 업고 조선을 '갑신정변'(1884년)이라는 매우 급진적인 방법으로 근대적인 개혁을 하려 했다. 고종실록은 우정국 낙성식장에서 일어난 갑신정변 직후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김옥균 등이 생도 및 장사들을 시켜 좌영사 이조연. (…) 내시 유재현 등을 앞 대청에서 죽이게 하였다. 상께서 연거푸 죽이지 말라! 죽이지 말라!고 하교하시는 말씀이 있기까지 하였으나, 명을 듣지 않았다. 이때 상의 곁에는 김옥균의 무리 십수 명만이 있었는데, 상이 행동을 자유로이 할 수 없게 하였고…'-<고종실록 21년 10월 17일자>

이 부분은 고종이 사실상 유폐된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났다. 민씨로 대표되는, 수구파의 도움 요청을 받은 청나라 위안스카이는 1천5백명을 이끌고 창덕궁을 공격해 왔다. 그러자 버팀목이 될 줄 알았던 일본군은 세 열세를 느끼고 재빨리 철수해 버렸다.

가장 큰 실패는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민중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는 점이었다.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 박영효·서재필 등 9명의 동지들과 함께 후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직전까지 의기투합했던 김옥균에 대해 이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 박해하기 시작했다. 김옥균은 1886년 태평양의 오가사와라섬(小笠原島)으로, 또한 1888년에는 북해도로 쫓겨났다가 발병 후에야 도쿄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김옥균이 일본에서 사용하던 바둑판.

이 기간 동안 김옥균은 바둑을 자주 두게 되고, 이 때의 바둑판이 우리고장 청주의 이승우(82) 옹에 의해 지난 1993년에 발견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옹은 '충북도정 반세기'의 저자이면서 바둑문화연구가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지니고 있다.

이 옹은 지난 1993년 일본기원을 방문했다고 김옥균의 호인 '古筠'(고균)과 문장이 적힌 비자나무 바둑판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를 한국기원에 알리게 된다. 이후 양국 바둑 관계자들 사이에 '생전의 바둑판 주인 나라로 가는 것이 맞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년후인 1995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바둑판 밑면에는 村木町이라는 바둑판 가게에서 바둑판을 구입한 경위 등을 적은 70여자 행초서가 쓰여있다. 김옥균은 당시 일본바둑 최고 실력자인 슈에이 본인방에게 5점을 두고 뒀을 정도로 아마추어 강자의 기력을 지녔다. 김옥균은 이때 그에게 편지도 전달했다.

"저는 내일 서쪽 유람(중국 지칭) 길에 올라야 합니다. 출발하기 전에 꼭 만났으면 합니다.

이 바둑판은 제가 애완하던 것입니다. 이제 귀형에게 드립니다. 한가할 때 번민을 버리는 도구로 쓰시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김옥균은 중국 상해에 도착하자마자 고종이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했다. 이것은 조선, 일본, 중국 등 세 나라 정부의 합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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