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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5.24 16:29:4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서민경제의 주거래 수단은 뭐니뭐니 해도 동전, 지폐 등으로 구성되는 화폐다. 우리나라의 화폐는 조선 숙중대 들어서야 비로소 대중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앞서 고려 조정도 이 화폐를 유통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고려 조정은 곡식, 면포 등 현물로 경제적인 거래를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고 있었다.

'숙종 7년에 비로소 관청을 설치하여 돈을 주조하고 해동통보(海東通寶)라는 글자를 표면에 새겼다. 드디어 종묘에 고하고 처음으로 돈을 썼으며 (…) 민간에 무역을 허락하여 돈의 편리함을 알게 하였다.'-<연려실기술>

인용문 중의 숙종은 조선이 아닌 고려의 임금, 그리고 해동통보가 주조된 숙종 7년은 1102년이 된다. 그러나 해동통보는 오래 유통되지 않았다. 고려 백성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현물을 매매수단으로 선호했다. 고려사에 등장해 있는 내용을 조선후기 이긍익(1736-1806)이 연려실기술에 다시 수록했다.

연려실기술은 '이때 화폐를 쓰게 한 지가 이미 3년이나 되었으나 백성들이 쓰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이 있었는데, 예종(睿宗)이 즉위하자 또 폐지하였다'라고 썼다.

조선 조정도 화폐를 유통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선조-광해군 연간의 명신으로 이덕형(李德馨·1561~1613)이 있다. 그는 같은 시기 또 다른 명신인 이항복(李恒福)과의 진실한 우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1613년 이덕형이 사망하자 이항복이 가장 슬퍼하며 손수 친구를 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이덕형이 화폐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상소를 했다.

"우리나라가 다만 쌀과 면포만을 사용하여 농촌은 병들고 나라는 가난하오니, 불가불 돈을 새로 사용하여 공사의 용도를 넉넉하게 해야겠습니다"-<연려실기술>

그러나 조선시대 화폐는 이후로도 침체기를 걷다가 숙종 때 그 유명한 상평통보(常平通寶)가 발행되면서 비로서 대중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주조 발행을 건의해 이를 관철시킨 인물이 바로 허적(許積·1610∼1680)이다.

'대신 허적·권대운 등이 시행하기를 청하매, 임금이 군신에게 물어, 군신으로서 입시한 자가 모두 그 편리함을 말하였다. (…)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하여 돈 4백 문(文)을 은(銀) 1냥(兩)의 값으로 정하여 시중에 유통하게 하였다.'-<숙종실록>

앞서 실록은 같은 문장에서 조선에서 돈(錢)이 유통되지 않았던 이유를 '대개 동전(銅錢)이 토산(土産)이 아닌데다 또 민속(民俗)이 중국(中國)과 달라 막히고 방해되어 행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화폐사에 뚜렷한 공적을 남긴 허적은 경신환국으로 실각된 후 결국에는 처형당하게 된다.

남인계였던 허적은 할아버지 허잠(許潛)이 시호를 받게 되자 축하연을 베풀기 위해 임금 허락없이 궁중 유악(기름칠한 천막)을 집으로 가져왔다. 허적은 이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실각했고, 죄를 기다리던 중 서자 허견(許堅)의 모역사건으로 함께 사사(賜死)되었다.

허적의 묘와 영정이 우리고장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위치하고 있다. 변덕이 심했던 숙종은 그가 무고로 죽었음을 알고 바로 신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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