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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0.04 15:46: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전쟁은 참혹한 것으로, 인간심리의 여러 단면들이 노출된다. 임진왜란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른바 가왜(假倭), 부왜(附倭), 항왜(降倭) 현상을 낳았다. 가왜는 내국인 즉 조선인이 왜군을 가장해 노략질했던 사건을 말한다.

우리고장 영동이 외가인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쇄미록'의 1593년 음력 7월 14일자 일기를 이렇게 썼다.

'구례를 분탕질한 적은 왜적이 아니고 곧 우리나라 사람이 왜적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왜인의 목소리를 냄으로 목책을 지키던 군사가 모두 흩어지고 거기 사는 백성들도 이 까닭에 놀라 움직여서 역시 모두 도망해 달아나니….'

비슷한 현상으로 숨진 우리나라 사람을 왜군의 시체로 변장시켜 정부 포상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기록정신이 유별났던 오희문은 쇄미록의 1592년 음력 9월 13일자 일기를 이렇게 적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진 밖의 망대에서 숙직하는 왜병을 쏘아 죽이고 머리를 베어다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다시 들으니 사실은 왜병이 아니고 무주 백성이 목화를 따고 있다가 적에게 죽어서 버려두고 거두어 가지 않았던 시체를 그 머리털을 깎아버리고 머리를 베어가지고 왔는데 의병은 그런 줄을 알지 못하고 진짜 왜병이라고 하여 순찰사에게 바쳤다고 하니 진실로 우스운 일이다.'

우리고장에서도 소극적인 가왜 현상이 있었다.선조실록에는 이런 표현이 보인다.

'정원이 회계하기를, "음성현(陰城縣)에 나타났다는 적은 충주(忠州)에서 올라온 왜적이요, 황간(黃澗)에 나타났다는 적은 우리나라 사람이 왜인으로 가장한 듯합니다.'

부왜는 왜군을 도와 준, 즉 부역한 것을 말한다. 이같은 현상은 지역 차별을 심하게 받았던 함경도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왕자인 임해군과 순화군이 조선 백성들에게 체포돼 왜군에게 넘겨진 것은 대표적인 부왜현상이다. 실록에는 이런 내용도 보인다.

'양산 품관 최기(崔沂)를 장사꾼으로 꾸며서 두모포·서생포·임랑포 등지에 가서 왜영의 형편을 탐지하게 하였더니, 당일 돌아와서 말하기를(…) 거류민에게 물어보았더니 머물러 있는 왜인의 수효가 거의 8천 명이나 되고 전일 일본으로 들어간 자도 많으며 양곡과 기계 및 잡물을 일찍이 나누어 운반하여 일본으로 실어갔다고 하였다. 왜적에 붙은 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왜의 진영 옆에 사는 자가 거의 200여 호나 되었다.'-<선조실록>

인용문에 등장한 두모포는 지금의 서울 옥수동 한강변, 서생포는 울주 서생면, 임랑포는 부산 기장 일대를 일컫고 있다. 우리고장 충주에서도 부왜현상이 있었다.

'충주의 사기장 한막동(韓莫同)은 왜놈의 첩자가 되어 중국군을 염탐하였다고 하니, 대단히 흉악합니다. 즉시 목을 베어 효시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선조실록>

항왜는 위와는 반대로, 한반도를 밟은 왜군이 일본을 버리고 조선으로 귀순한 경우를 말한다. 조선 조정은 임란 초기에는 왜군 포로들을 즉각 살해했다, 그러나 각종 정보와 조총기술 획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항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본명이 '사야가'(沙也加)인 김충선(金忠善·1571-?)으로, 임란은 물론 병자호란 때도 공을 많이 세웠다. 때문에 그는 나중에 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해 대구에 정착, 모하당집이라는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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