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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0.09 15:23:4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서애 유성룡(柳成龍·1542∼1607)은 종전이 되자 고향 안동으로 낙향, 임진왜란 동안 보고 들은 사실을 책으로 기록했다. 징비록(懲毖錄)이다. 징비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을 가장 사실적으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전적류임에도 불구하고 국보 제 132호로 지정돼 있다.

책제목 '징비'는 중국고전 시경 소비편에서 따온 말로, 징(懲)은 '지나간 일을 경계한다', 비(毖)는 '뒷날 근심이 있을까 삼간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징비록은 훗날 필사본 형태로 일본에도 전해져 열도 서사문학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했다.

유성룡이 임진왜란을 객관적이면서 폭넓게 기록할 수 있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병조판서(오늘날 국방장관)였다. 이후 선조가 평양에 이를 때는 영의정겸 4도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됐다.

조선시대 도체찰사는 전시에 임명되는 총사령관으로, 군정을 물론 민정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징비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을 가장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쓰여진 징비록에는 유성룡 자신과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申砬·1546∼1592) 장군의 대화 내용까지 수록돼 있다. 유성룡은 왜군의 조총(鳥銃) 위력을 꽤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병(騎兵)을 이끌고 전공을 많이 세웠던 신립은 조총을 무시했다. 두사람은 징비록에서 이런 대화 내용을 주고 받는다.

'나(유성룡)는 다시 말했다. "전에는 왜병이 다만 짧은 병기만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는 조총이 있는데 어떻게 만만히 볼 수가 있단 말이오. 그러나 신립은 종시 태연한 말씨다. "왜병들이 조총은 가졌지만 그게 쏠 적마다 맞는답디까.(…) 신립은 내내 내 말을 옳게 여기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시 조정은 '이일'(李鎰·1538∼1601)이라는 인물을 신립 장군에 앞서 경상도 상주에 먼저 파견했다. 전황이 매우 다급하게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선조는 왜군의 북진 속도가 예상외로 빠른 것으로 보고되자 이일을 경상도 순변사에 임명해 병력 3백명을 통솔하게 했다. 그러나 이때 모집된 병사들은 오합지졸도 되지 못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병조에서 뽑았다는 군사들은 모두 민가나 시정에 있는 사람들 또는 서리와 유생들이 태반이었다. 군사를 점검하면서 보니 유생들은 관복에 책을 옆에 끼고 있었고 서리들도 모두 평정건(平頂巾)을 쓰고 있었다.'

징비록은 이어지는 문장을 '그들은 모두 군사로 뽑히기를 꺼리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만 뜰에 가득히 모집해다 세웠으니 데리고 갈만한 군사라곤 하나도 없었다'라고 적었다.

출병하는 군사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 갓을 쓴 모습은 코미디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모습이다. 이일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는 왜군이 이미 상주에 들어왔는데도 이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징비록은 이 부분을 이렇게 적었다.

'성중을 바라보니 여러 곳에서 연기가 일어났다. 이일은 그제야 군관 한 사람을 보내어 탐지해 오도록 일렀다. 군관은 말을 타고 역졸 두 명으로 하여금 말고삐를 잡게 하여 천천히 나아갔다. 그러나 왜군은 그 전부터 다리 아래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조총으로 군관을 쏘아 말에서 떨어뜨린 다음 머리를 베어 가지고 달아났다. 이런 지 얼마 안 되어 적들이 크게 몰려왔다.' 결국 이일은 우리고장 충주로 도망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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